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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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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지워지지 않는 낙서


BY 마포나루 2007-01-04

제가 대학교 2학년때, 우리 가족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텃밭이 있고, 풋대추가 대롱대롱 달린 대추나무가 서 있는
그런 집으로 말입니다.
셋방을 전전하던 끝에 처음으로 장만한 집이라서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들떠 있었죠.
언제나 주인 아주머니의 잔소리를 귀에 달고 살아야 했던 엄마가
누구보다도 좋아했어요.

이삿짐을 풀자마자, 내게 주어진 일은 담장 가득한 낙서를 지우는 일이었습니다.
서툰 글씨들, 어딘지 모를 주소, 약도....
나는 마당 수돗가에서 열심히 물을 퍼다가, 낙서를 말끔히 지웠어요.
\"야, 다 지웠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비비고 나와 보니,
내가 애써 지운 글씨들이 모두 되살아나 있는 게 아니겠어요?
\"어? 이상하다. 도깨비가 왔다 갔나? 아니면, 달빛에 글씨가 살아나는 요술담장인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낙서를 다 지우고, 엄마한테 검사까지 받았어요.
분명,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도 해 주셨죠.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이상한 일은 다음 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일어났습니다.
누군가 어제와 똑같은 낙서를 가득 해 놓은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나는 낙서를 지우면서, 누군가 잡히기만 하면 혼쭐을 내 주리라... 마음 먹고
저녁 내내 망을 보기로 했어요.
그날 저녁, 두 소년의 그림자가 담장에 어른거렸습니다. 범인이 분명했어요.

\"형!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이거 보고, 이사간 집 찾아올 거라고 그랬지?\"
\"물론이지, 아빠는 집배원이었으니까 금방 찾아오실 거야.\"


형제는 하늘나라로 간 아버지가 이사간 집을 찾아오지 못할까봐
담장 가득 약도를 그리고 또 그렸던 것입니다.


나는 그날 이후, 낙서를 지울 수가 없었어요.


지금 그집 담장엔 그 삐뚤빼뚤한 낙서가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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