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벚꽃이 전등 불빛보다 환하게 켜져 있었다.
테이블이 여섯 개 놓여 있던 그 곳은 문을 열자마자 후라이드 치킨 냄새가
홀 안으로 가득 방향제처럼 뿌려져 있었다.
인조털 긴 잠바를 입고 친정엄마와 저녁이 지난 무렵에
그 곳을 방문하던 며칠 전은 뜻밖의 일자리 때문이었다.
큰 동생 아는 사람이 한다는 통닭집이 있는데 맡아서 할 사람을 찾는다고
장사를 하면 어떻겠냐고 연락이 왔다.
힘들겠지만 장사가 그래도 월급쟁이보다는 나을 것 같고 내 돈이 들어가지 않고
맡아서 해보는 거라고 해서 친정엄마랑 통닭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빛보다 환한 벚꽃이 화들짝 피어있던 벽지,
빨간 앞치마를 두룬 펑퍼짐한 아줌마 한명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주인인 남자와 텅 빈 가게.
구석진 곳에 놓인 노란색 바탕의 전단지,
전단지에 쓰여 있던 ‘두 마리 치킨’글자를 읽으며 그 자리에 주인과 마주 앉았다.
삼십대 초반도 안돼 보이는 총각 같은 주인과 부드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이런 일 해보셨어요?
아니요…….
보통힘든게 아닌데 할 수 있겠어요?
한 달에 이백만 넘으면 할 생각입니다.
배달이 90%가 넘는 일이라서 배달 직원을 두면 이백만원이 안될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매일 나오는 배달직원이 있을까요? 일주일에 한번 쉬어야 할 텐데…….
그러게요. 일 년 365일 쉬는날없이 해야 하는데…….남들 쉴 때 더 바쁜데…….
왜 그만 하려고 하세요?
너무 힘들어서요. 새벽3시까지 일하고 쉬는 날 없고 다른 일을 할까해서요.
그렇군요.
남자분이 인수를 해야 수지타산이 맞을듯한데요.
그러게요…….
그러다가 주문 전화가 오면 펑퍼짐한 아줌마는 통닭을 튀기고
주인은 뜨거운 닭을 오토바이에 실고 배달을 나갔다.
주인이 배달 나간 사이 주문전화가 또 왔고 아줌마 옆에 서서 통닭 튀기는 걸 보았다.
한 마리씩 비닐에 담겨 있는 닭을 냉장고에서 꺼내
가루 밀가루를 걸쭉하게 만들어 닭을 집어넣어 버무린 후
튀김기계에 스위치를 올려 닭이 상수리 가을잎처럼 갈색으로 익으면
기계에서 이제 꺼내시오, 하는 벨소리가 나면
닭을 건져내어 상자에 담으면 끝이다.
솜씨도 요령도 필요하지 않고, 손질이 다 되어 있는 재료를 튀겨 담으면 된다.
문제는 배달이 문제였다. 인권비가 나가지 않아야 그 돈이 내 돈이 되는 건데
아무리 계산을 해 봐도 한 달에 백만 원이 남을까 말까였다.
벚꽃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피어 있는 홀 안엔 두 시간이 지나도 홀 손님은 하나도 없다.
순전히 배달로만 이루어진 장사였다.
내가 장사를 하게 되면 통닭 튀기는 일이 내 일이 되는 셈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닭을 밀가루에 골고루 버무려 기름 솥에 집어넣고 쇠소쿠리로 건져내
기름을 뺀 다음 양념통닭을 주문하면 빨간 양념에 버무려 땅콩가루를 솔솔 뿌리고,
간장통닭을 주문하면 김을 잴 때 쓰는 붓으로 간장을 묻혀 튀긴 닭에 간장을 발라주면된다.
내 할 일이라 생각하고 순서를 외웠고, 아줌마 몸길을 따라 내 눈과 몸은 따라다녔다.
닭 튀기던 아줌마는 성격도 펑퍼짐했다.
닭 튀기는 건 쉬워요, 배울 것도 없어요, 여자 돈벌이로는 괜찮아요.
아줌마가 하시지요, 왜?
저는 낮에 화장품을 해요, 오후 늦게 몇 시간 도와주는거에요.
아…….그렇군요.
배달직원이 문제지 닭 튀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배달을 마친 주인이 왔다.
맡아서 하지 말고 차라리 인수를 해서 하세요, 한다.
삼천만원에 내 놨는데 하신다면 더 내려드릴게요. 한다.
경험이 없어서…….그럴 여유도 없고 그냥 맡아서 하는 게 좋겠어요, 나는 대답한다.
배달 직원 쓰고 남는 것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걱정하듯 말한다.
한 달 수입이 백오십만 되어도 해 볼게요,
속으론 생각들이 뒤죽박죽이지만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두시간정도 있으면서 세 번의 배달이 있었다.
주인이 배달을 나가면 전단지에 테이프 붙이는 작업을 펑퍼짐 아줌마 따라 도와주었다.
친정엄마는 목이 탄지 찬 물 한 컵을 단번에 마셨다.
매일 전단지를 돌려야 한다고 한다.
순전히 전단지로 주문이 들어오고 전단지를 안 돌리면 주문이 줄어든단다.
전단지는 초등학생 6학년 아이가 하는데,
용돈을 벌기 위해 한 장에 30원을 받고 방과 후 몇 백 장씩 아파트에 붙이고 다닌다고 한다.
중학생 이상은 전단지를 돌리지 않고 뭉텅이로 버려서
차라리 순진한 초등학생이 훨씬 믿음이 가고 열심히 한다니
전단지는 했던 아이를 시켜야하겠군 생각하며 전단지를 읽어보았다.
입맛대로 골라서 두 마리에 만사천원, 콜라와 사이다도 껴주는구나, 맛은 어떤가…….
맞은 어때요? 펑퍼짐에게 물어보았다.
맛있어요. 생닭이거든요. 오늘 들어온 닭은 거의 다 나가요.
한 가지를 물어보면 두세 가지를 대답해준다.
친정엄마는 뭐가 못마땅한지 별로 물어보지도 않고
자꾸만 내가 이런 일 한 사람이 아니라고만 하신다.
여기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무슨 필요가 있냐면서 자꾸만 나는 친정엄마 말을 끊었다.
\'한 달에 백오십만 확실하다면 해야지, 내가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잖아,
삼년만 고생하자. 딸아이가 대학 졸업하고 취업할 동안만…….
문제는 중학생인 아들 얼굴 볼 시간도 없겠네, 사춘긴데 삐뚤어지면 어떻하나…….
내 몸이 따라줄까 쉬는 날도 없이…….돈만 번다면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래 해야겠다.
어디서 오라는 곳 없고 이력서도 안 받고 백화점 다녀도 백만 원 벌이도 안 될 텐데…….
그래 해야지.\'
“여기서 장사를 한지 얼마나 되었어요?”
“넉 달 되었어요.”
“넉 달이요? 우리 동네도 통닭집이 많은데 일 년만 되면 문을 닫던데, 육개월은 장사가 잘 되지만 일 년만 되면 개미아재비도 없던데…….”
나대신 엄마가 나서서 말씀을 하신다.
“전단지 작업 계속하고 열심히 하면 괜찮을거에요.”
엄마는 이제 그만 가자고 나를 보고 눈짓을 하셨다.
밖은 어두만이 짙었다.
두꺼운 긴 잠바를 입어서 춥지는 않았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서 엄마는 두말할 것도 없이 때려치라고 하셨다.
오래 장사를 한 것도 아니고 배달 직원 월급주고 나면
백만 원이 될까말깐데 생각해볼 것도 없다고 하셨다.
차라리 백화점에 다니는 것이 맘도 몸도 편하겠다고 하신다.
백화점에서 누가 나더라 오라고 한것도 아닌데 자꾸만 백화점이 낫다고 하신다.
일 년만 되면 문 닫는 통닭집 우리 동네에도 수두룩하다나 하시며
세상 물정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엄마 말을 듣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으슬으슬 추워서 잠바 앞자락을 두 손으로 여몄다.
기름에 타는 닭 냄새가 잠자리에 누워도 기억난다.
촌스러운 벚꽃 잎이 온 사방에서 한들건들거린다.
주인 남자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 아하~~가수 최성수를 닮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