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 / 전 어쩌면 좋을까요?) 안녕하세요. 새벽편지는 항상 메일로 접하고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어이없고 가슴이 아파서 전 어려서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로 인해 7살 나이에 그 집에 가서 그렇게 지낸 10년간 누구를 원망하거나 \'나에게도 언젠간 행복이라는 놈이 올 거야’ 제 나이 16살 되던 해에 미안하다며 그런데 그것 자체도 허황된 꿈이라는 건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는 가게에서 일요일도 없는 학교에 보내주고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 할 때마다 그런 아버지가 영어도 못하고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었지만 정말 안 해본 일 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세탁소에서 일했고 그러는 동안 아버지가 그러던 어느 날, 저희 할머님께서 정도 없고,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아버지는 속에서 나오는 눈물을 그런데 장례가 끝나고 \"동생 보러 가야지~\" 전 \"어디 있는데요?\" 하고 물었지만 차에 올라타 제가 간 곳은 병원이었습니다. 동생이 당뇨병에 걸려서 아버지는 \"참으로 불쌍한 아이다. 네 동생은...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으로 지금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전 --------------------------------------------------------------- 참... 어떡하는 게 올바른 선택일까요?
저는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편지를 쓰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가슴을 움켜쥐고 서러운 마음에 일주일 내내 울다가
이렇게 편지를 써봅니다.
부잣집에 팔려갔었습니다.
뭘 알겠어요.
청소며 빨래며 집안 일을 했고
몸은 시퍼렇게 멍들도록 매일 맞았었습니다.
미워한 적도 없었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꿈을 키우며 살았으니까요.
아버지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미국으로 가자는 말과 함께
이제까지 못해준 행복한 가족의 정을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지 3일 만에 알았습니다.
17시간을 서서 일해야 했으니까요.
그런 나날.....
배우고 싶은 거 다 해주겠다던 우리 아버지는
결국 저를 일하게 하려고 부르신 것 같았습니다.
일주일을 못 일어날 정도로 맞아야 했으니까요.
증오스러웠고 너무 미웠습니다.
그래도 더 있다가는 제명대로 못 살 거라는 생각 끝에
집을 나왔습니다.
일만 하며 살았습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가게, 햄버거 집에서 일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옆도 뒤도 안 돌아 보고 살았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셨다는 소식도 들었고
그 곳에서 새 엄마하고 배다른 동생이
잘 산다는 이야기도 접했습니다.
이젠 거의 15년이 흘렀죠.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껴주며 같이 산 분도 아니지만
그래도 할머니이기에 전 장례를 치르러 그곳에 갔습니다.
예전과 달리 저에게 너무나도 잘해주시고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참지 못하고 엉엉 울었으니까요.
아버지가 저에게 그러시더군요.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도착할 때까지 침묵으로 있었지요.
그 때 알게 되었지요.
눈을 잃고 이제는 신장까지 나빠져서
이식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을요.
저에게 말씀하시더군요.
난 너무 늙어서 이식수술을 못해 준단다.
형제면 몰라도 부모는 안 된다더구나.\"
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전화를 합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뭐라고 위로의 말조차 나오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