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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내리는 눈은


BY hayoon1021 2006-11-29

 

밤에 내리는 눈은 확실히 낮의 그것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다.

내가 밤에 내리는 눈을 질리도록 본 것은 1998년 겨울이었다. 그해는 몇 십 년만의 폭설이라느니 기상이변이라느니 하며 꽤나 떠들썩했는데, 과연 눈은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잊을 만하면 내리고 녹을 만하면 내리기를 반복했고, 나는 그 눈을 보면서 습관처럼 그와 헤어지던 마지막 날을 떠올려야 했다.

이젠 정말 끝이라는 말을 내뱉고 그의 자취방을 뛰쳐나왔을 때는 늦가을 새벽이었다. 내리막길을 뛰어내려 오면서 정작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보다도 온몸을 파고드는 스산한 바람에 나는 더 몸서리를 쳤다. 나는 한겨울로 접어들기 직전의 그 어중간한 계절이 제일 싫었다. 잎이 다 진 거리에 비 내리고 바람까지 불 때의 그 쓸쓸함을 감당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데 설상가상 그 황량한 계절에 실연까지 당했으니! 버스정류장에서 새벽 첫차를 기다리는데 어찌나 참담하고 절망적인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당시 나는 만화 그리는 화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 나중에 걸림돌이 될 줄은 몰랐다. 우선 우리는 일정한 수입이 없었다. 고료란 게 기본급 없이 일한 만큼만 받는 건데다 또 너무 박했다. 다 늦은 서른에 뛰어든 나나 조금 일찍 시작한 그나 생활이 곤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돈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약속은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조바심이 났고 그는 그런 나를 부담스러워 했다. 사실 결혼 계획은커녕 데이트할 시간이나 비용조차 빠듯했으니 그때의 우리에게 사랑은 불청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온 나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게 지냈다. 우리는 낮엔 잠을 잔다든지 하며 어영부영 보내다가 주로 밤에 본격적인 작업을 했다. 사람들이 다 퇴근해 버린 빈 건물 4층에서 각자의 스탠드 아래 얼굴을 박고 일하는 화실 풍경은 늘 좀 외로웠다. 그런 우리한테 그나마 자극을 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눈이었다. 맨 처음 눈을 발견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창가로 모여들었다. 늦은 밤, 인적이 끊어진 도심 한가운데 내리는 눈은 고요하기만 했다. 강아지 발자국조차 없는 거리에 눈만 소복소복 쌓여갔다.

모처럼 신이 나서 떠들던 우리도 어느 틈에 하나둘 입을 다물고 각자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밤에 내리는 눈은 사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우리는 창턱에 팔을 괴고 한참동안 눈만 바라보았다. 눈은 어쩌자고 저렇게 펄펄 내리는 걸까. 하얀 눈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곧 깨어날 꿈을 꾸고 있는 듯도 했다. 막연히 슬퍼졌다. 옆에 있는 동료들도 나와 같은 심정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연이야 물론 제각각이지만 함께 객지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동지였으니까. 눈이 가난하고 슬픈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부정했다. 그런 나를 비웃듯이 눈은 더욱 더 맹렬하게 내렸다.  

나는 매일 밤 전화벨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는데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의 전화가 왔다.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그의 말에 자정이 다 되어서야 전철역 앞으로 나갔다.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를 책임질 자신이 없어 일부러 냉정하게 대했지만 막상 헤어지고 보니 이게 아님을 깨달았다고 했다. 무뚝뚝하기만 했던 그의 입에서 꿀처럼 달콤한 말들이 쉬지 않고 쏟아졌다. 꿈만 같았다. 수십 번도 더 바랐던 일이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다니. 그런데 참 놀랍게도 내 반응은 싸늘했다. 그가 돌아오기만 하면 무조건 받아줄 생각이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니 그동안의 상처와 설움이 새삼 고개를 쳐드는 것이었다. 그를 남겨둔 채 내가 먼저 돌아섰다. 그의 진심도 알았고 내 자존심도 어느 정도 회복됐으니 더는 미련이나 여한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계산대로 움직여 주던가. 그가 다녀간 이후 더 괴로워졌다. 차라리 마냥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가 더 나았다 싶을 정도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건 사랑이나 그리움과는 다른, 왠지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이었다. 그의 모습, 특히 얄팍하기만 했던 그의 옷차림이 두고두고 눈에 밟혔다. 나는 그걸 단순한 연민으로 몰아가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느 날인가 나는 무작정 가게로 나가 오리털 파카를 사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이제 그 옷만 전해주고 와도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전해주나. 그걸 고민하느라 또 시간이 흘렀다.

결국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나는 그를 찾아갔다.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만나긴 했지만 그간의 일들로 우리 사이는 좀 어색했는데, 빙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을 잡게 되면서 곧 풀렸다. 그의 방까지는 20분 정도 걸렸다. 버스정류장 옆 재래시장을 지나 아파트 단지를 꺾어 돌면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동네가 나오고, 그 동네 골목을 꼬불꼬불 지나고 나서야 언덕바지 중간쯤에 있는 그의 방이 보였다. 늘 그와 오르내리던 길이었다. 헤어지던 날 새벽 나 홀로 걸어 내려온 길이기도 했다. 이제 그 길을 그와 다시 걷고 있었다. 그는 마치 여자친구를 처음 집에 초대하는 사람처럼 들떠 있었고 나 역시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런데 잘 가다가 그가 갑자기 엉뚱한 길로 나를 끌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여름에 텃밭으로나 이용되었을 법한 후미진 공터였는데, 거기 달빛에 반짝이는 하얀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내 등을 떠밀며 어서 첫발자국을 찍으라고 했다. 보는 사람도 없겠다, 나는 여왕처럼 눈밭을 걸었다. 그런 날 보며 그는 돈으로는 많은 걸 못해 줘도 이런 기쁨은 얼마든지 만들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아마 우리들의 유치한 짓에 혀를 차던 달도 그 말 한 마디에는 살짝 감동했으리라.

드디어 열악하기 짝이 없는 그의 자취방에 닿았다. 월세가 싸다는 이유로 구한 그 방은, 대여섯 가구가 함께 화장실과 샤워장을 써야 했고 부엌은 손님 한둘만 와도 벗어놓은 신발들로 꽉 찰 만큼 좁았지만 그래도 거기까진 좋았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바깥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도 방의 벽지며 천정에 물방울이 맺혀 줄줄 흘러내리는 거였다. 정말 부실공사의 결정판이었다. 지하방도 그보다는 나았으리라. 당연히 벽에다 옷가지는커녕 그림 한 장도 붙일 수 없었다. 책상과 이불 말고는 모든 물건들이 박스에 담겨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으니 그 방이 얼마나 냉랭하고 어수선했겠는가. 그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잠시 당황했다. 우리가 재회했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진 않는다는 걸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른 생각을 고쳐먹고 나는 그에게 옷을 내밀었다.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의 상황은 우리가 헤어지기 전보다 더 나빠져서 비싼 기름으로 난방을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우리는 외투를 입은 채 버티다가 나중에는 이불까지 뒤집어써야 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쉴 새 없이 얘기를 나누었는데 입에선 연방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나중에는 추위를 이기려고 라면을 끓였고 그 국물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새벽이 다 돼서야 우리는 추위와 졸음에 지쳐 쓰러졌는데 그때까지도 이야기는 멈출 줄을 몰랐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전에는 그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비관적이었던 것이 그때는 모든 게 희망적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석 달 후 우리는 전격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은 연애와는 또 달랐다. 연애할 때는 그래도 모든 갈등의 초점이 사랑이었는데 결혼은 그게 아니었다. 아이가 하나둘 태어나면서 사랑은 간 데 없고 책임과 의무만이 우리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워낙 기반이 없이 시작한 결혼이라 늘 생활고에 시달렸다. 급기야 남편이 그림을 접고 전업하기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생활은 좀체 나아지질 않았다. 결혼한 지 아직 10년도 못 채운 지금, 나는 벌써 악다구니나 써대는 여편네가 돼 있고 그는 단지 가장의 의무에만 허덕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울적할 때도 많다. 차라리 꿈을 향해 각자의 길을 갔으면 어땠을까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인생은 결국 순간순간의 선택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을. 그때 내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히 그날 밤 일을 떠올려 봤을 때, 뼈 속까지 시리던 그 방은 따뜻하기만 하고 밤새 창밖 가로등 불빛 아래 흩날리던 눈발은 아름답기만 한 걸 보면 다시 그 순간이 온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사랑이 밥 먹여 주진 않아도 나는 그를 사랑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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