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동서가 애 셋을 낳고 떠났다.
사실은 아프다고 병원에 입원한다고 하더니 끝내 소식이 없다.
막내가 이제 막 세살에 들어간다.
시어머니가 키우기가 버거우셨는지 남편을 불러서 달랬나보다.
두 아이는 초등학교에 다니니 그런데로 괜찮은데
막내는 도저히 못 키우신다고 했다.
하긴 두아이만이라도 벅차신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진즉 형님들에게 살갑게 대 할 것이지
그렇게 살기 등등하게 형이고 부모고 경우 없이 설쳐서
오만가지 정이란 정이 다 떨어진 남편이
할 수없이 조카를 등에 업고 돌아온 날 나의 눈치를 살핀다.
비오는 날 그것도 초 봄에 아직 입김이 서리처럼 하얗게 허공에 새겨진 그 밤에
막내 시동생과 시어머니가 나와 아이들을 업혀 내 보낼 무렵에 우리 영은이가 두 살 이었다.
한 달이 지나 만 24개월이 지나고 세살이 들어 설 때
분유고 기저귀고 뭐고 할 것없이 느닷없이 내동댕이치던 때가
또렷하게 남편이 업고 온 조카의 얼굴에 새겨진다.
참 기가막힌 우연도 이럴 수는 없었다.
나는 저 만치 아이를 앉혀놓고 그 기억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 조카를 보면 더럭 더럭 얼굴이 붉어지고 코끝이 싸아하고 눈가에 촉촉한 게 고이는 것이 이러라고 이렇게 되라고 빈 적도 없던 일이 지금은 더욱 나에게 확실한 사실이 되었다.
아이는 나의 얼굴을 보고 또 본다.
떠난 엄마의 얼굴을 짐작하는 것 처럼 나의 품을 헤집고 들어온다.
오물 오물 뭔가 말 할 것 같은 옹알이를 나에게 해 댄다.
엄어마? 엄어마?
반짝 반짝 눈 빛이 반작이는 아이다.
하루 지나 또 하루지나 이젠 엄마처럼 생각하나 나의 꽁무뉘만 안보일라 치면 대번에 으앙 소리치면서 운다. 그 소리에 또 난 기겁을 하는 기억이 소스라치게 튀어다닌다.
그 때의 어린 기억에 충격을 입어 영은이가 발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편도 이런 사실을 잘 안다.
나와 남편은 아이를 번갈아 안고 또 업어 주었다.
할 수 없다. 젖이 모자르면 젓을 동냥해서 먹인다지만 정이 모자르면 품이라도 내 주어야 한다. 수시로 번 갈아 가면서 눈 마주치면서 설핏 설핏 새겨진 뜨뜻한 것들을 눈으로 귀로 먹여줘야 한다.
어쩌랴....
이렇게 세월이 흘러서 우리 앞에 업혀 온 아이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온 복덩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염치가 이젠 생겼나... 막내 시동생이 형님에게 전화한 통 못한다.
뭐라고 한 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러니 살아 봐야한다. 인생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덧) 어디서 막내동서가 이글을 본다면 아이는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비록 늦게라도 언젠가는 화해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도 용서하는 법을 지금 배우고 있다. 조금 느리더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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