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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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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BY 봄날~ 2006-11-22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나는 올빼미처럼 밤에는 늦도록 잠이 없다. 요 근래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가게일이 힘들어서인지 그나마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오랜 습관처럼 배어있는 일상이라 그런지 항상 열두시를 넘긴다. 아침에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오분만 십분만 을 되 내이다 이불 속 온기를 남겨둔 채 일어난다.

 

아이들 챙겨 보내고 큰아이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 집안일 대충 치우고 나서는 일터로 나선다. 골목을 몇 바퀴를 돌아야만 겨우 주차를 할 수 있는데 오늘은 운이 좋다. 바로 가게 근처에 자리가 있다. 냉큼 주차를 하고는 가게 쪽으로 걸어오는데 가게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노인이 재활용 쓰레기를 열심히 분리하여 바퀴달린 조그만 장바구니에 가득 실어놓고 있다. 쓸 만한 것을 제외 하고난 뒤 길바닥에 남겨진 쓰레기가 한 가득이다.


머리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있다. 등은 굽고 손은 거칠다 못해 소나무 등걸을 연상케 한다. 남의 가게 앞에 쓰레기를 쏟아 부어 놓은 것이 미안했던지 노인은 그 거친 손으로 쓰레기를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할머니 쓰레기 놔두세요. 여기 봉투에 넣으면 되니까..” 내친김에 할머니께 몇 마디를 건넸다.

 

“할머니 이거 모아도 얼마 안 될 텐데... 소일거리로 하시나 보다.” 괜스레 무안해 하실까봐 얼른 말꼬리를 돌렸다. “저기 가면 날 줄려고 박스를 가득 모아놔” 그리고는 바퀴를 돌돌 거리며 뒤뚱거리면서 총총히 사라진다. 눈이라도 퍼부을 것 같은 잔뜩 흐린 날씨는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찌푸린 날씨 탓 인가 눈에서 멀어지는 노인의 뒷모습이 서글프다. 말끔하게 쓸어낸 그 자리에는 바람이 훑고 지나가자 낙엽이 떨어져 뒹군다. 인생이란 게 떨어져 뒹구는 저 낙엽과 무에 다를까.

 

패기만만한 젊음 하나만으로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하나도 무서울 게 없는 펄펄 살아 움직이는 푸른 젊음이 있을 때도 있었지. 그때는 늙지도 않을 것 같고 평생 그대로 일 것 같다던 친정어머니의 회한 섞인 푸념에도 무신경 했었다. 부쩍 건강에 적신호를 보내며 병원을 찾는 횟수가 많아지는 친정어머니를 보며 “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너희들 걱정을 덜고 짐이 되지 않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당신 관리는 철저히 하신다. 그럼에도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한해 두해 기력이 쇠진해져 가는 것을 눈으로도 느낄 수 있다. 사춘기적 눈만 뜨면 농사일에 매달려 하루해를 다 넘기고도 또다시 반복되는 당신의 일상이 나는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세월의 무게만큼 깊어진 주름사이 쇠약해진 기력은 혹여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나 않을까 늘 노심초사다.


나의 눈에는 늙지 않고 언제나 젊음 그대로 일 것 같았는데.... 나 역시 나이 들어가면서도 당신에게서 세월의 흔적을 발견 하는 게 마음 아프다.

나도 저렇게 늙어 갈 텐데.... 자식들도 하나 둘 나의 품을 떠날 텐데....

한잎 두잎 낙엽이 쌓여갈 때마다 빈 몸으로 겨울을 견뎌낼 나무가 나를 보는 것 같아 황량한 겨울 벌판에 서 있는 듯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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