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내내 네 시간씩 눈부신 모니터와 마주 보고 있는 일은
똑같은 음식을 계속 먹는 것처럼 질리고, 영화를 쉬지 않고 보는 것처럼 피곤하다.
십 분씩 쉬는 시간이 없으면 질력이 나고 허리가 나빠져서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같이 공부하던 학생 아줌마중 한 분은 허리에 디스크가 생겨서 도중에 하차할 직전이고,
쉬는 시간만 되면 머리가 아프다느니 눈이 화끈거린다느니 정수기 앞에 서서 말이 많아진다.
나는 살이 없어서 그런지 엉덩이가 아파서 엉덩이를 주먹으로 두둘긴다.
쉬는 시간마다 차를 한 잔씩 마시며 피로를 풀고 두뇌를 식히며
무생물인 모니터 앞을 벗어나
생명체 사람들과 눈을 보고 얘기하는 시간이 즐거움 중에 으뜸이다.
그래서 자기 컵을 들고와서 차를 한 잔씩 하자고 제의를 해서
몇 천 원씩 모아 녹차와 믹스용 커피를 사다 놓고
뜨거운 정수기 물에 타서 수시로 마시고 생명체들과 체온을 주고 받는다.
차를 마시며 십분 동안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공부에 대해 배우며 사소한 일상들을 풀어 놓게되고
누군가의 입에서 배고프다는 말이 흘러나오면
일이천 원씩 모아 떡볶이, 순대, 김밥 앞에 둘러앉게 된다.
주부들이고 여자들이다 보니
시골에서 가지고 온 대추 떡도 가지고 와서 나눠먹고,
커피랑 어울이는 다과를 준비해 오기도 하고
등교하면서 붕어빵도 사가지고 와서 나눠 먹는다.
공부하는 총 날짜가 석 달 반 정도.
하나하나 자격증을 따고 자격증에 돌입하다보니 남은 시간은 한 달 정도다.
처음엔 한 마디 말도 못하다가
지금은 나보다 동갑이거나 나이가 어리면 반말을 섞어가며 말을 하게 되었다.
서로 공부하기 어렵다고 투정부리고 하소연도 해가면서
중도에 하차하는 이 없이 성실하게 공부에 박차를 가해 막바지로 가는 중이다.
중앙기억장치가 어디에 있고 무엇에 쓰는 물건이지 몰랐던 우리가
기억장치에는 주기억장치와 보조기억장치가 있고
가상메모리와 캐시메모리의 역할도 알게 되었고,
독수리 타법을 벗어나 문서작성을 척척해 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엑셀이 계산을 하는 프로그램인 걸 처음 알면서
모니터에 머리를 박고 싶게 짜증나고
마우스를 내 던지고 싶게 신경질이나고
머리 쥐나게 어려운 함수계산법을 한가지씩 익혀가면서
학창시절에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우등생이었겠다, 하면서
8월을 지나 늦가을로 접어들게 되었다.
단편화된 프로그램이나 기억을 최적화로 만들어 주는 조각모음을 배우면서
조각모음이란 단어가 너무 예쁘고 귀에 쏙 들어왔다.
대부분 영어로 명칭이 되어 있던 컴퓨터에 조각모음이란 단어가 있다는 것과
조각모음의 역할이 머리속에 쏙쏙 들어왔다.
조각모음이란 제멋대로 흩어져 있던 프로그램을 가지런하게 쌓아 놓는 것.
컴퓨터를 배우면서 그동안 흐트러진 마음을 차곡차곡 모으게 되었다.
막연히 일을 놓고 쉬면서 뭘 해야하나? 하면서 흩어짐 속에 살았었는데......
타인을 만나면서 감정을 모으려들면 현실 때문에 조각조각 흩어졌던 마음들을
조각모음을 배우면서 가지런하게 쌓아 놓기로 했다.
사십 몇 년을 살면서 조각난 그 어느 해의 봄과 그 어느 가을의 풍성했던 식탁과
겨울에도 피어나던 꽃들과 잊혀지지 않는 향기로웠던 손 길.
새로운 만남뒤엔 항상 새로운 인생길이 있었다.
그게 행복했던 간에 슬펐던 간에 내 기억 속에 단편으로 남아
어느 날은 그, 그 기억이 나를 울리고, 어느 순간엔 그 기억이 나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컴퓨터를 매일 배우면서 당장 돈을 벌지 못해서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 때는
앞날이 막연해져 우울할 때도 있고, 그로인해 주변사람들을 한숨 짓게 하지만
많은 날들은 배움의 뿌듯함과 보람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현실을 비우고 자격증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무기력한 나를 깨우는 일이었으니까.
가로수를 올려다보면 잎들이 떨어져나간 공간사이로 하늘이 조각조각 보인다.
색색이 물든 나뭇잎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조각 이불 같다.
매달려 있던 잎들이 단편화가 되어 땅 위로 최적화 되어가는 계절, 조각모음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