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는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리며 흔들립니다,
아파트와 주택의 차이점인것같습니다 주택에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창문이 흔들리거던요,
없는 사람은 여름이 지내기가 쉽다는데 이제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이 되니 없는 사람 겨울 나기 어렵다는데 길거리 노숙자들의 혹독한
삶의 시련을 또 한번 겪어야 하나봅니다,
갑자기 추워진 오늘 날씨만큼 내 마음 한곳에 추워 옴이 느껴집니다,
내 살점 한점을 떼어 버린듯한 그 상처자리가 다시 아파옴을 어제 친구딸
결혼식에 갔다가 다른 친구로부터 들은 애기 때문이었습니다,
난 그 친구 앞에서 기어이 눈물을 흘렸고 결혼식장에 간다고 한껏 멋부리고
갔는데 그리고 화장이 지워져 화장실에 가서 다시 화장을 고쳤습니다,
언니가 가고난 세뤌이 이년이 되었네요,
몸부림쳐 막아본들 가는세월 막을수 있겠습니까,
발버둥치며 가지않으려 해본들 안갈수가 있겠습니까.
흐르는 세월에 우리들도 함께 얹혀져 잘도 가더이다,
슬퍼하고 아파하던 그 감정들은 이제는 조금씩 무디어졌지만 그래도 기억만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지난 여름에 언니없는 형부의 퇴직기념으로 우리 형제들이 모두모여 식사를
함께 하였지요,그때 말했습니다,재혼을 하라고....
참한 여자이면 언니처럼 생각하겠다고 그때 아무말이 없던 형부였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그런 애기들이 오고간것 같습니다,
형부도 성격은 참 무던한 사람입니다,좀체 화 낼줄 모르는 사람이지요,
솔직히 나는 쉽게 형부가 재혼을 할거라 생각 안했습니다 ,말은 그래 하였지만.
내 이기적인 생각인가요 ?
언니가 살다간 삶이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안타깝고 누가 그렇게 살아라고
권한것도 아니고 50년도 못채우고간 인생이면서 오로지 남편과 자식만을 위해
살다간 언니였기에 언니의 그런 악착스럽게 알뜰하게 살았기에 남은 가족들은
경제적 어려움없이 살수있습니다,
그렇게 지지리 궁상스럽게 살았던 것도 언니의 복이겠지요.
그렇게 살다간 것도 언니의 운명이겠지요,
하늘은 잔뜩 흐려져 있습니다,
바람은 계속 불어대고 있습니다 .
한달에 한번 건아들이 입대하는날이라 집앞 부대에서는 빱빠라빠 하면서 경쾌한
음악이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잠시 내가 저 젊은이들의 부모가 되어봅니다,
어젯밤 지재우기 힘든 밤이었습니다,
조금전 조카 아이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처음엔 그저 서로 안부 묻는말만 하였지요,누가 먼저 말을 해야할지,
나는 조카의 마음이 아플까보아 말을 못하고 조카역시 이모의 마음이 아플까보아
말을 못하는것 같앴습니다,특히 내가 더 마음 아파했거던요..
어릴때 한방에서 잠을 자면서 서로 이불을 많이 덮으려고 싸우고 어린 조카 서로
보려고 싸우고 아이보면 심부름안해도 되니까 그랬지요 ..
내가 먼저 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 걱정 하지말고 시집가라고 혼기가 꽉찬 아이입니다,
부산에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애기가 시작되었습니다,조카의 목소리도 이모의 목소리도 젖어 있습니다,
우리한테 잘해줄라꼬 한다 이모야 걱정하지마라 하는 조카의 말을듣고 전화를
끈었습니다,
언니가 유난히 챙기던 딸이었습니다 아들둘에 딸 하나였거던요 .
마음이 아주 여린 조카입니다,그래서 더 걱정을 하였습니다,
언니가 가기전 둘째 언니에게 그랬답니다,
ㅇ ㅇ 가 시집가게되면 데리고 다니면서 빠진것없이 준비다해주라고요,
요즘 아이들이야 지들이 알아서 챙기고 준비들을 하지만 그래도 조카가 결혼을
한다고 하면 아픈 마음으로 이모들이 챙겨주어야 할까요,
이제 엄마의 자리가 채워졌는데..
조카와 전화를 끝내고는 막 울었습니다,
이 너머 눈물은 흘려도 흘려도 울일이 생기면 왜그리 눈물이 날까요,
어제 애기를 전해준 친구에게 그랬습니다,
그 친구 남편이 형부와 아주 절친한 친구사이입니다,
언니가 살아 있을때부터 가깝게 지냈던 부부입니다,
아는 사람도 없을텐데 니가 만나면 말동무도 되어주고 편하게 해주라고...
물론 부부끼리 자주 만나고 식사도 함께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언니에게 받은 그 정을 잊을수가 없다고도 하네요,
언니의 대한 내 감정은 쓸모가 없습니다, 버렸습니다,
비록 처가식구인 우리들에게 재혼 하였다는 말은 안했지만 형부의 재혼을
축하 해주려고요..
두분이 행복하게 잘사시라고 빌어줄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