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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열 살이다. (1)


BY hayoon1021 2006-11-02

 

2003년 6월, 엄마의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올케는 지금 와 봤자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니 초상나면 내려오라고 했다. 엄마는 벌써 세상에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있었다. 물론 올케는 내 형편을 배려해서 한 말이었지만.

사실 직장을 쉬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남편한테만 맡기기에는 애들도 너무 어렸다. 경비도 부담스러웠다. 어쩌지? 전화를 끊고 나서 머리를 조금 굴렸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당장 기차를 탔다. 이대로 엄마를 보낼 수는 없었다. 난 아직 엄마한테 할 말이 많았고 듣고 싶은 말도 많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엄마와 솔직한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 엄마 품에 따뜻하게 안겨보지도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런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그런 상상을 하고 있자니 내 마음은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설레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한껏 부풀었던 풍선은 뻥 터져 버렸다. 엄마의 상태는 듣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중환자실 한쪽 구석에 누운 엄마는 뼈만 남은 모습이었다. 주렁주렁 달린 주사약이 아니었다면 살아 있는지도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엄마 손을 잡아봤지만 아무 느낌도 없었다. 엄마한테 할 말을 잔뜩 껴안고 내려온 나는 벙어리가 돼 버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혼잣말도 잘 하던데 나는 어쩐 일인지 입도 열지 못한 채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너무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한 탓일까? 나는 그저 담담했다. 엄마보다 오빠와 올케들한테 더 신경이 쓰였다. 지친 그들은 어서 상황이 종료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도움도 못 준 나로선 냉랭한 그들을 탓할 수도 없었다.

무거운 공기가 병실 안의 우리 모두를 짓누르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갑자기 세 살배기 둘째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하룻밤을 지내지 않고 새벽에 올라가기로 결정해 버렸다. 그래서 올케를 쉬게 하고 몇 시간 동안 엄마 침대를 지켰다. 엄마는 계속 잠만 잤다. 정확하게 말하면 혼수상태 같았다. 가끔 눈을 뜨기는 했지만 이내 기운 없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가만히 앉아만 있으려니 중노동이 따로 없었다.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몰려 왔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자정을 넘기면서 어수선하던 병실은 조용해졌다. 환자와 보호자들 모두 잠이 들고 희미한 조명 아래 나만 깨어 있었다. 깜빡 잠들지 않으려고 나는 안간힘을 썼다.

드디어 떠날 시간이 되었다. 그때 엄마가 눈을 번쩍 떴다. 엄마는 뜬금없이 똥을 누고 싶다고 했다. 먹은 게 없으니 나올 것도 없을 듯한데, 엄마는 변기를 찾아달라고 했다. 난 엄마의 바지를 내리고 기저귀를 푼 뒤 변기를 올려놓았다. 엄마의 엉덩이는 노인의 젖가슴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사람의 살가죽이 이렇게 늘어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나는 묵묵히 엄마를 잡아 주었다. 나한테 몽땅 의지한 엄마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엄마는 끙끙 힘을 주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암만해도 똥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어지러우니까 무리하지 말라며 엄마를 침대에 눕혀 버렸다. 모처럼 힘을 쓴 뒤라 엄마는 금방 잠에 빠졌다. 새벽 3시였다. 3시 45분 기차를 타려면 더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가만히 병실을 빠져 나왔다. 바로 옆방에는 간호사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한테 곧 올케가 올 테니 잠시만 엄마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중환자를 혼자 두고 가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못마땅해 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왠지 창피했다. 택시는 단숨에 나를 기차역에 내려줬다. 예상보다 시간이 좀 남으니까 아까 엄마를 재촉했던 게 후회되었다. 좀 느긋하게 기다려줄 걸. 마지막인데. 새벽의 기차역 대기실은 썰렁하기만 했고 시간은 정지된 것처럼 흘렀다.

그로부터 사흘 뒤 엄마의 부고가 날아들었을 때, 결국 똥은 누고 갔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스쳤다. 엄마의 장례식은 쓸쓸했다. 찾아오는 사람도 적었고 울어주는 이도 없었다. 급히 휴가 나온 동생만 내내 흐느꼈다. 나는 그때 삐쳐 있었다. 나한테는 아무 반응도 없던 엄마가 동생이 오자 정신을 차리더니 임종 전까지 꽤 많은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차별받았다고 생각하니 울고 싶지도 않았다.

영구차가 화장터에 도착할 때까지도 섭섭함은 가시지 않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엄마가 사라지고 문이 꽝 닫혔다. 사람들은 모두 바깥으로 나갔다. 벤치에 멍청히 앉아 있던 나는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가 가고 있는데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이 없었다. 나라도 울어 주어야 될 것 같았다. 나는 안으로 다시 들어가 시멘트 바닥에 털썩 퍼질러 앉았다. 여름인데도 음침한 분위기 탓인지 화장터 안의 공기는 차가웠다. 기분 나쁜 냄새도 떠다녔다.

찔끔 눈물이 나왔다. 그 눈물 한 방울로 흑백이 컬러로 변하듯이 엄마의 죽음이 생생하게 실감났다. 가늘게 새어나오던 울음소리는 곧 격렬한 통곡으로 변했다. 통곡이 말이라면 그날 나는 한꺼번에 수천 수만 마디는 쏟아낸 셈이었다. 어떤 감정도 그 대상이 사라진 다음에는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엄마 원망하지 않을 테니 엄마도 나 미워하지 말라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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