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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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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우중 산행 후기


BY 그리운섬 2006-10-24

도봉산 우중산행 후기
 

 휴일 아침 
 붐비지 않는 도심 속
 완행 열차
 지친 몸 실어보고싶다
 아직 식지 않은 커피 있다면
 차창 뿌우연 성에 한 꺼풀 얹혀
 가보지 않은 그 길
 발자국 두어 개 찍어보고싶다
 
 눈을 뜨기도 전에 아내의 목소리가 아침을 깨웠다.
 \"자기 몇 시에 출발할거야? 시간 늦겠네 친구들 기다리잖아 서둘러야지\"
 \"밥 있어?\"
 \"찬 밥 있는데 새로 해 줄 테니 따스한 밥 먹고 가요!\"
 가게를 하다 보니 둘이 같이 쉴 수 없어 우리는 거의 다른 날 산행을 하곤 했다.
 나의 산행에 부부는 취미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아내도 요즘은 산행에 열심이다. 호젓한 아침이면 아내와 자주 오르는 산이 바로 아파트 뒤에 있는 야산이다.
 
 아침을 먹자 마자 오리 역에 차를 세우고 다시 지하철로 갈아탔다.
 서너 번은 갈아타야 도착하는 먼 거리였지만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산행은 설렘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휴일이라 지하철은 한산했다. 객차안 사람들의 표정 역시 미소가 가득 찬 모습들이다. 제 각각 서로 다른 목적지를 가지고 떠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을 맞아 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열차 여행은 싫지 않았으리라.
 커피 한 잔을 뽑아 얼어붙은 마음을 달구었다. 뿌연 입김이 차창에 쌓인다. 나는 발자국을 열차의 차창에 찍지 못했다. 나이 서른 아홉에 창문에 발자국을 찍으며 논다는 것도 청승일거라는 생각 그 위선과 허영의 탈속에 갇힌 내가 순간 미웠지만 역시나 용기는 없었다.
 열차가 수락산 역에 도착하자 수많은 등산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지하철을 오가며 등산용품을 파시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도봉산 역 건너편 만남의 광장에는 이미 친구들이 먼저와 기다리고있었다.
 반가운 인사는 같은 클럽친구라는 의미 하나만으로도 미소를 번지게 했다. 우리들이 처음 만났거나 몇 번 보았거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시에 모두 도착을 했는데 금랑이만 늦는다는 연락이 왔다. 막걸리 안주로 부침개를 하고있는데 좀 늦을 거라고.....
 스산한 공기가 산 입구 노점상의 천막 속을 들락거렸다.  물밀 듯 밀려오는 산행인파에 현기증이 느껴질 즈음 마침내 눈에 띄는 금랑친구.
 \"안녕? 늦어서 미안해! 어서 가자!\"
 \"인사들 해. 여긴 미라, 여긴 혜숙, 여긴 오늘 처음 산행에 참석한 은주야\"
 \"반가워. 호호\"
 
 우중 안개

 밟아도
 꾹꾹 눌러 밟아도
 소리 없이 숨 멎는
 오르고
 쉬임없이 올라도
 가로막지 않는
 낙엽은 비 젖어 내 몸 가지라 하네
 길은 만장봉 거침없이 오르라 하네
 
 다만
 정복하지도
 정복당하지도 않는 너
 너의 이름은 안개.
 
 가야금을 뜯듯 드문드문 리듬을 타던 빗줄기가 매표소를 지나자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최대한 호젓한 길(사실은 덜 험한 길)로 산행코스를 잡았다. 녹야원코스, 말라비틀어진 계곡엔 물기조차 없고 산길로 오르는 길은 먼지투성이다. 우리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푸석푸석 먼지가 하늘로 향했다. 목마름을 갈구하던 먼지들도 내리는 빗줄기가 어지간히 그리웠던 모양이다.
 비는 어느새 그냥 맞기엔 아플 정도로 세차게 내렸다. 우리들은 결국 굴복하고 우의를 썼다.
 저마다 생쥐모양이 된 모습들이지만 철없는 아이처럼 웃음꽃은 시들지 않았다.
 젖은 낙엽은 부스럭거리지 않는다. 그랬다. 꾹꾹 밟아 눌러도 그냥 밟힐 뿐 말이 없이 자신을 내 주었다. 김소월 시인의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는 싯귀가 갑자기 생각났다.
 올라도 쉬임없이 올라도 막힘이 없이 이어진 길은 만장봉까지 어서 오르라하지만, 이미 땀 범벅이 되어 우리는 숨이 턱에 차도록 힘에 겨워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며 가지고 온 과일과 샌드위치에 허기를 채우며 우리는 그렇게 올라갔다. 다락능선을 거의 올라갈 무렵이었다. 오늘의 가장 위험한 코스가 그곳에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일등으로 앞서가던 미라가 떨기 시작한 것은 거기서부터였다.
 암벽은 끝없이 이어졌고 암벽으로 이어진 길은 기다랗게 연결된 로프가 전부였다.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해! 발에다 힘을 주지말고 줄에다 힘을 줘봐!\"
 나의 말이 들리는지 어떤지 벌써 겁을 먹은 모습에 아연 일행은 모두 긴장했다.
 나는 길의 위험성 여부를 미리 알고자 먼저 산을 올랐다. 천길 낭떠러지에서 로프 하나에 달랑 의지한 미라의 절규가 터져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으아앙. 엄마! 나 못 가! 엉엉 나 어쩌라고. 못 가겠어!\"
 바로 뒤에 따라오던 혜숙이의 말이 이어졌다.
 \"미라야. 긴장하지 말고, 줄을 똑바로 보고 꽉 잡고 올라서 봐!\"
 뒤이어 금랑이와 은주의 격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따 빨리들 안가고 뭐해요? 뒷사람들 기다리잖아요!\"
 다른 산행인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이미 뒤돌아 내려가기에는 너무 많이 올라와있었던 것이다.
 \"어쩌지? 으앙 어쩜 좋아? 무서워. 엄마!\"
 후들후들 떠는 미라의 외침에 다시 혜숙이의 말이 이어졌다.
 \"덕길아! 내려오는길은 이 길이 아니지?\"
 \"응, 이길로 내려가지 않을거야. 그러니 힘내서 올라가자! 내 손잡아줄까?\"
 \"아냐, 저리 가. 필요없어!\"
 당돌한 미라의 말투속에서 오기가 느껴졌다. 그랬다. 그것은 바로 오기였다. 가장 긴장된 상황속에서 믿을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를 악문 미라의 손이 바빠졌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로프를 잡고 혼신의 힘을 향해 위로 올라갔다. 드디어 성공, 서늘한 가슴을 쓸어 내리는 것은 미라뿐 아니라 그 모습을 지켜본 우리들 모두였다.
 
 \"잘했다! 우아. 제법인데? 근데 너 왜 자꾸 엄마만 불러? 혜숙이도 있고 금랑이도 있는데?\"
 \"호호 몰라. 나도\"
 조금 더 올라가는데 펄펄 날아가던 혜숙이가 갑자기 외쳤다.
 \"애들아 빨리 와 봐! 빨리빨리!\"
 힘들어 죽겠는데 빨리 안 온다고 난리였다.
 \"자가 왜 그러노? 산삼 봤남?\"
 우리는 허겁지겁 올라갔다. 그곳에는 우리가 깜짝 놀랄만한 것이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와...............와\"
 깎아지를 듯한 거대한 괴암 괴석이 운무에 휘감겨 보였다가 숨었다가, 숨었다가 보였다를 반복하고 그 아래로는 새빨간 물감을 흥건하게 엎질러 놓은 듯 단풍산이 아스라이 펼쳐져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마다 시를 읊었다.
 
 다만
 정복하지도
 정복당하지도 않는 너
 너의 이름은 안개.
 
 저마다 시는 시인이 읊으라면서 나에게 미뤘지만, 나는 안다. 그대들의 마음속에 저 환상적인 비경이 마음 깊이 차곡차곡 쌓였을 것을, 그게 바로 시일 것이라고.....
 운무에 가려 보였다 숨었다를 반복하는 만장봉은 금강산에 비견할 만한 광경이었다. 감히 세속에 물든 자 넘보지 말라는 듯 만장봉은 우리의 걸음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힘을 내어 올랐다.
 마침내 정상. 안개 드리운 산 정상은 어떤 모습도 허락하지를 않았지만 금랑이의 말
 \"마치 구름 위에 뜬 거 같아 호호\"
 우리는 마치 구름 속을 산책하는 것만 같았다.
 
 \"여기서 밥 먹고 가자 배고파 미치겠어!\"
 배가 고프면 신경질이 난다는 혜숙이의 말에 저마다 자지러졌다. 살도 없는 것이 먹는걸 저리 밝히니 그랬을 법도 할 것이다. 금랑이도 동참했다.
 \"나도 배 고프면 현기증이 나 호호\"
 \"그래도 비는 피해야지 나무그늘 어디 없을까?\"
 은주의 말이었다.
 \"야야 그러지 말고 여기서 대충 때우자.\"
 퍼붓는 비에 엄습하는 추위, 그리고 매서운 바람까지 그것은 시련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가져온 음식을 풀며 얼려온 조껍데기 막걸리로 먼저 목을 축였다.
 살얼음 조각이 남아있는 막걸리는 그야말로 막걸리 쉐이크였다. 목젖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가는 맛은 세상사 시름을 잊게 해 주었다.
 \"막걸리 맛이 너무 좋은데? 이런 맛 처음이야!\"
 은주의 말이었다.
 두어 잔을 거푸 마셔도 얼굴에 기별이 없다. 아마 추워서 그랬을 것이다.
 금랑이의 부침개는 당연 일품이었다. 각 고장에서 가지고 온 김밥에 과일까지 우리는 즐겁게 먹었다. 비는 억수로 내려 가히 빗물에 밥을 말아먹는 광경이 되고 말았지만 배가 부를수록 웃음이 만발한 모습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먼발치서 우리들의 모습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아저씨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산행은 홀로 오르며 느끼는 생각 역시 좋지만 이렇게 산이 좋은 친구들과의 산행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중 산행
 
 푸석 푸석 뒤따르던 먼지
 목이 타
 허공 향해 입 벌리면
 타다 남은 잎새 비 안고 떨어져
 목 축이는 곳
 개구리도 신난 양 폴싹이다가
 바람보다 먼저
 뜀박질하는 이파리에 놀라 숨는
 도봉산 하산 길
 가을은 깊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퍼부었다. 이미 머리와 옷은 젖어 생쥐 꼴이지만 마음만은 시원했다. 포대능선의 스릴을 뒤로하고 우리는 안전사고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만월사 하산코스를 잡아 내려갔다.
 하산 코스는 그야말로 룰루 랄라였다.
 바람에 잎들은 떨 켜를 세워 저마다 이파리 떨어내기에 바빠 마치 누가 먼저 떨어지나 경주를 하는 것만 같았다. 바람보다 먼저 떨어지는 낙엽들은 그 조그마한 빗줄기에도 무거움을 느끼는가 보다. 올 가을 단풍은 가지에 붙은 단풍보다는 바닥에 쌓이는 낙엽이 더 아름답다.
 특히, 하산 길에서 바라본 낙엽은 한편의 시였고 소설이었다. 우리들은 그 소설속 주인공이며 시속의 시어였다.
 하산 길은 생각보다 짧지 않았다. 길게 이어진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아내가 챙겨준 밤을 나누어 먹으며 우리는 또 웃었다.
 \"이 밤이 저번에 아침산책이란 글에 나온 그 밤이니?\"
 금랑이가 나에게 물었다.
 \"그게 아니고 추석에 장성 홍길동 생가에 갔다가 그곳에서 따온 밤일 거야.\"
 \"우아. 밤 무지 맛있네.\"
 \"참 숙이에게 안부 전해 줘! 같이 왔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고마워 기회가 되면 다음엔 같이 참석할게\"
 우리는 언젠가 다른 산악회에서 먹었던 식당을 찾아 간단한 뒤풀이를 하였다.
 김치찌개의 국물에 막걸리, 그리고 풋풋한 향이 상큼한 도토리묵까지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잊었다.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아주 가는 이별은 아니겠지만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는 이별일 테니 모두들 아쉬움은 그대로 남는가 보다.
 저마다 아쉬움을 눈가에 담고 우리는 각자 맡겨진 열차 노선에 따라 몸을 실었다.
 
 비 오는 도봉산
 
 바람이 멱을 감아 빗질 없이 풀어놓으니
 길 잃은 낙엽 추적추적 비 젖어 운다
 행여 내 님 기차로 오시려나
 산불조심 현수막 이정표 삼아
 낙엽은 다시 길을 터주고
 차창 찍어놓은 발자국
 뚜벅뚜벅
 도봉산 걸어 오르네.
 
 우리는 그동안 디뎌온 발자국을 가슴에 찍으며 오늘의 추억을 인생의 한 페이지에 담을 것이다. 훗날. 아주 먼 훗날, 몸서리치게 그리운 날 있거든 잠시 추억에 취해 보시라. 그 날 눈에 넣어온 그 빨간 단풍잎 그 날 볼에 써 온 그 풋풋한 미소까지도.....
 
 많이 힘들었을 산행이었을 텐데, 많이 양보하고 많이 보듬으며 올라갔던 산행이었을거라는거  친구들의 마음씀씀이에 감동하는 하루였습니다. 내가 무엇으로 보상해야 할까 고민해보지만 역시 글 쓰는 거 말고 뭐가 있을까요? 도봉산 산행에 동참했던 친구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시와글/김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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