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뜨인 시각이 4시 40분.
아이들 소풍이나 다른 나들이로 김밥 준비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 말고는 드문 일이다. 창가에서 내다본 안개 자욱한 새벽은 어둠살이 짙다. 남편을 깨워야 하는데 돌아올 머퉁이가 싫어 시간을 번다. 부엌에서 한참을 달그락 달그락 해도 일어날 기미 없는 남편. 다시 작은 방에서 꽃차 갈무리에 한참을 바스락 거렸다. 색이 예쁘지 않게 마른 건 골라내고 떨어진 꽃잎 추리는 30여분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6시 15분. 조바심이 난다. 이제 깨워볼까? 열 번을 생각하고 겨우 말을 붙인다. “일어나서 나 밭에 좀 델다 주면 안되까~~?” “아 뭣한디 이 깜깜한디 가서- 꽃 안 따면 어쨌다고…….” 출근하려면 지금 가도 한 시간 밖에 못 따겠는데, 지금 아니면 낮에 활짝 피어버려서 차 만들기 안 예쁜데……. 그 와중에도 나는 그 생각뿐인데 화장실로 가는 남편. 6시 30분 십 여분이 지나도 나올 기미 없어 꾹꾹 눌러 참고 있던 화를 내고 말았다. 파르르……. 그 다음은 말해 무엇 하리! 나보다 더 화를 낸다. 아주 볼상사납게. 밭에 가는 내내 말 한마디 없는 부부. 그래도 참 용타. 일이 크게 날줄 알았더니 조용하다. 시계는 남의 속도 모르고 째깍째깍 잘도 간다. 밭에 도착하니 6시 50분. 허연 웃음으로 맞는 꽃이 반가워 남편이야 속이 상하든지 말았든지 꽃을 따기 시작한다. 두 손이 보이지 않게 부지런한 놀림으로. 바구니가 무거워 지려한다. 큰 길에 나를 짐 푸듯 내려놓고 휑하니 가버리던 남편 돌아오는 소리. 어기적어기적. 밭 어귀에 둔 빈 바구니 들고 나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꽃을 딴다. 피식 웃음이 나고 만다. 나는 밭에만 오면 쉬엄 쉬엄이라는 말을 잊어버린다. 배고픔도 잊는다. 머릿속의 온갖 잡념도 잊는다. 시간에 쫓겨 일을 하다보면 저절로 잊혀지는 습관들. 시간이 얼추 되어 감을 느낀다. 묵직해진 바구니를 들어 옮기며 침묵하는 그에게 말을 건다. “몇 시나 됫소?” 대답 없는 그 사람. 쓰러진 꽃나무를 툭툭 차며 걸어가는 소리와 붕붕 차 시동 걸리는 소리. 시간이 되었나보다. 가야겠다. 몸을 일으키니 허리에서 삐걱 비걱 소리가 난다. 오른손으로 허리를 툭툭 두들기며 아이고 허리야 소리. 인정머리 없는 양반 같으니라고. 이 바구니도 좀 들고 가지 그런다고 자기거만 달랑 들고 가부냐. 7시57분. 막내가 짜증내게 생겼다. 얼른 가야지 막내짜증에 이 양반 괜히 내게 다시 인상 쓰것다.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양반 부아앙 차한테 화풀이 할 심산이다. 그만 좀 하지. 둘째가 막내밥까지 먹여서 학교 갈 준비를 했단다. 기특한지고. 라면을 끓여 먹는 남편 그제야 닫힌 입이 열린다. 후루룩 쩝쩝. 웃겨 죽겠다. 웃음난다. 같이 먹잔 말 한마디 없이 우리는 오늘 따로국밥이다. 꽃을 씻어 바구니에 건져 놓고 출근을 한다. 200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