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 서울인지라 길고긴 귀성대열에 끼어 소중한 시간을
길에서 소모하는일이 없다.
시어머님은 올드미스 시누이님이랑 마트에 가셔서 미리 시장도 봐다 놓으신다.
당신 말씀으로는 집도 좁고 손주녀석들 올라치면 번접스럽기도 하고
내가 수족이 온전할때 조금이라도 미리 장만을 해놓으면 며느리인 너희들도 와서 음식 만들기도 좋고 아이들도 뛰어놀기 편하고 그래서 미리 해 놓으신단다.
힘드신데 그만 두시라고 그리고 올드미스 시누이님한테 우리의 본연의 임무를
떠맡기는 듯한 미안함 때문에 더더욱 그러지 마시고 우리 두며느리가 장도 보고 야채도 다듬도 만들고 지지고 볶고 한다해도 올해도 어김없이
60%정도의 미완의 재료들로 우리들을 맞이하신다.
\"울엄니 또 해 놓으셨네...\"
큰형님댁은 여름휴가를 우리랑 같이 떠나기로 했었던거였는데 아주버님이 중요한 일을 맡기로 해서 하루전날 취소를 하는 일까지 벌어진지라 기나긴 연휴동안
가까운 통나무집에 들러 4일 저녁에 시댁으로 입성을 한다고 한다.
우리야 4일날 가도 좋고 5일날 가도 좋지만 깔끔한 우리남편은 어느면에서도
지면 안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사람이라서 시댁가는 일도 남과 같은 날짜에 가야 뒷날이 편하다.
누구는 언제 왔는데 우리는 언제 갔다느니...좀 그렸지요?
그래도 어쩝니까 막말로 살맞대고 사는 사람이니 비위 거스르지 않고 사는게 내
정신 건강에도 좋고 그러다 보면 육체적인 건강에도 좋으니 말입니다.
지금보다 더 젊었을때 펄펄 끓는 혈기로 객기부리듯 뻐댔던 기억들이 떠오르면
요즘은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긴 들어가나 봅니다
5일날 아침에 부산떨며 아무리 일찍 밥해먹고 떠난다해도 12시는 될듯하고
긴연휴동안 집을 비우니 냉장고 또한 텅텅 비어가고
에라 모르겠다
나도 4일날 밤에 남편 퇴근하면 가리라...그래서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뱀 허물벗은양 옷만 갈아입으라하고 시댁으로 달립니다
물론 양치질이며 세수며 다 하고 잠잘 태세로 떠났지요 아예 작은아이는
잠옷을 입고 가겠다고 하길래 \"그래...\"
하고 차에 태워 시댁으로 달려가 잠만 자기로 했는데 남자형제들 오랫만에 만났다고 맥주한잔 한다하고 여자 동서들도 오랫만에 만난지라 수다한마당 걸쭉하게 풀고 뒤늦게 잠을 청했다.
추석 전날에는 남들 다하는 전에 송편에 모두 준비를 해 놓으니 4시가 되었다.
\"형님 우리 영화보러가요..\"
형님은 우리 올드미스 시누이님이고 큰형님이 시누이님한테 제의를 한것이다.
\"그럼 서방님이 표좀 끊어다 주세요..\"
\"네 형수님!..\"
하여튼 형수님 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우리 남편...치사하기가
이루 비할길이 없지만 또 가정의 평화를 위장한 내 미소는 너그러움까지
포장하여 어김없이 식구들의 즐거움에 동조해 준다.
쏜살같이 뛰어나간 우리의 서방님은 8시30분에 시작하는 \'라디오스타\'를 선정하여
표를 예매해 왔다.
거기에 조카들과 우리딸까지 합세를 해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새롭게 단장한 시네마는 젊은 사람들의 천국인양 빈자리 하나없이 상영에 들어갔다.
연휴에 갈곳이라고는 여기가 최고일텐데 우리도 함께 햡류를 했다는 데 만족감이 두배로 밀려왔다.
\"형님 우리는 그래도 행복한거 같아요..지금도 고향에 내려가느라 길에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많을텐데....말예요..\"
\"그래도 명절때는 시골에 내려가는 맛도 좋을지도 몰라...동서는 그래도 시골이 있잖아 ..난 친정도 도시고 보면 그런 낭만이 없다는게 조금 서운하긴해\"
사실 나의 친정은 서울에서 한시간 거리의 시골이어서 큰 스트레스받지않고
명절 연휴를 보낼 수 있다.
영화는 끝나고 올드미스 시누이님은 추미생활이기도 한 프로그램 녹화 시간이 다 되었다고 본인의 스위트 홈으로 달려가시고 형님과 나 어린 조카들 3명을 데리고 사람들 없어 한산한 밤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아이는 놀다보니 엄마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못내 섭섭했던지 입이 대빨 나와서 \"엄마 어디 갔다왔어?\" 하고 쏘아부친다. 쪼끄만게 에미한테....
에미도 좀 즐겨야지 니네는 앞으로 많이 즐길 수 있잖아..
영화보는것도 다 너희들키우느라 반납한지가 오래전인데 이젠 안그러고 살꺼야..
작은아이가 까주는 땅콩을 오도독 오도독 씹어가며 맥주한캔을 형님과 나눠 마시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한다.
동갑내기 형님이고 내가 형님보다 일찍 결혼은 했어도 엄연히 나보다 서열이 높으니 형님예우는 깍뜻하게 해준다.
어린조카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랑 작은엄마랑 나이가 같아? 그럼 누가 언니야? 근데 작은엄마가 왜 엄마한테 존대말해? .. ?....? \"
아이고 녀석 질문도 많군
다 크면 알아...
보름달이 휘엉청 떠오르는 내일은 뭘 위해 소원을 빌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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