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면 나보고 머리끈을 사오라고 한다.
난 대답은 잘한다.
그러면 색깔은 까만 색이고, 머리를 묶을 때 짱짱 해야 하니께
잘 보고 사오란다.
여기는 늘 여는 상설시장도 있지만, 삼일장 오일장도 있는 곳이다.
원체 날짜 감각이 더딘 마누라 성질을 안터라
이젠 아예 달력에 빨간 사인팬으로 둥그렇게 테두리를 쳐 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날이 되면, 그러니까 그 장날이 되면
동네에 뭔일이 터지고, 일하러 가야되고, 뭐 하다보면
장날 지났네 ... 그럼 내일 시장 가지 뭐 이러니
그 머리끈 대신에 노란 고무줄을 묶는데.
이게 풀을때는 여간 곤역이 아니다.
남편은 뒷통수가 절벽이다.
오죽했으면 난 어떤 이(머릿니)가 당신 머릿통에서 살다가 절벽에서 뚝 떨어져
몽창 낙사했다는 말에도 아마 그럴 거라고 한 못생긴 뒷통수다.
아마 어렸을 적에 순둥이라서 한 번 드러 누운상태에 그대로 굳은 뒷통수처럼 보이니.
머리스타일을 이거 저거 해보아도 도무지 그 뒷통수를 살릴 대안이 없었다.
한 번은 파마를 한 적이 있는데, 뒤애서 보니 벙거지 쓴 폼이 영낙없이 가발처럼 나풀나풀거리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보니 금방 교도소에서 석방된 모양이니 남편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조각을 한다고 어디 시골오지에서 두문불출하더니 머리가 산발 해가지고 나왔더란다. 그 때 남편도 결심을 했다니...
이제부턴 나도 머리를 기른다.누구도 뭐라고 해도 난 오로지 머리를 기른다고 주장했다.
농사를 짓는 남편은 거진 다른 친구들도 하우스에 논농사에 과수원을 하는데. 아직은 여기는 남자가 머리에다가 물들이고, 청바지를 찢는다는 사실은 알아도 그런 거 하고 다니면 색안경 낀 간첩을 보듯이 했다. 더군다나 칠 팔십대의 어르신들은 당장 머리 짜르라고 호통을 치는바람에 남편은 정자나무그늘이나 마을회관근처를 빙 돌아 다른 길로 피해다니더니 결국은 머리가 어깨를 넘어가고 이젠 머리끈을 찾으니 나도 별 수가 없었다.
딸아이 핀찾느냐고 그런다. 내가 오랫전에부터 알던 아주머니가 악세사리가게를 하는데
당연히 여자얘들 꽃무뉘달린 거, 물방울 무뉘가 올망졸망한게 잘 빠진 머릿띠를 내보여주는데, 난 선뜻 남편이 묶을 거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껌정색으로 짱짱하게 머리를 묶을 만한거 있냐고 하니 이왕이면 이쁜 거 사지 왜 그런 거 아이한테 사주냐고 그런다. 그래도 난 말 못했다..남편 거라고.
집에 돌아오는데, 버스정류장에 한 할머니 은비녀꽂고 쪽진 머리를 보니 그제야 나도 울 남편보고 쪽을 지면 아마 뒷통수가 조금 튀어나올 까 싶기도 했는데. 그래도 남자한테 어떻게 쪽을 지라고 하나 하다가도, 머리길러 묶는 거보다는 조금 낫지 않을 까 싶고.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보니 남편이 내 손목을 잡고 부리나케 방에 들어가잔다.
이 양반이 뭔일이 있나 싶어 따라 들어서 보니 여름용 푸른색 샌들이 예쁘게 신문지위에 앉아 있었다. 이거 내 신발이야? 디게 이쁘다. 언제 산거야?
남편은 얼른 신어보란다. 신어보니 딱 맞다. 남편도 그랬다, 발만 무지 이쁜 내 각시라고 했는데, 난 뾰루퉁해가지고 삐진 일도 있었고, 그러고보니 나도 머릿끈을 줬다.
남편은 연신 빗으로 뒤를 빗더니 깡총하게 단단하게 묶는다.
그 때
자기야 당신 머리 더길러서 쪽을 지면 어떨까?
뭐?
그래 쪽! 쪽을 지면 머리끈 풀을 때 머릿털도 안 빠지고, 뒷통수 납작한 것도 가려질테고.
배꼽잡고 웃는다. 마누라가 쪽을 한다면 안 웃길텐데.
하긴 남자가 쪽머리을 한다는게 상상이 안 갈 것이다.
여하간에 남편은 그후로 여전히 머리를 기르며 묶고 다니고 있다.
주위근처는 남편을 보고 한 예술을 하는 도사님 같다고 한다.
남편은 못생긴 뒷통수덕에 동네 한 예술하는 도사님으로 불린다.
나도 이쁜 구두신고 발만 이뻐해줘도 오늘은 나에게 과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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