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60


BY 정자 2006-09-27

급하게 방을 구한다고 해도  볼 걸 다보고  잴 걸  다 재보고 그런다.

나처럼 느닷없이 아이 들쳐업고  쫒겨난 주제에

뭘 고르고 말 걸 그런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집에서 두 어달이 지나니

그제야 수세식이 아닌 재래식 화장실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더니

옛날 부뚜막이 그대로 있는 부엌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장 봄이라도 지낼 요량으로  이것 저것 볼 것없이 따뜻한 방이면 족하다 했으니

집구조가  입식이니 구식이니 따질  여력이  없었고 눈 떠보니 정신이 난다고 하더니

꼭 그 짝이다.

 

그렇게 삼개월을 살았는데 이 할머니집을 포함하고 그 동네전체가 재개발 구역이란다.

그래서 주인 할머니가  그랬구나. 전기세 수도세만 내고 살아도 된다고 그랬구나 했다.

하긴 재개발한다고 하는 집을  수리하지도 않았고  이상하게 근처집들도 빈 집이 많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싫어도 좋아도 방을 알아보아야 했다.

난 딸아이를 들쳐 업고  기저귀 가방을 메고 걸어 근처 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비쌌다. 옛날 시집동네는 부잣집 동네였다. 길도 널찍 널찍하고  시장이 가까웠고  그럴듯한

정원도 끼고 있는 집도 모두 거기에 있었다.

 

내가 살 때는 몰랐다. 집도 그렇게 좋고 나쁨에 금 긋는  생각들이 퍼뜩 퍼뜩 파고 들었다.

아이가 등허리에서 매달렸다. 퍼대기를 몇 번 고쳐매고도  난 집을 구하지 못했다.

구하면서도 주인 할머니에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했다.

두고 두고 할머니를 위해서 덕같은 복을 빌어줄께요 했다.

 

재개발 구역에서 조금 빗겨난  외진 동네가 보였다.

이젠 저기만 가서 방있나 없나 물어보고 없으면 어떻케 하나  그렇게 터벅 터벅 걸어

무턱대고  들어선 입구 첫번째 집에 들어갔다.

혹시 이 근처에 방 나온거 있어요?

 

주인은 점심을 먹다말고 날 쳐다본다.

웬 얘엄마가  후줄근하니 느닷없이 들어온 얼굴을 한참 보았다.

민망하지도 않았다. 덥기도 하거니와 등에 업힌 딸아이는 지쳐 잠이 들어 자꾸 옆구리 쪽으로  머리가 쏠렸다.

 

\" 세상에 이렇게 더분디 낮에 얘 익겄네 ...우선 마루에 얘 좀 누버놓고  좀 쉬어되겄네 잉\"

\" 고맙습니다.\"

 

난 두말 없이 아이를 내려놓고 그제야  점심이 지나도 한 참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집 주인 아줌마는  냉장고에서 물통을 통째로 나에게 주었다.

벌컥 벌컥 마셨다. 아이얼굴을  조심스레 살펴보더니

\" 땀띠 나겄다. 방 구한다고 애 잡겄네... 방은 한 칸 있는데 한 번 볼라우?\"

\" 여기예요?\"

 

 나를 끌고  집 뒷마당을 보여줬다.

오랜전부터 집을 비워서  허술하게 보이지만  우선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나았다. 화장실 겸 목욕탕이 같이 있는 수세식이었고  원룸처럼 주방이 딸린 방이었다.

내가  하루종일 고생했더니  마음에 드는 방을 만났는데 문제는 방세였다.

생각치 않게 방세가 쌌다. 주인아줌마가  다른말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내 얼굴을 보니 비싸게 받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난 깍아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는데  정말 고마웠다.

당장 이사와도 되냐고 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방 계약금도 없었다.

주인 아줌마는 전에 살았던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

내 대답을 듣더니 우선 짐부터 옮겨 오란다.

짐이라고 해보았자 아이들 옷가지랑 내 옷 몇 벌이라고 했다.

그럼 오늘 우리집에서 아이들 놓고  시간 날 때  짐가져 오라고 한다.

방세는 천천히 마련이 되거들랑 달란다.

순식간에 벌어진 계약이다.

난  딸을 주인 아주머니에게  맡겨놓고 방청소를 했다.

한동안 사람이 안 살던 집이었으니 쥐도 살았었나 쥐똥이 구석 구석에 널려 있었다.

 

그렇게 후다닥 저녁이 되고

난 주인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 할머니! 할머니!  나 방 구했어요... \"

난 목소리를 냈는데 할머니는  기차 지나가는 소리 듣는 것처럼 깜짝 놀라신다.

내 애기를 듣더니 우리집에 굳이 같이 오신단다.

짐을 같이 들고 가자고 하신다. 

난 그러자고 했다. 큰 아이 앞세우고 할머니와 뒷 서거니 앞서거니 그렇게 삼십분을 걸었다.

 

할머니가 함박 웃으신다.

주인 아줌마 손잡고 연신 웃으신다.

그러더니 입고 있는 치마를 제껴 올리시고

또 속치마를 헤집더니 복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신다.

손수건을 피니  돈이 있었다.

 

\" 이거 방세여...\"

주인 아줌마나 나나  얼이 나갔다.

\"할머니  제가 천천히  돈이 되면 달라고 했는디유...\"

주인 아줌마가  이렇게 말해도 그냥 막 손에 쥐어 주신다.

\" 아녀!  나랑 같이 한 지붕에서 살았던 식구였는디.,,,,

집이 그렇게 철거 한다는데  별 수가 없었네.

내 손주 며느리 같어서 그려... 그냥 내 보내는 거 아녀?

여기서 잘 살고 있으면  갚는 겨...\"

 

 할머니가 나를 보시고 연신 그러셨다.

니 잘살아야 나에게  돈 갚는 거여..

니 잘살아야  한다. 이 집에서..

       
   감상글 쓰기   이름 비밀번호
 
 

천정자2006-02-15,14:33 삭제
할머니가 지금 살아계시면 구십이 넘어 가십니다. 몇 년전에 제가 병원으로 모시고 갔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이셨습니다. 아뭏튼 할머니가 얻어 준 방에서 제가 팔자가 바뀌기 시작 했지요... 꼭 십일년 전 입니다. 그냥 이렇게 푸념하듯 풀어 놓으니 편안하네요... 좋은 하루 되시 길 빕니다.
운주산야풍2006-02-14,18:09 삭제
이게 언제적 얘깁니까? 그 할머니 복 많이 받으셨길 빕니다 지금은 그 할머니 말씀처럼 잘 살고 있는거지요? 우연히 들러서 가슴 따뜻한 얘기 듣고 갑니다 나도 비워놓은 집 두어채있어 몇년전에 어려운 사람 집 못 구해하길래 걍 살게 했더니 나갈 때 필요없는 가구랑 허접쓰레기 그대로 두고가서 치우느라 고생고생 했어요 그리고는 지금까지 비워뒀고 한 채는 무당하는 사람이 방 못 구해서 그러길래 수리해서 걍 살라했더니 지금 5년정도 잘 살고 있네요 명절 때 뭘 선물을 보내오면 나도 그만큼 선물을 해 줍니다 비워 두는것보다는 낫길래...
천정자2006-02-14,12:14 삭제
그냥 묻어놓고 지내면 잊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아픔이었다면 더 빨리 잊는 게 상책인데 그게 미련하게 자꾸 되새김질하는 겁니다. 할 수없이 말보다는 글로 하소연하듯이 풀어 놓아야 편안하니 .... 제글을 찾아 오신 소래포구님. 마음이 엎어진 최지인님. 내 마음이 곱다는 헬레네님 참 고맙습니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고맙습니다라고 넙죽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헬레네2006-02-13,15:44 삭제
행복한 동화 한편을 본것 같습니다 님의 마음이 곱다는 것도 느껴 지구요 어제가 보름 이었는데 오곡밥은 드셨는지요 1년 내내 보름달 처럼 환하게 행복하세요
소래포구2006-02-13,14:04 삭제
정자님 안녕하세요? 여기 들어오니까 정자님의 글이 많네요. 요사이에 왜 안들어오시나 궁금했었는데 반갑습니다. 정자님도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있었네요. 자주 들르겠습니다.
최지인2006-02-13,12:18 삭제
펄썩, 제 마음이 엎어집니다. 엎디어 뜨거운 물기를 그냥 멀거니 바라봅니다. 살면서 이런 따뜻함들로 하여 살이의 곤궁함마저도 지나면 빛이었노라 가만히 만질 수 있는 거겠지요. 하여, 지금의 생활이 더욱 당당한 빛이 나는가 봅니다. 님의 글들을 죽 읽으면서 범상치 않은 삶의 깊은 굴곡들을 느끼곤 했었네요. 오늘은 감히 꼬리 잡고 갑니다.
  우리집 주방을 바꿔드립니다!   캐논 종이접기 대축제!  
  200만원상당부엌가구받기   이웃과함께 쌀나눠갖기!  
 
   
   
회사소개 | 언론 보도 | 고객센터 | 마케팅문의 | 서비스 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이트맵

Copyright ⓒ Inuscommunity.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627-8 tel.02-569-9910 fax.02-569-575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