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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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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팬티장사 해


BY 정자 2006-09-21

제목을 정하는것도 일이다.

한마디로 곤역이다.

그렇다고 무제라고 하기는 너무 무책임 한 것 같고.

 

얼마전 나의 이십년지기 친구를 만났다.

만나려고 일부러 간 것도 아니다.

어찌 어찌 풍문에 안 좋은 소식도 있고, 친정동네에 근처 이사왔다고 한 번 전화오더니,

나도 그 쪽도  무엇이 그리 바쁜 지  만남이 그렇게 급한게 아니었다.

 

지금 뭐하냐고 하니까.

응! 나 지금 팬티장사 해!

 

말도 간단하다. 더 이상 물고 들어 갈  질문이 뚝 끊기게.

원체 말주변이 없다. 내 친구는.

 

그래도 나는 잘 아니 그걸로 말지만,

다른 이는 혹시 이 여자가 나랑 말하기 싫어서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었다.

 

팬티장사라...

그럴 듯한 가게에 팬티만 놓고 팔지는 않을테고, 속옷을 갖가지 잘차려 휘황한 불빛으로 치장한 가게를 나는 상상했다.

 

그레서 찾아 간 시장골목에서 나는 주춤헸다.

휘황한 불빛은 그렇다치고, 차도 다니기에 좁은 골목에

반찬가게와 마주한 가게들 사이에 하루종일 쪼그려 앉아 쪽파를 까고, 그 옆에 붉은 강낭콩을 담은  작은 소쿠리를 놓은 자리를 겨우 피해서 걸어다니는 난전이었다.

 

서울에도 아직 이런 시장이 있구나 했다.

나의 친정동네에서 되레 어디 멀리 떠돌다 느닷없이 나타나니, 모두가 생경하고 낯설었다.

내 친구의 가게는 그런 고만 고만한 가게  사이에 겨우 끼여 있고, 그나마 바깥에 늘어놓는 것은 꿈도 못꾸게 길이 좁았다.

 

내가 들어서니 아이들만 가게에 앉아 있었다.

여기저기 대충 진열한 듯 싶다. 팔면 팔리는데로, 안팔리면 안팔리는 데로 구텅이에 여기저기 몰아 놓은 폼새가 여지없이 내 친구의 성격이 나오는 것 같다.

 

가게 뒤편에 한 평이 될까. 장판을 깔아 놓고, 그 중간을 작은 냉장고가 턱하니 벽처럼 가로 막고 서있다. 냄새도 무슨 퀴퀴한 냄새도 나고.

 

친구의 아이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무슨 팬티를 사려는 손님으로 봤는지.

울 엄마 바깥에 은행 앞에서 청바지 팔고 계셔요!

너 지금 학교 몇학년이냐?

초등학교 이학년인데.

 

아이가 그제야 나를 유심히 살핀다. 눈치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가 하는 표정이다.

그제야 난 웃으며 말했다. 야! 임마? 엄마 친구야? 모르겠어?

 

아.! 예... 안녕하세요?

그려..나는 안녕한 것 같은 디, 니네는 아닌 것 같다. 하고 말이 튀어 나올 뻔했다.

아이 말 듣고 은행 앞으로 나가보니. 정말 내 친구가 청바지를 밀대에 척 척 걸어놓고, 그옆에 구루마에도 널찍널찍하게 길게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도 잘 모른다.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하필이면 그 때 목구멍이 사레가 걸린 것 처럼 기침이 나왔다.

 

그래서 난  그 뒤로 다시 걸어 조금 진정을 시키고 나와서 이름을 불렀다.

아이들 이름도 아니고, 내 친구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화들짝 놀란다. 나도 얼싸안고 끌어안아 서로 반갑게 얼굴 보고 마주 웃는데.

 

나보고 그런다.

야야.. 니 이상하다, 어렷을 땐 디게 못생겼는데. 니 어디 손댓나? 왜 이렇게 이뻐진 거야?

흐흐. 원래 미인은 늙을 수록 빛이 나는 거여? 그러는 너도 왜 이렇게 쭉쭉 빵빵이냐?

 

서로 그렇게 이물없이 주고 받다보니 장사고 뭐고 우리 접고

어디 술이나 하러 가자고 했더니

단  한마디 말로 거절이다.

야! 나 교회 나가잖어?

 

으이그 그 우라질 교회는 왜 또 여기서 튀어나오냐? 아니 막말로 우리 술먹는데. 교회가 술값내주냐? 아니면 어디 치부책에 따로 적어 논데?

 

글고, 너하고 만난지 몇 년만인데. 맹숭맹숭하게 마주보고 뭘 애기한다고.?

술이 좀 그러면 우리 시장막걸리 한잔 씩 할래? 니 막걸리 좋아하잖아?

 

내 친구 얼굴이 굳는다. 니 엄마한테 이른다고 하고, 믿음이 좋은 니네 엄마랑 왜그리 안닮앗냐하고. 그렇게 치고 박고 해도 얼굴에 장난기가 다분하다. 결국 닭발 안주에 소주 한 병 세워놓고 마주 앉아 보니.

 

길에서 본 내 친구얼굴이 술집 환한 형광등에 자세히 보니, 나보다 더 주근깨가 어둡게 내려 앉았다. 기미인가...나도 쓴 소주기운 빌려 말 한마디 용하게 잘살아야 한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더라. 뭐 이런 시덥지 않은 말을 하려고 보니. 내 입이 술에 붙었나 영 떨어지지 않는다. 

 

야! 니 영순이 소식아냐?

영순이가 누구지?

아 왜 있잖어? 중학교때 고고장에 가서 춤추다 학교에서 퇴학 당한 애 몰라?

 

 그제야 가물 가물한 기억이 선명해진다. 유독히 눈이 커서 왕방울이라고 했던 아이.

나도 누구도 모르던 그런 춤을 좁은 골목길에서 시범을 보이며, 춤추던 아인데. 어느날 추운 12월에 크리스마스 파티한다고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던 아이였다.

 

응, 맞다. 생각난다. 근디..개도 지금 여기 사냐?

아니. 얼마 전에 죽었다.

뭐?

 

암 수술하면 산다고 했는데. 그 놈의 돈이 뭔지 ... 수술시기를 놓쳐갖고, 그래도 수술은 받고 죽는다고 하더니, 수술 이틀전에  죽었다. 그게 남편이라고 그래도 집은 안까먹는다고 집은 남겨놓고 그럴려고 그런 것인디..그 남편이 얘들 몽땅 시설에 갖다주고, 지는 어떤년이랑 살림 낸다고 하더라.

 

먹먹하다. 나의 귀는 그렇게 아득하게 멀어진 것 같았다. 죽은 영순이 애기를 들을려고 온 것은 아닌데, 그것도 어이없게 이혼한 나의 친구한테 들을 애기는 아니었다. 이래저래 속은 더 타 들어가니.

 

나 니 맘 다 안다.

너 나한테 말하려는 거 뭔지 다 안다.

그래도 말하지 마라. 내가 죽은 영순이 왜 애기했냐면,

그래도 난 아직 살아있잖어. 비록 이혼한 남편도 멀쩡히 있고.

나도 아직 건강하고.얘들도 건강하고

그러니 니 나한테 암말 안해도 된다.

 

친구의 술잔이 비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빈 잔에 말을 채울 듯이 술로 채웠다.

이젠 가을이다. 나도 가을을 말없이 보는 것처럼

내 친구를 그렇게 오래 오래 마주했다.

 

 

 

 

작업공책) 긴 하루들이 뭉쳐서 이뤄내는 것이 오늘일 것이다.

                그 오늘에 한 번은 붉은 놀을 보일 것이고.

                 때로는 푸른 메아리로 퍼진다. 그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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