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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무너지는 자존심)


BY 영영 2006-09-18


5월이면 우리집 안마당에는 진핑크빛의 목단꽃이  진한 향기와 함께
고고한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나온다.
목단은 인천작은아버지가 한약재로 쓰이는건데 꽃이 이쁘다하여
고향집 마당에 목단 뿌리를 흙째 가져와서 숨은 것이다.

5월은 행사의 달이다.
어머니는 가위를 들곤 목단나무 앞으로 다가가시더니
막 봉오리를 비집고 나오는 싱싱하고 예쁜 송이들만 골라선 
가위로 잘르고 다듬어서 하얀 한지로 정성스레 포장을 하신다.

매년 5월 15일 스승의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하시는 일이다.

\"이거 선생님께 갖다 드려라? 
드리면서 선생님 일년동안 수고해주셔셔 고맙습니다,, 라고 말씀드려?\" 
라는 말과 함께 어머니는 나의 작은 품에 고풍스럽고 커다란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주신다.

어머니께서 선생님께 갖다드리래요 라는 말만 하고 
일년동안 수고해주셔셔 고맙습니다 라고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말은 까 먹고 
넙죽하니 선생님께 꽃다발은 전해 드리면 

\"아이구,, 이런 이쁜 꽃을,,,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
라고 하시며 꽃다발을 안아받으시는 선생님의 얼굴엔 
목단꽃보다도 더 크고 환한 표정이 가득하셨었다.
40여년전의 일이었다.

서울이 고향인 어머니는 농촌의 한 일가 종가집의 작은부인으로 시집을
오셨어도 바탕이 조금이라도 단정칠 못한구석이 보인다거나 
타인에게 쉽게 보이는 그런분은 아니셨던것 같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같은마을의 주민들에게나
집안의 인척들 간에서도 종가집의 큰 사림을 맡아 하는 안주인으로서
상당한 예우와 칭송을 받아가며 큰 살림을 꾸려 나가셨던걸로 기억한다.

\" 형님이 담아 주시는 장 맛은 저의 서울동네에서도 소문 났지 머예요..\"
\" 아이구 우리 형님은 고추장을 어떠면 이렇게 곰팡이도 하나없이
잘 간수를 하신대요?..\"
\"형님이 접때 보내주신 콩하고 고추가루 있잔아요. 그거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몰라요 형님,,\"

내가 어렸을때 명절이나 제사때 집안 아저씨나 작은 아버지 작은어머니들이
내려 오시면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들이었다.

\"집이 망하면 장 맛부터 변한다던데 어째 형님솜씨가 
예전만 못한것 같아요 형님... \" 이라고 작은어머니들께서 쓸쓸하게
하시던 말들도 생각난다.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나 음식 솜씨는 동네서도 
어머니를 우월하게 생각할정도로 어머닌 솜씨가 좋으셨다.
가족들 보신용으로 사골이다 삼계탕이다 소고기육회다 불고기다
음식도 도시적인음식을 잘 하셨던것 같다.

경찰서장이 새로 부임해 와서 우리동네로 방문한다고 오면
이장은 꼭 우리집으로 데리고 와서 어머니가 식사대접을 하게끔 했다.
국회원원 선거일을 앞두고는 그당시 김종철(김종필씨의 삼촌인가..) 
국회의원이 일행들을 이끌고 동네에 방문해도 우리집으로 모이는바람에
어머니는 부랴부랴 밥이나 다과상을 대접하곤 하셨다.

마을사람들도 어머니에 대해서 어떤 존중감을 가졌다라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동네사람들은 급한일이 있을때면  어머니께 찾아와서
털어놓고 많은 자문도 구하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명절때가 되면 동네사람들은 제일먼저 첫집인
우리집으로 들려서 세배를 하곤 동네를 돌곤 했다.

그건 우리집의 가세가 기울고 난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정갈하고 어느 상황에서고 그 누구 앞에서도 
품위와 인격을 잃지 않으셨던 60년간 지켜 온 어머니의 자존심이 
이 몬난 막내딸의 결혼으로 인하여 서서히 아프게 무너져 내리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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