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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해뜨는 나의 세상 속으로


BY 오회숙 2006-09-07

 내가 어릴 적 살던 집은 동네 한가운데쯤에 있었다.
그 집 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논배미를 지나 솔숲 묘 마당이 환하게 보였다. 묘 마당 한 귀퉁이엔 자두 과수원 원두막이 보였었다.


그 원두막에서 나는 자두 지킴이를 했고, 솔솔 부는 바람은 나의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숙제를 한다고 펼쳐놓은 책을 베게 삼아 엎드린 채 깜빡 졸다가 잠이 들어 깜깜해서 오빠들이 교대할 때까지 꿈속에서 헤매 이던 날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나와 10살 차이인 큰 오빠는 유난히도 하모니카를 잘 불었다.
오빠가 하모니카를 불어대면  동네 언니 오빠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묘 마당에 모여 노래를 같이 부르곤 했었다. 비오는 날 하모니카 소리는 더 슬프디. 슬픈 곡조로 온 동네를 감싸 앉았던 것 같다.

 

 그 시절, 우린 십리 자갈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고, 다들 어려웠지만 형편이 더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빈 도시락을 가지고 오면 강냉이 죽을 하나 가득 퍼 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구수한 게 참 맛도 있었다.

그러다가 강냉이 죽은 빵으로 바뀌었고, 끼니를 걱정하는 집들이 참으로 많아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집들이 많았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러므로 동화책 이라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고, 오로지 눈에 들어오는 건 논, 밭 그리고 들풀들 들꽃들, 우리들의 놀이는 땅따먹기, 자치기, 공기 돌 놀이, 고무 줄 놀이 그런 것 들이  우리들의 유일한 놀이 감 이었다.

 

그러니 어찌 꿈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초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식구 하나 줄인다고, 밥이나 실컷 먹고 살라고 공장으로 부잣집 식모살이로 보내지는 그런 세상이었으니 무슨 꿈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살았겠는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그 시절,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암울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아픈 기억들은 조각처럼 흩어져 추억으로 남아있고 차곡차곡 시간을 포개온 꽉 찬 사십대 후반, 결혼을 해서 스물 세 개의 강을 건넜고, 군대로 객지에 있는 대학으로 자식들은 내 곁을 떠나있다.

 

이제, 물살같은 울음도 가슴으로 삭일 줄 알 만큼 먼 인생길을 달려와 머물고 있다.
나 자신이 미완성의 존재라는 사실도 인정한다. 뒤 돌아보면 어느 순간, 지극히 작은일에 만족스러워하고 행복을느끼며 내 가족의 평안이 내 행복이고 꿈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시간들도 있었다.

 

 지금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으신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리라.
내 꿈은 자식들의 성공도, 남편의 출세도 아니다. 남들 다 부러워하는 부자도 아니다.

내 꿈은 오직 한 가지,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미로써 아내로써 할 말은 아니지만,  누구의 어머니이기 전에, 누구의 아내이기 전에 난 나이고 싶다.
얼마가 남았을지 누구도 모를 삶이지만 이제 부터라도 더 나이 들어  자식 때문에, 남편 때문에 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노라고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찾고 싶다.


 나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이 아까워  벌벌 떨며 책 한권도 제대로 사지 못하고 어두침침하고, 더운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헌 책을 고르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에어컨 바람 시원하게 불고, 음악이 흐르는 대형 서점에 들러 폼 잡고 내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내  듣고 싶은 음악을 듣기위해, 몇 만 원가는 바흐의 CD도 서슴지 않고 사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계절 탓인지 높이를 잴 수 없을 만큼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삶의 회의가 밤바다만큼 깊고, 파도소리만큼 덧없다. 밤 바다 파도소리가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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