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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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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공모작) 서른을 넘긴후에


BY 양미현 2006-08-31

산모롱이를 휘감고 기적소리와 함께 검은연기를 날리며 사라지던 기차는, 먼 환상의 나라를 약속해주던 나의 꿈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스라히 석양이 지고, 붉은 노을로 불타던 차창을 덜컹대면서 그렇게 사라지던 기차를 타게 되고 저 산모퉁이를 도는 그 어느 하루가 오기를, 난 그리도 소망했었다.

\"아부지, 지도 중학교 가고싶다꼬예.보내주이소~\"

낮에는 농사일로, 밤에는 재봉틀로 눈코 뜰새가 없었던 엄마에게도, 또 완고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던 아버지에게도 난 바지가랑이를 잡고 매달렸지만, 나는, 아침일찍 일어나, 뽕잎을 따러 싸리대문밖을 나서야만 했다..

그 얼마나도 가고 싶은 학교란 말인가, 다람쥐가 튀어나오는 산길을, 뽀얗다못해, 푸른 날이 선 풀먹인 하이칼라차림의 교복을 입고 걸어가서 그렇게 나는  학교를 다니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붉게 익은 뽕나무열매가 어느덧 한 광주리를 채워가고 있을즈음,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잠시 나무그늘에 앉아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점점 더 산에 내리는 빗줄기는 거세지기만 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해, 남의 집 수숫대를 짓밣고, 콩대넝쿨을 헤치며 집에 도착한 내 몰골이 물에 빠진 생쥐 그자체였는지, 그렇게 무뚝뚝하기 이를데없는 아버지께서도 헛기침을 하셨다. 그리고 며칠후, 아버지는, 오랫만에 하얀 모시적삼저고리를 받쳐입고, 나와 함께 길을 나섰다.

\" 니, 공부 많이 하고싶다고 했제, 이젠 너도, 학교에 갈수 있는기다. 열심히 하래이.\"

아버지를 따라 나선 길은, 분명 전에, 염소를 팔려고 나선 길이 아니었다.

드디어, 기차역에 도착하고, 떨리는 발자국을 옮겨, 기차를 탔을때의 그 가슴벅참!

그렇게 한나절이나 걸려, 서울역에 도착해서, 변두리 시장통으로 들어가, 당도한곳은 커다란 간판을 내건 어느 약국집이었다.

\"정말 이 아이가 일은 잘할까요? 얼굴은 똘망똘망한데, 어머나, 키가 이렇게 작은줄은 정말 몰랐네~\"

\"아, 아니라예, 우리 아아는, 똑소리나게 야무진 아이라요. 믿어보이소, 그리고 재꺽재꺽 일도 잘한당께.그라믄, 잘 부탁하입시더.\"

화려한 꽃무늬 홈웨어차림의 중년여성과, 우리 아버지가 건네는 대화를 통해, 난 이 약국집에 일년동안, 가정부로 팔려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대화를 다 끝마치고 일년치의 품삯을 건네받는 아버지의 굵게 옹이진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 니, 잘해야 한데이..\"

도망치듯이, 오동나무대문을 황급하게 여시고, 길을 나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너머로 짙게 내려앉던 저녁어둠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석필화로 남아있었다.

 

약국집에서의 가정부로 있던 시간은 너무도 힘들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짓고, 코흘리개 아이들을 등에 업은채 약국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지내야 했다. 그와중에도, 나는, 하지못한 공부를 위해, 검정고시 학원을 저녁으로 다녔고, 일년여를 앞둔 그해 봄 어느날, 고졸검정고시합격증을 받았다.

밤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 검정고시합격증을, 보여드리던 날, 우리 고향식구들의 감격으로 얼룩진 그 표정에서 일약 꿈에 기댄 그들의 마음을 읽을수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스텐냄비를 하나가득 머리에 이고, 장사를 하러 기차를 타시던 엄마를, 종종 만날수 있던것은, 새벽녘 기차역앞에서였다.

또래친구들보다 2년남짓 빨리 얻게된 고등학교 졸업장덕분에, 나는 서울의 한 약품회사에 근무할수있게 되었다. 그로인해 집을 떠나와 생활하게 된 나는, 그렇게 중풍으로 몸져누우신 아버지를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어머니를, 간간히, 새벽녘 기차역에서, 혹은 늦은밤 철로앞에서 만나곤했었지만 우리들의 예상치 않은 만남은, 늘 서로의 손등을 부둥켜안고, 추운 겨울새벽날, 알량한 깡통불앞에서 동태같이 언 얼굴을 바라보다가 짧은 이별을 하곤했었다.

 

약품회사에서의 십년동안의 세월을 지내는동안, 나도 한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또 지금은 세살된 아기엄마가 되어 된장찌개를 끓이고, 빨래를 널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덧, 내 나이 서른을 두해나 훌쩍넘기고 살아온 이날도 계절이 지나가는 바람냄새가 물큰하니, 널어둔 빨래사이로 밀려온다.

 한때 유행했었던 스텐냄비를 보면 아련한 슬픔이 모래알처럼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건, 꽤 오랫동안, 그 냄비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하러 다녔던 엄마때문이었으리라, 내 꿈은 참 많이도 바뀌었었다, 늘 찬장마다, 가지런하게 정갈하게 닦아서 올려두셨던 엄마의 그 스텐냄비, 그리고 잘 깨지지 않는 놋쇠그릇들을 보면서, 난 저렇게 살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자꾸만 세월속에 늙어가시는 엄마의 얼굴과는 달리 세월을 더해갈수록 더욱더 말간해지고 빛이나는 그 찬장속의 남비들은, 힘들고 고단했던 엄마의 삶을 은연중에 말하는 것 같아서, 언젠가는 반드시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 또 다짐하곤 했었다.

그러했기에 나는, 창가마다 노을로 불붙은 그 기차를 타기를 십년가까이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병으로, 이 세상을 떠나신 우리 아버지가 종종 생각날때면, 난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떠올린다. 아마도, 아버지는, 우리 어린시절, 방영했던 그 흑백텔레비젼의 그 만화처럼, 기차를 타고 가서 그 여행길이 끝나는 어느 한 종착지의 밝은 별에 내리셨을 거라고..

굳이 그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속 한편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동안, 그 초라한 어깨에서 내려놓지 못한 가난의 짐을 이젠 그만 편히 내려놓고 지내셨으면 하는 꿈이 있기 때문이고, 그렇게 가시는 내내, 단 한번도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만 했던 딸이 드리는 사죄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끔, 내 입가에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것은, 우리집 찬장에 놓인 남비들도 전부다 반짝반짝 빛난다는 사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딸은 점점 엄마를 닮아간다는데, 혹여나, 광을 발하는 은색의 남비들은, 어쩌면, 태고적 먼옛날, 천형처럼 강물을 거슬러 오르던 은어떼들이 화석으로 남긴 은빛비늘이었을지도 모르리라.

그리고 오랜세월동안, 기차를 타고 타지를 다니셔야 했던 엄마와 나는, 세월의 강물살을 쉬임없이 헤쳐나가던, 은어떼였을지도 모르리라. 남루한 은어떼...

이젠 누가보기에도 영락없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나에게 그래도, 꿈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변할것같다.

그 오래전 어느날, 햇살좋은 가을마당을 멍석삼아 신나게 털어보았던 들깨가루가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생각난다. 바람이 불면 서걱대곤하던, 담장밑의 풀들처럼 오늘 나는, 기차의 기적소리에 가슴한구석이 아련해지던 그 어느날을 검은 들깨가루같은 흑점을 털어내듯이 조용히 글로 써내려갈줄 아는 시인이 되길 소망한다는 깊디깊은 꿈 한조각을 오랫동안 보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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