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 발걸음으로 세 시간이면 갔다 올 수 있는 산을 일곱 시간에 걸쳐 다녀왔다. 한마디로 게으른 산행이었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많은 산행. 나와 같이 이런 등산을 하는 사람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보니 자주 산을 오르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나 홀로 산행을 할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없던 중 귀한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친구는 주중에 시간이 되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쉬는 동안에 이 친구와 산엘 자주 드나들었고, 한 친구는 주말에 시간이 많아서 게으른 산행을 동행할 수 있게 되었다.
게으른 산행이란? 힘들면 쉬었다가기, 앉기 편한 바위가 있음 앉았다가기, 경치가 좋으면 경치 구경하기, 꽃을 발견하면 꽃 들여다보기, 계곡에 앉아 물소리 듣기, 멋들어진 나무 올려다보기, 차 마시고 싶으면 차 마시기, 과일 먹고 싶으면 과일 먹기, 할 이야기가 있음 퍼질러 얘기하기, 졸리면 자다가기. 이것이 게으르게 산행을 하게 되는 요런 저런 핑계와 이유가 된다.
나는 산에 파묻혀 태어났다. 아파트촌처럼 눈을 뜨고 바라보면 사방이 산이었다.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자라고 산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인데, 도시에 살면서 산이 그리워 향수병이 들 정도였다. 중학교시절부터 결혼할 때까지 왕십리에서 살았는데, 왕십리 길바닥은 시멘트바닥이었고 집들은 어깨가 꼭끼어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히는 동네였다. 산등성이도 보이지 않던 서울이라는 도시. 서울을 벗어나 일산으로 왔지만 일산은 아파트가 산처럼 높은 곳이었다. 아이들을 키워 놓고 산을 찾기 시작한 건, 컴퓨터를 하기 시작하면서 산 동호회를 가입하고 그렇게 산 좋아하는 사람들과 산을 올랐는데, 이들은 산을 찾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목적지를 정해 놓고 뒤도 옆도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앞으로 전진뿐이었다. 목적을 향한 정복,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한 경쟁, 더 길게 더 빨리 가야만 채워지는 욕심, 남들이 가지 않은 곳, 남들이 가니까 가봐야한다는 과시욕. 도시에 살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데, 산에 올라서는 더 숨이 막혀 꼬꾸라질것 같았다. 산 동호회 두 군데를 가입해서 억지로 따라 다니다가 그 곳에서 두 명의 친구를 만나서 둘이서만 산을 다니게 되었다.
처음 만난 친구는 그러니까 주중에 산에 같이 다니는 친구는 몸이 약해 빠르게 산을 오르지 못하는 체질이다. 물론 나처럼 꽃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인생 살면서 서두르고 욕심 부린다고 안 될 일이 되냐고? 하면서 느긋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나와 통했기 때문이었다.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좁쌀알만한 꽃을 볼 줄 아는 맑은 감성과, 목적지까지 못가도 된다는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나와 맞아서 몇 년째 산 친구가 되었다.
두 번째로 만난 친구, 그러니까 주말에 같이 다니는 친구는 누구 못지않게 빠르게 멀리 산을 오를 수 있는 친구인데, 자연을 벗 삼아 산을 오르고 소나무 그늘 바위에 걸터앉아 느긋하게 자연을 바라보는 마음이 나와 같았기 때문에 일년째 산 친구로 남게 되었다. 경쟁도 시기도 욕심도 세상새장에 잠시 놓아두고 산에서 만큼은 산에 있는 것들에게 감사하며 바라보는 마음 그 마음이 나랑 통했다. 산 길가에 피어 있는 한 송이 야생화에게 감정이 생기고,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자라는 소나무를 안아주며 우리가 만든 바위카페에 앉아 허브 차와 둥굴레 차와 커피를 마신다. 세 시간 산행을 일곱 시간이나 걸리도록 산에서 놀다가 쉬다가 내려온다.
산이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계절마다 다른 세계와 느낌으로 변화무쌍하면서도 항상 그 자리에서 참고 기다리는 존재. 내가 떠나지 않으면 절대 먼저 떠나는 않는 변한다는 것이 먹는 건지 입는 건지 뭔지도 모르는 산, 길도 아닌 길을 가거나 자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정없이 패대기를 치는 섬뜩한 산, 자연을 벗 삼아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겐 간도 쓸개도 빼주는 산, 집도 있고, 테라스도 있고, 마당도 있고, 짜릿한 물도 있고, 먹을 게 지천이고, 놀 거리와 즐길 거리가 즐비한 산, 아찔한 아름다움과 아찔한 공포가 공존하는 산, 이런 산을 모르고 앞만 보고 목적지를 향해 정복하려고만 한다면 산을 즐기려 오는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 하던 버릇을 그대로 산에다 접목시키는 것이 된다. 산에 오지 않는 것보다 오는 것이 훨씬 윤택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겠지만 치열한 세상살이와 뭐가 다르겠는가……. 뿌리와 줄기가 세상살이 욕심으로 가득한데 잎이 무성한들 다를 게 무엇인가…….내가 스스로 비우지 않으면 절대 찾을 수 없는 만족, 그것에 따르는 행복. 그렇다고 나처럼 게으른 산행을 한다고 해서 새장같은 일상생활이 달라질게 없지만 산에서 만큼은 비우고 여유롭고 자연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 것이다.
나와 같이 게으른 산행을 하는 친구, 두 친구들이 산처럼 그 자리에서 영원하길 바란다면 이것 또한 욕심일지 모르지만 서로 산에 오를 수 없을 때까지 곁에 두고 싶다. 산처럼 계절을 따라 변하면서도 결국은 변하지 않는 기다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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