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자입니다. 그래서 좋다거나 싫다거나 그런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게 주어진 삶이 여자란 것만 확실할 뿐입니다.
제가 여자임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결혼하면서부터일 거예요.
결혼을 하고보니 제게 주어진 여자란 운명이 참 슬픈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여자 중에서도 당당하고 씩씩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몫을 거뜬히 해 나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전 그런 자리의 여자가 아니었나 봅니다.
시댁조카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제일 큰 시누님 아들입니다.
나이가 제법 되었는데 저와 많이 친하게 지낸 사이입니다.
그 조카의 결혼을 시누님은 처음에 반대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근데 결국은 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자식이 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나 봅니다.
얼마 전 그 조카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가 외삼촌이 외숙모 쥐고 살 듯 살 수 있으면 결혼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다들 제가 남편에게 꼼짝 못하고 사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내심 좋았던가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시던 어머님께선 그냥 웃습니다.
남편도 웃긴 했지만 결코 듣기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전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바보처럼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웃고 있는데 괜스레 울컥하는 가슴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볼멘 목소리로 토해내는 짜증을 저도 놀라면서 듣게 되었습니다.
“뭐, 잡고 잡히고 그런 것을 미리부터 생각하니, 넌 네 여자가 잡혀 살면서 힘들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니? 그냥 서로 아껴주고 위해줄 생각을 해야지. 외숙모는 이렇게 사는 게 별로다. 절대로 그런 생각하지 마.”
사실 남편도 압니다. 제가 힘들어하며 산다는 것을. 사실 그것을 굳이 남편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습니다. 남편이 그것을 원하는 것은 절대 아니랍니다.
그저 남편은 매우 강한 사람이고 전 저희 엄마 표현 그대로 옮기자면 기가 굉장히 보드라운 사람이기에 각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렇게 살게 된 것입니다.
결혼 전 국민학생이었던 시댁조카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아이들 앞에서도 주눅 들어 쩔쩔맬 정도였으니 굳이 남편 탓 할 것도 없겠지요.
제가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래도 똑똑한 척 하면서 남에게 인정받았던 편이고 주위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대하며 배꼽 잡게 만들던 꽤 배짱 두둑한 사람이 바로 저였는데 이제 그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조카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어쩜 나는 제대로 자기 몫을 해내면서 당당히 여성의 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조카가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저희 집에 놀러왔습니다.
그때 전 정말 희한한 저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그동안 저희 집에 몇 번 놀러 온 아가씨라 제법 익숙해져 있었던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다른 때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녀의 항상 주눅 들고 조심스러워 하던 모습에서 나를 보는 듯 하여 따스한 연민의 마음을 가졌던 편입니다.
그런데 이 날은 좀 뜻밖이었습니다.
우리 집 분위기에 익숙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너무 쉽게 하고 어른들 앞에서 자기가 가져온 책이나 읽고 또 힘들다며 침대 위에 눕기도 하는 등 조심스러워하는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낯섦이 전 왠지 싫었습니다.
그녀가 쩔쩔매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원했는데 막상 그런 모습을 대하니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 잘못이겠지요.
제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겠지요.
하지만, 사실 제 딸아이가 남의 집에 가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도 내키지 않습니다. 제 가르침이 딸아이에게 수용된다면 전 저처럼 행동하게 할 것 같습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그러나 딸아인 절대 저처럼 살 아이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게 다행인지 아닌지 실은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세상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여자라는 운명이 굴레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자꾸 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은 하지 마라. 그냥 네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게 네 능력이나 키워나가라.
조카아이에게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남편과 제가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결혼하지 않는 것이 백번 낫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묘했던 것은 그 말을 하는 남편을 보며 어떤 서운한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편 또한 제게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동지 의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저 결혼은 몹시도 힘든 길이라는 데 대해 서로가 공감했을 뿐, 거기에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나 그런 감정은 전혀 깃들여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남편을 만나게 되면 거부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참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절대 결혼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착각이 아니라면 남편도 저와 조금은 비슷한 감정일 것입니다.
제가 여자의 자리에서 몹시 힘들어하고 있다면 남편 또한 남자의 자리에서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음을 저도 알 듯 합니다.
그래서 다시 만난다면 차라리 연애나 하며 남편과의 인연을 맺고 싶습니다.
매일 같이 하게 되는 기도가 있습니다.
아들아이가 신부님이 되어 질곡 많은 세속세상사 힘들게 살지 말고 신의 영역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기를 간절히 청하게 됩니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관계들을 굳이 맺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관계를 많이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참 두려운 일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아픔이 얼마나 많은데 너무도 겁 없이 그런 인연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집착하지 않으며 사랑 속에서 살 수 있는 삶이 있다면 그것을 아들아이에게 권하고 싶은 것입니다.
가족은 참 아픈 관계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아직 어린 중2 아들이지만 아들은 제 소망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른 얼른 세월이 흘러 빨리 노년을 맞고 싶습니다.
모든 관계로부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