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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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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BY 蓮堂 2006-07-19

 


우리가 어렸을 때 흔히들 묻는 말이 있다.

‘장래 희망이 뭐냐?’ 아니면 ‘존경 하는 인물이 누구냐?’

이렇게 물으면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의 대답은 다르다. 남자 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대부분  ‘장군’이나 ‘대통령’ 그것도 아니면 유명한 과학자를 꼽을 것이고 존경하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을 단연 톱으로 선호했다. 반면에 여자 아이들은 거의가 ’신사임당‘을 꼽았으며 ’현모양처‘가 되길 원했다. 장래희망과 존경하는 인물의 함수 관계가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조금 더 발전하면 외국의 유명한 인물을 장래모델로 삼아서 분야별로 선호도가 달라지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세계적인 위인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요즘 아이들 같으면 유명한 야구 선수나 축구선수 또는 한창 줏가 오른 연예인이 위인들을 앞지르고 우선순위에 올랐을 것이다. 골리앗으로 발달한 대중매체의 힘이다.

나 역시 \'신사임당‘을 존경했고 ’현모양처‘가 꿈이었으니 어쩌면 넓지 않은 상식으로 그 이상의 인물은 접하질 못했기 때문에 선호도나 장래 희망이 왜소할 수밖에 없지 않았지 싶다. 질문의 고정적인 틀을 크게 벗어나진 않아서인지 ’제일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냐?‘ 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묻기엔 질문의 다양성이 결여된 세련된 시대가 아니었음이다. 아마 그렇게 물었다면 어떤 대답들이 나왔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나도 선뜻 대답할 만큼 주워들은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은 얼떨결에 많은 기억을 남기지 않고 밋밋하게 지나갔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내 사고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좀 더 폭 넓은 지식을 접하다 보니 예전의 그 작은 알을 깨고 화려한 부화를 시작했다.

교직에 계시는 오라버니께서 어느 날 책꽂이가 비좁도록 책을 사다 나르기 시작 하면서부터 내 두 눈은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따분한 교과서만 죽어라고 들여다보다가 교과서에서 주워들은 유명한 책들을 실지로 접하고 보니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흥분해서 빠져들기에 이르렀다. 근, 현대 단편 문학이라든지 중국사기도 있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나를 매료시킨 작가가 월탄(月灘) 박종화(朴鐘和) 소설가다. 여러 전집 중에 나를 밤새 울린 소설이 ‘자고 가는 저 구름아’라는, 선조와 광해군 시대의 역사적인 사실을 작가의 시각으로 부드럽고도 거침없이 써낸 역사소설이다. 소설의 구성과 특성상 자칫 따분하고도 지루하게 흐를 위험소지가 있지만 박종화님의 어휘 구사력은 그런 빌미를 주지 않았기에 내가 쉽게 빠져 들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독자의 입맛을 마음대로 조절 해 낸 기가 막힌 재주에 감탄한 난, 이담에 커서 기어이 한번 만나보리라 벼르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분이 1981년도 타계할 때까지 그냥 속으로만 담아두고 있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다양한 장르를 접할 때 마다 달라져서 축이 없이 건들거리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라도 접했다면 나의 축은 견고했을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단체로 ‘벤허’를 관람하고 ‘챨톤 헤스톤’에 반해버렸고,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10년 걸쳐 집필한 ‘마가렛 미첼’도 내 우상이었었다.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보다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더 강하게 나를 끌었다.

그리고 여고시절 내 영혼을 집어 삼킨 영원한 연인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강열한 눈빛은 아직도 나를 보고 있는 듯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만나고 싶어진다.

모두가 고인이 되었거나 그림의 떡 일수밖에 없는 사람들만 골라서 만나고 싶은 희한한 병은 좀처럼 치유되지 않은 채 내 맘속에 부유물처럼 떠다니곤 했다.

그리고 한 동안 뜸했다. 그러다가 3년 전 나를 사로잡은 것은 ‘크리스티앙 쟈크’의 ‘람세스’다. 이 소설은 작가를 만나고 싶은 게 아니고 그 소설의 주인공과 배경이 되었던 이집트다. 이 소설책은 다른 책에 비해서 500 쪽이나 될 정도로 매우 두꺼웠지만 하룻밤 새에 한권을 다 읽을 정도로 파라오 람세스와 이집트에 매력을 느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아들 녀석과 책 내용에 대해서 주고받다가 느닷없이 주문을 했다.

“너, 이담에  돈 벌면 나 이집트 여행 좀 시켜주라.”

그러나 아들 녀석 대신에 딸애가 진지하게 대답을 했다. 돈 벌어서 여행 시켜 드릴 때까지 건강하게 사시라는 덕담까지 덤으로 얻어냈지만 글쎄다.

햇병아리 교사 딸아이가 돈 많이 벌어서 이집트 여행 시켜 줄때까지 기다릴 수는 있지만 근력이 달려서 제대로 걸음이나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카이로 박물관에 미이라로 보존되어 있는 람세스를 보기 위해서 전 세계인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그 대열에 내 몸뚱이 하나 들이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 평생을 두고 만나고자 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 만이라도 만나 보았다는 흥분에 삶이 그리 퍅퍅하진 않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요즘, 몇 년 전 읽다가 접어 두었던 최 명희님의 ‘혼불’에 새삼 빠져 들어있다. 일제치하에서의 반상의 두드러진 생활상에 초점을 맞추었는가 하면 어쩌면 ‘티’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까지 곁들여서 열권을 묶어냈다. 책 내용보다는 여류작가답게 섬세하고도 우아하게 엮어 낸 미사여구와 혈관을 지져대는 짜릿한 표현감각에 매료 되었다. 이 소설 역시 주인공 보다는 작가를 만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책을 탈고 한지 두 해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인생의 반허리를 꺾으면서 따르는 수식어는 참 많다.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해서 하늘의 뜻을 안다는 공자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이젠 한 번쯤 되돌아 볼 나이에 와 있다. 뜻을 거스리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지는 삶이라면 쌓여있을 회한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을 것이지만 삶의 턱이 만만치 않음은 누구나 다 안다.

많이 가지고 싶어 하고 많이 누리고 싶어 한다. 그 욕심의 양이 턱을 치고 올라와도 만족하다는 생각보다는 미어 터져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끝없는 욕심에 항상 목이 마른 게 인간이다.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 물질적인 욕심보다도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정서적인 것에 욕심을 내는 사람을 더 만나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