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도 하다.
여행중 어떤 곳은 숙박비가 얼마였는지 아침상으로 뭐가 나왔는지
거기서 누굴 만났는지 낱낱이 기억이 되는가 하면
또 어떤 곳은 거기 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곳도 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가 그 후자중 한 곳이다.
그곳의 유스호스텔에서 자긴 잤는데 거기서의 기억이 전무하다.
하나만 빼고.
그 하나란 바로 어떤 여자다.
니뽄필 물씬 풍기는 짧고 통통한 다리의 일본여자.
그 여자 역시 나처럼 혼자서 여행하고 있었는데
내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일본사람들은 남들에게 먼저 말거는 법이 드물다)
‘니혼징 데스까?’
내가 일본말이라고 아는게 딱 ‘니혼징 데스까?’
그리고 ‘간꼬꾸 데쓰’ 요거 두마디다.
전자는 ‘일본사람입니까?’라는 말이고
후자는 ‘한국사람입니다’라는 말이다.
여행지에서 일본사람을 만나면서 배운 일본말이다.
이 외에도 고등학교때 좀 노는 애들이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하는 이웃 남학교에서 주워듣고와서 하는 말
‘아다마가 빠가데쓰네?’(머리가 돌이야?)를 알고있긴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일본말’인지라 일본인 앞에서 입에 담은 적이 없다.
어쨌든 내가 ‘니혼징 데스까?’하고 그녀에게 다가간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그녀는 남이 말붙여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의 여행담을 늘어놓았는데
그중에서도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아프리카를 여행했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가 유럽 밑에 있는 것은 알겠는데 유럽과 그렇게 가까운줄은 몰랐다.
자식들 사회과부도를 한 번 보라!
아프리카와 유럽은
문화적 거리는 멀지만, 지리적 거리는 아주 가깝다.
나는 여행계획을 전면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를 코앞에 두고 뒤돌아설 순 없지.
호기심많고 성질급한 나는 곧 가방을 쌌다.
그리곤 아프리카가행 배에 올랐다.
사전 지식도 없고 가이드북도 하나 없이.
내가 간 곳은 아프리카라고 하기에도 좀 쑥스러운 것이
흑인들이 사는 중앙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랍인들이 사는 북아프리카,
그것도 스페인에서 제일 가까운 모로코였던 것이다.
모로코든 아랍인들이 살건 어쨌든
나는 배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에 건너온 것에 의의를 두었다.
배로 한나절 걸렸을 뿐인데 여긴 완전 다른 세상이다.
12월임에도 춥지않다.
사람들은 쿠스쿠스라는 노란 좁쌀과 빵과 누린내나는 양고기를 먹고 산다.
우리가 보리차를 마시듯 이곳 사람들은 생민트잎을 넣은 민트차를 마신다.
모로코는 아랍국가중에서도 많이 서양화됐다고 들었는데도
여인네들 대부분이 머릿수건으로 머리를 가리고 다닌다.
아프리카 맥주를 안마셔보고 여길 왔다고 할 순 없지!
그날 , 내 노란 피부를 신기하게 생각했는지
동네 코흘리게들이 종일토록 나를 ㅤㅉㅗㅈ아다녔는데,
그 아이들이 저녁먹으러 집에간 틈에 마침 적당한 술집을 하나 찾았다.
보무도 당당하게 문을 탁 열고 척척 걸어 들어가 테이블에 앉긴 앉았는데...
매케한 담배연기 속에서 왁자했던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시골이라 그런가, 술집에 가득찬 아랍남자들이 나를 쳐다본다. .
여자하나 없는 술집에 여자라고 하나가 들어왔는데
그것이 마침 첨보는 아시아 여자다 싶은게다.
좀 뻘쭘했다.
하지만 내가 내 돈내고 얌전히 술마시는데 뭐라할 사람 있을까 싶어
양껏 마시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이었다.
그날 밤 내 술상머리에 다가와 ‘꼽냐?’ 하고 시비건 남자가 없었다는 건.
나는 국경지방인 티투안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해안으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엘 갔다.
거긴 온통 뱀기어가는 아랍글씨들 뿐이고
영어 안내판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영어를 할줄 아는 사람도 없다.
매표소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내가 묻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무조건 ‘OK, OK\'한다.
돈을 주니 표도 사주고 버스까지 안내해준다.
그러더니 버스안에까지 올라와서 손을 벌린다.
나는 그 아저씨에게 동전 몇닢으로 약간의 사례를 했다.
그리고 버스는 떠났다.
드디어 예닐곱시간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버스도 후졌지만 아스팔트는 더 후져서
중앙선을 비롯한 각종 도로선이 없다.
이 오래된 버스에도 온통 남자들 뿐이다.
밖에는 건조해서 그런지 숲은 없고 온통 선인장밭이다.
한참을 가는데 승객중 하나가 창밖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버스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그쪽을 바라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가 끼익하고 섰다.
국도에서 불시착을 한 것이다.
버스기사와 차장을 비롯한 많은 승객들이 버스에서 내리더니
길을 건너 우루루 풀밭으로 들어간다.
오줌누러가나?
왠걸,
그 사람들은 풀밭에서 10분도 넘게 이리저리 뜀박질을 하며 몰려다닌다.
토끼를 잡는 모양이다.
이들이 토끼를 잡았는지 다람쥐를 잡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다만 토끼를 잡느라 승객들을 10분이나 기다리게 했으니
기사와 차장이 직무유기를 했다고 투덜거렸고,
버스차장의 이름과 차번호를 적어 버스회사에 고발을 해야 마땅하겠으나
봐주겠다고 생각했다.
꼬부랑글씨도 모르는데다가 여기는 아프리카이므로.
산을 넘고 구불텅한 길을 지나 버스는 종점에 나를 내려놓았다.
내가 도착한 도시는 제법 크다. 시장도 꽤 분주하다.
시내를 메디나라고 하는데 거기는 온통 모래로 집을 지었는지
집들이 모래색깔이다.
시내로 들어서니 좌우로 1미터 조금 넘는 좁은 골목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한 번 잘못 들어서면 평생 미아가 될 것만 같다.
그런 길을 가다보니 한 무리의 배낭여행객들이 앉아서 민트차를 마시고 있는데
거기가 마침 허름한 여관이었다.
나는 거길 들어가 짐을 부렸다.
가이드북이 없으니 여행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난감했다.
일단 바닷가로 가보기로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그 배낭여행 무리들에게 물어보았다.
‘여기서 바닷가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그중 좀 상냥하게 생긴 녀석에게 물어봤는데
녀석이 갑자기 눈을 똥그랗게 뜨며 ‘여긴 Fez야.’ 한다.
그리곤 친절하게도 자기 가이드북을 꺼내 지도를 보여준다.
지도를 보니 Fez는 해안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내륙지방이었다.
제기랄, 그 버스에 짐실어준 아저씨가 자기 멋대로 표를 끊어준 것이었다.
어차피 발길가는 대로 가는 여행인데 여긴들 어떻고 저긴들 어떨까.
다만 이들이 자기가 어디에 있는줄도 모르고 여행하는 나를 한심해 할까봐
그것이 좀 무안할 뿐이다.
그 배낭여행무리들이 나더러 내일 자기네와 함께 시내투어를 하잔다.
가이드를 하나 구해놨는데 여럿이 하면 할수록 가격이 싸진다나.
난 흔쾌히 승낙했다.
다음날, 한 쌍의 캐나다 커플, 상냥하게 생긴 미국인, 그리고 페인트공이라는 일본인,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이서 함께 시내투어를 하였다.
소머리와 뿔들이 굴러다니는 소가죽 가공공장을 보았고
목욕탕처럼 모자이크 타일이 붙여진 학교와 모슬렘 사원을 보았고
점심때는 닭고기 좁쌀밥과 민트차를 마셨다.
기념품 가게에도 많이 들렀으나 배낭이 작은 관계로 하나도 사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일상이겠으나 내게는 별천지에 온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별천지에서 이틀밤을 잤다.
나는 계획에 없던 충동적인 여행을 하는 바람에
모로코에서 나흘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나흘동안 나는 많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생전 처음보는 아랍인과 아랍문화,
생전 처음 먹어보는 노란 좁쌀밥과 양젖치즈,
처음 대하는 그들의 종교와 주거생활.
짧았던 나흘간의 여행을 뒤로하고 모로코를 나오며
다음에 이곳을 다시 여행하리라 다짐을 하였다.
그로부터 5년후,
나는 신혼여행으로 이곳을 다시 찾게 되었다.
그때는 한 달간의 일정이었고
남편도 곁에 있었으므로 느긋한 기분이 되어
모로코의 많은 도시를 둘러보았다.
해안도시와 내륙도시,
그리고 지프차를 타고 사하라 사막과 오아시스 마을에도 갔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사하라 사막위로 지프차는 달리고
나는 그 지프차 지붕에 올라타서 맘껏 소릴 질렀다.
그리고,
거기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사하라 사막의 밤하늘도 보았다.
물 반, 고기 반이라더니
그곳이야말로 하늘 반, 별 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