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이틀째 폭포수 같은 빗줄기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듯
내리던 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하늘은 여전히 회색빛이지만
두텁던 비구름은 잠시 남쪽으로 몰려간 탓인지 어느덧 말갛게 개어 보인다.
이 비로 인해 목숨과 재산을 잃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를 피해 거친 곳에서 편치 못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래 윗지방을 오르내리며 유린하는 장마전선 때문에 전국이 뒤숭숭하지만
타닥타닥 타다닥거리며 귓전을 때리는 빗물소리는 내게는 그저 정겨운
자장가소리가 되어 잠에 빠져든 나를 한층더 평온한 상태로 인도하였다.
저아래서 나즈막한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잔다는 것은 더없이 기분 좋은 일이다.
그간의 피곤도 마음의 분주함도 육체의 고단함도 수시로 날 짓누르는 강박관념도
분노도 슬픔도 빗물에 빗소리에 씻겨 내려가는 듯 머리를 말갛게 비워내는
어떤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나 보다.
서른
이라는 고개를 혼자 넘는다는게 어떤 유통기한을 넘기는 것처럼 끔찍했고
아픈 동생, 일방적인 부모님, 침울한 집안분위기에서 혼자만 독립하고 싶어서
더욱 갈구했던 결혼...
그 당시에 누구를 만났대도 아마 왠만하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지금 생각에 쓴 웃음이 나면서 소경 문고리 잡듯이 한 결혼 치곤
다행히도 우린 꽤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몇가지 표면적인 못마땅한 조건(장남에 홀시어머니, 빠듯한 경제, 게으른 천성,...)이
있기도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인정해주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결혼 전에 약간 냉정하고 메마르게 보이던 그가 결혼 후에 나를 배려해 주는 마음이
마치 엄마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난 정에 주려 있었는지 그의 다정함은 내게 잘 맞는 옷같이 여겨진다.
물론 결혼이란 건 냉엄한 생활인지라 현실적인 갈등도 있고 기다툼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껏 같이 자알 살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훨씬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둘째가 태어나고 산후우울증에 걸렸었다.
아주 웃기는 이유였다. 고백하기도 부끄러운...
아들 둘을 낳았는데 남편에게서 꽃다발을 못 받은 것이었다.(웃지 마시길...)
그것이 내 우울증의 이유였다. 그 사소한 섭섭함이 폭탄의 안전핀을 뽑은 것 같은
역활을 하여 엄청난 무력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나의 처절한 몸부림 끝에 벗어날 수 있었지만 결혼이나 남편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좀더 독립적으로 살아야한다는...
나를 구속하는 부모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선택한 결혼...
그것은 내게 기쁨도 주고 즐거움도 주고 슬픔도 주고 노여움, 성냄도 주고,
배신감도 주고, 가족이란 선물도 주고, 다양한 희노애락을 경험하게 했다.
결혼 도중에 겪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통해야만 비로소 성숙해가는가 보다.
결혼이란 좋은 조력자를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심리적인 독립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때로 단순히 일꾼이나 노예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배우자란 거울과 같아서
내가 좋을 때는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 오고
내가 나쁠 때는 냉정한 모습으로 다가 온다.
남편 연휴내내 내리는 비를 핑계로 집 밖을 안 벗어나더니
아까 송아지 같은 아이들 둘을 몰고 나갔다. 저녁까지 먹고 와야겠지? 하면서...
그래서 난 자유부인이 되었다.
좋은 배우자란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 아닐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