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부터 예고했던대로 태풍과 함께 몰려온 비구름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남편이 휴가라 어디라도 갈려다 비소식에 계획을 접고
그동안 혼자서 사느라 외로웠을테니 그냥 식구들과 부대끼며
며칠지내자고 마음을 다져먹었는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바쁜지라 잠깐동안만 \"아빠, 오셨어요?\" 하며 반기다가
전부 자기들 방에 들어가서 꼼짝도 않는다.
어제.
둘이서 아침일찍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갔다가
아이들 어릴적에 같이 살던 이웃을 우연히 만나서 콩나물 해장국을 먹으면서
옛날 이야기하고 그때 같이들 살았던 이웃들의 소식도 들었다.
우리 아들 태어나기전부터 몇년 같은 이웃에 살았었던 이들이다.
남편들이 같은곳에 근무하던 관계로.
세월은 흘러도 사람들은 흐르지않고 변하기만 한다.
그들처럼, 우리처럼.
농수물센타에 장보러 갔다.
그인 나와 장보러 가는걸 즐긴다. 아니, 즐긴다기보다 같이 가 주는것이
가족을 위해 하는 큰 봉사인줄로 안다.
이건 분명 나이들어 간다는 징조이지. 아니, 철들었다는 징조이겠지.
젊은 날엔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는걸 상당히 귀찮아하고
쭈빗쭈빗 낯설어하더니 이젠 커트도 잘 밀고 다니고
각 코너도 나보다 더 훤히 꿰고 있어서 먼저 앞장서 나간다.
그래서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
배추를 4포기 샀다. 속이 노란것이 아주 맛있게 생겼다.
핑게김에 김치를 담갔다.
하루종일 비(雨) 소식이다.
이곳도 며칠전에 지하철역이 잠길정도로 비가 쏟아졌는데 잠깐 소강상태더니
밤부터 또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소리에 잠이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하다가 어제 남편과 마신 소주 2병덕에
갈증이 나서 일어나 뉴스를 보니 강원도 곳곳이 물난리가 났다.
대관령과 한계령이 다 통제가 되었단다. 길위에 멈춰진 수많은 차량들.
학교와 군청에 피난온 피서객과 마을 주민들.
물에 잠겨버린 가재도구며 농토, 축사들.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귀중한 생명들.
가슴이 아리다. 추억이 슬프다.
지하철역이 물에 잠긴것 또한 놀라운 일이지만 가슴이 미어지지는 않았지.
아프지는 않았지.
그러나 그 산천의 수해(水害) 소식은 가슴이 미어지고 애끓게 한다.
내겐 떠나온 산천이고 일년에 한두번 밖에 가지 않는 곳인데도 말이다.
그곳 사람들의 소식이 내 곁, 바로 이웃의 아픔처럼 생생히 느껴진다.
그건 내 마음의 뿌리가 그곳이었고, 내 인성의 형성이 그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일거야.
혼자 생각한다.
그들이 집밖으로 퍼내는 양동이 물속에 내 추억과 아픔이 같이 퍼내진다.
잠긴 농작물을 보며 애끓고 울먹이는 농민의 표정에 내 한숨이 같이 묻어난다.
끊어진 도로에, 다리에 서서 망연자실 서있는 주민들의 힘없음에
내 초라함과 무능력이 함께 서 있다.
비에 젖은 이부자리며 옷가지를 챙기는 그들의 주름진 손에
내 고통이 함께 소리지른다.
뉴스 앵커들이 번갈아가며 소식을 전한다.
이른 새벽부터
베란다로 주방으로 거실로 나 또한 감각없이, 생각없이 그저 왔다갔다 했다.
빗속을 헤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