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배를 빌어 태어날 때, 우리는 모두 맨 몸이었다.
유행가 가사 속에 나오는 가사처럼, 알몸으로 태어난 우리는 분명 옷 한 벌은 건졌건만... 사는 것이 어찌 옷 한 벌에 만족할 수 있을까? 옷 한 벌로 살아 갈 수 있을까? 그래서 모두 그렇게들 아등바등 살아가는 거겠지.
내가 살고 있는 20평 남짓한 작은 집안...
이곳 안에서 만큼은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
빨가벗고 춤을 추어도, 뒹굴어도... 누가 뭐랄 사람 없다.
이 작은 집 또한 내 집이 아니라는 것이 서글퍼질 때가 종종 있다. 가지 사이에 돋아나는 새순처럼 새록새록 돋아나던 것이 어느새 무성한 잎을 키워 새가지를 치듯 서글픔이 극에 달할 때가 있다. 세상에 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절망적일 때가 있다.
내 것이 차츰차츰 없어져간다.
품 안에서 지낼 때의 부모님의 애달픈 사랑도...
못 보면 죽을 것 같았던...그래서 함께 한 남편 역시 내 것이 아니었다.
엄마 없으면 큰 일 날 것같이 찾아대던 아이들... 서서히 세상을 향해 도약하기 위해 바쁘다.
그럼, ‘나’는 내 것 일까? 아니... 이마저도 아니다.
‘나’ 역시 내 것이 아니라 가족 것, 이웃 것, 친구들 것...
베란다도 없는 집.
빨래 널 때도 마땅치 않아서 방 한쪽 구석에 빨래 건조대를 세워놓곤 한다.
그것이 한쪽을 차지하면 우리들의 공간이 더욱 작아진다.
하지만 살다보니 나름대로 익숙해져간다.
살에 돋아난 뽀드락지가 처음엔 거슬리고 아프고 곪아서 터질 때까지 불편하다가도 아픔부터 불편함까지 어느새 익숙해져 참아낼 수 있는 것처럼... 그것들 또한 나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숨 막히고 지독스레 나의 온 몸을 조여 오는 궁핍도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누가 잘 났고 누가 못 났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구의 허물을 흉볼 수 있을까?
지금의 행복도 불행도 영원 할 수 없는 것...
지금 행복하다고 자만하지 말 것이며,
불행하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다.
내 자식 잘났고 남의 자식 못 났다고 떠들 것 없으며,
내 남편 못 났고 남의 남편 잘났다고 부러워 할 필요도 없다.
다들 거기서 거기일 테니.
그래서 나는 불행하다는 생각도 절망적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