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기말고사 본 시험지를 싸인해 달라고 내민다.
점수를 보니... 내 눈을 의심해야 할 지경이다.
애 프라이버시상 점수공개는 못하지만 성격 좋고 참을성 대단한 내가 뚜껑이 열린다.
다혈질 애들아빠가 뒤집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더 설래발을 쳤다.
\"애 공부 이제부터 내가 시킬 거니까, 당분간 내게 맡겨 주시우~\"
네 과목의 시험지를 다시 풀었다.
수학은 정신만 차렸으면 96점, 다른 과목은 최소한 80점은 맞았을 터였다.
우리 오남매 자랄 때 서울의 거대초등학교에서 학년마다 손가락 안에 드는 점수만 유지하던 독수리오형제였다.
아이 셋이 학교에 다니면 세반장엄마로 통하던 우리 엄마였는데...
공부 날리게 잘하던 우리 형제들 지금 나만 빼고 다들 잘 살고 있다.
나도 한때 그들 못지 않게 잘 나갔던 사람이었다.
\'공부 잘 했어도 복 없으면 내꼴 나는 거다. 맘 편히 살그라이.\'
난 자식에게 그런 식으로 맘 편히 살게 해 주었다.
동생들은 직무유기라고 비난을 했지만 난 꿋꿋하게 버텼다.
공부보다 인간이 되어라... 하면서 닥치는대로 책읽는 것만 도와줬다.
그 덕분에 아이는 움직이는 백과사전이며 나이보다 엄청 조숙하다고 한다.
성적 원하는 점수 안 나왔어도 때가 되어 지가 하고 싶으면 하려니 싶어 방치했었는데.
오늘 점수는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다.
아이에게 문제풀이를 다 해 주고 나서
\"또 이 점수 받을래?\"
\"아니요, 다음부터는 잘 할께요.\"
\"그럼 반성문 한장 써라.\"
나도 선생님께 반성문을 썼다.
대학 다닐 때 제2외국어를 불어를 했었는데 그 교수님께서 하신 강의 내용 중 지금 생각나는 건 딱 한가지다.
\"우린 오남매가 자랐어요. 다들 성적이 최우수였는데, 큰언니만 공부를 안하는 거예요. 엄마가 하루는 큰언니를 앉혀 놓고 \'너 학교 왜 다니니?\' 했는데, 큰언니왈 \'놀러 다녀요.\'
엄마는 \'그럼 책은 필요 없겠구나\' 하시더니 그 길로 일어나서 큰언니 교과서를 몽땅 아궁이에 넣고 불태워버리시는 겁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도 큰언니는 별 반응이 없더니
다음날 학교를 가자고 하니 책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그 때서야 절감한 겁니다.
큰언니가 대성통곡을 하자, 우리 오남매는 서로 부둥켜 안고 울면서 \'우리 엄마는 친언마가 아닐 거야\' 했습니다. 다행히 그 후로 큰언니는 정신차렸고 지금은 모 대학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저는 자랄 때 그런 엄마가 너무 싫어서 제 자식만큼은 공부에 연연해 하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지금도 삼십점짜리 시험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휙 집어던지면서 \'프린트야\' 하는 딸이지요...\"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나도 자식을 그리 키우리라.
그렇게 키웠다.
오늘 이후부터는 그리 못 키울 것 같다.
올백 맞으라고는 안하겠지만 최소한 노력은 해 보라고 해야겠다.
당분간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해야할 것 같다.
얼마나 이 결심이 갈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다 못하겠으면 그 때 애들아빠에게 바톤을 넘기리라.
자칫 부부싸움으로까지 번질 일을 임시변통으로 막았다. 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