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주변이 온통 신경 거슬리는 것들뿐.
불규칙한 월경이 곧 찾아오려나보다.
7살 때부터 아빈이는 보습학원을 다녔다.
학년 초에는 보습학원 말고도 산만한 마음을 진정시켜보겠다고 해동검도를 시키기도 했다.
학습적인 면으로 남편과 나를 걱정시킨 적 없는 녀석이 5학년 때부터 어처구니없는 점수를 받아오기 시작했다.
다달이 다가오는 방세는 못 내더라도 학원비만큼은 늦지 않게 꼬박꼬박 제 날짜에 내주었다.
필요하단 학습지는 모두 사줬다.
학원에서 보는 모의시험의 점수는 늘 상위권인데, 전국해법수학대회를 나갔다하면 금, 은상을 꼭 받아오던 녀석이 학교 시험은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아왔다.
어제, 한 하기에 한 번씩 보는 종합평가의 점수를 들고왔다.
국어 3개, 과학 3개, 사회 7개, 수학 6개, 100문제에서 19개씩이나 틀렸단다.
초등학교 때는 모르는 거라고, 나 역시 남의 고민 앞에서는 어쭙잖은 말을 했지만 내 새끼 일에서는 느긋할 수 없다.
경찰대학에 들어가겠다던 녀석이 이제 자신이 없단다.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르겠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내 생각도 경찰대학은 허무맹랑한 것 같다.
물려 줄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살아갈 능력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 된 도리라고 생각해서 자식들의 성적에 목숨 거는 나였지만 이제 지치고 버겁다. 벌써 이러니 앞날이 막막하다.
갑자기 아들의 성적이 급 하 했을 때, 아빈이가 다니는 학원원장에게 전화했다. 그동안 믿고 맡긴 것이 고작이것이냐고 감정을 억제치 못하고 화를 냈다. 그 당시인 5학년 1학기에 공부에 질려하는 녀석에게 학원을 그만두게 했다.
하루에 정해 놓은 시간 동안은 혼자서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나의 말을 내심 반기던 녀석, 억제되어 살던 것에서 해방 된 것이 마냥 좋은 듯 했다.
그렇게 지내기를 두어 달이 되었을까?
학원을 다닐 때가 좋단다.
5학년의 교재를 보면 나조차도 그것을 공부하지 않고는 봐주기에 벅찬 수준이다. 1학년인 딸의 공부를 봐주는 것만도 만만치 않은데 녀석의 공부를 함께 봐준다면 뇌가 폭발 할 것 같아서 가르치면서도 나는 신경질을 냈다.
그러니 녀석 또한 학원이 다시 그리워졌을 것이다.
나 역시 당장 학원을 보내주고 싶었지만 공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껴보라는 심정으로 5학년 2학기의 시험을 혼자 공부해서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때의 성적, 과목마다 나란히 4개씩 틀려서 총 16개를 틀렸다.
다니던 학원 원장이 가끔씩 전화를 했다.
다시 한 번만 자신을 믿고 아빈이를 보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전국대회에서 상을 받아오면 학원 건물, 대형 현수막에 아빈이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의 이름을 새겨 넣곤 했던 원장에게 그것만큼 좋은 광고가 없었을 테니 원장 쪽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라는 뼈있는 말을 남기며 다시 아빈이를 보냈건만...
녀석의 성적은 여전히 형편이 없었다.
원장이 죄송하단다.
이달까지만 보내고 말겠다는 나의 말에 드릴말씀이 없다는 말로 자신으로써는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나보다고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학원을 바꿔보고 싶다고 말한 것은 아빈이였다.
문제지 의주로 푸는 것 말고 토론식이나 칠판에 써놓고 설명해주는 학원을 다녀보고 싶단다.
근처에 그런 학원이 있는데 주 3회 수업하면서도 수업료가 지금 다니던 학원에 2배가 넘는다.
남편과 내게는 벅찬 일이다.
하지만 지가 원하니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영이가 입이 댓발 나와서 한다는 말이, 왜 자기는 피아노 학원만 보내 주냔다. 자신도 엄마랑 하지 않고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궁시렁 그렸다.
그 말에,
“넌, 피아노 열심히 치고 엄마랑 공부해. 피아노 전공해서 피아노 선생님하면 되잖아.” 하고 달랬다.
참으로 힘겹다.
언젠가 뉴스에서 아이 하나 키우는데 드는 돈이 3억 이상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3억... 그럼 6억 이상이 있어야 하는데...
무슨 수로 그 돈을 댄단 말이지?
이런저런 걱정에 남편에게 넌지시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떡복기 장사라도 해봐야 하겠다고...
남편의 입에선 당연하게 “애나 잘 키워.”라는 말이 나왔다.
애 잘 키우는 것이 돈 버는 거라니... 그럼 그동안 나는 많은 돈을 벌었단 말인가?
슬슬 뭔가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긴장의 연속, 사는 것이 하루하루 전쟁이다.
전쟁 속에서 나의 무능력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