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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숨어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BY 손풍금 2006-07-04

이곳에 숨어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송찬호

 

이곳에 숨어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병이 깊어 이제 짐승이 다 되었습니다.
병든 세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황홀합니다.
이름모를 꽃과 새들 나무와 숲들 병든 세계에 끌려 헤메다 보면
때로 약 먹는 일조차 잊고 지내곤 한답니다.
가만, 땅에 엎드려 귀대고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듣습니다.
종종 세상의 시험에 실패하고 이 곳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번씩 세상에 나아가 실패하고 약을 먹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가끔씩 사람들이 그리우면 당신들의 세상 가까이
내려갔다 돌아오기도 한답니다.
지난번 보내주신 약꾸러미 신문 한다발 잘 받아보았습니다.
앞으로는 소식 주지 마십시요.
병이 깊을 대로 깊어 이제 약없이도 살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병든 세계를 헤매다 보면
어느덧 사람들 속에 가 있게 될 것이니까요.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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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세쨋날.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방학이라 늦잠자던 아들놈이 방에서 뛰어나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왜그래?

 

악몽을 꾸었어. 엄마. 가슴이 너무 뛰어. 진정이 안돼.

녀석에게 따뜻한 물을 먹입니다.

악몽의 주인공이 제 아버지라는 사실이 더없이 가슴아픕니다.

징병신체검사를 받은 녀석은 올 9월에 군대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녀석이 군대간다고 했을 때 나는 한없이 가늘어져 어쩔줄을 모르고 아들을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모든것이 정지된 듯 합니다.

 

 

베란다.jpg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일층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에 집안이 들여 보일 수 있는데 

아직은 블라인드나 커텐을 칠 여유가 되지 않아 문구점에 가서 유리벽지를 사다 붙였습니다.

다행히 저희집 창문 앞에 튼실하고 커다란 오동나무가 서서 듬직하게 가려주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문을 열어놓고 비를 다 들여놓습니다.

빗소리가 좋아요.

말할 수 없이 좋아요.

어떤때는 비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기도해요.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은 빗소리입니다.

요즈음 한참이나 속이 시끄러웠습니다.

 

이 장마비에 다 녹아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속 시끄럽다 하지만 지나온 날들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럼요.

그까짓 거. 우스운 일이지요.

 

 

 

 

 

봄밤

                                              송찬호




낡은 봉고를 끌고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어물전을 펴는
친구가 근 일 년 만에 밤늦게 찾아왔다
해마다 봄이면 저 뒤란 감나무에 두견이 놈이 찾아와서
몇 날 며칠을 밤새도록 피를 토하고 울다 가곤 하지
그러면 가지마다 이렇게 애틋한 감잎이 돋아나는데
이 감잎차가 바로 그 두견이 혓바닥을 뜯어 우려낸 차라네
나같이 쓰라린 인간
속을 다스리는 데 아주 그만이지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옳아, 그 쓰린 삶을 다스려낸다는 거!
눈썹이 하얘지도록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새벽 일찍
그 친구는 상주장으로 훌쩍 떠나갔다
문 가에 고등어 몇 마리 슬며시 내려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