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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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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싫어.


BY 일상 속에서 2006-06-30

 

우애 깊은 우리 삼남매,

늘 부모님 말씀 어려운지 알고 잘 살았건만...


언젠가 큰 동생이 본가에 다녀 온지 며칠 후 전화를 해서는 뜬금없는 얘기를 했다. 그건, 한 달에 한 번쯤 돌아오는 2박 3일 휴가를 시골에 내려가서 아버지의 일을 거들며 쉴 수 있는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하는 큰 동생이... 빠듯한 공무원 월급으로 쪼개 살면서도 부모님 위해 그 비싸다는 안마의자까지 선물한 속 깊은 동생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 난, 이제 집에서 한발 물러서려고. 내가 너무 바보같이 살았어. 이제 형식적인 것만 할 거야.”

이런 동생의 말에 나는 갑작스레 무슨 말이냐고 물었지만 더 이상 나온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흐르고 큰 동생에게 두어 달쯤 얹혀사는 막내가 전셋집을 구하러 다닌 다는 말을 들었다. 29살이 되도록 벌어놓은 것이 없다고 늘 부모님의 걱정을 들었던 녀석이 무슨 돈이 있어서 갑자기 집을 구하러 다니냐니 아버지께서 대주시기로 했단다.


결혼 13년이 넘도록 궁상맞게 사는 나는 전세금 7천 5백 하는 것도 다 못 내서 다달이 15만원씩 월세로 돌려내고 있는데 막내가 들어갈 집은 1억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어찌나 맥이 빠지던지...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끔찍한 내 부모님은 한편으로는 냉정할 정도로 자식들을 대하시곤 한다. 죽어라고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알뜰하고 지독하게, 다들 제힘으로 살라는 말씀을 옛날부터 입버릇처럼 하시던 분들이시다.


그래서 나와 큰 동생은 집을 얻는 일에 대해서 도와달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월급생활 4년 만에 1억 2천 만원하는 전세 사는 큰 동생은 정말 제 힘으로 거기까지 갔다고 모두들 대견해 했다.


늘 바닥을 기는 나를 보고 내 부모님은 남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니 친정에 내려갈 때마다 더 이상 남편을 욕 먹이고 싶지 않았고 거기다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에 늘 호탕하게 큰소리를 치곤했다.


그렇게 부모님을 더 이상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힘든 내색 모두 내보이지 않고 살았건만 막내에게 선뜻 돈을 내주시겠다는 말에 어찌나 섭섭한 마음이 들던지 며칠을 혼자서 속을 끓였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것이 큰 동생의 마음이었다. 내가 이정도면 놈은 어떨까 싶어서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누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 보다. 아빠가 호진이 전세금을 1억씩 대주신다는 말에 속상하더라.”

“...난 누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이제 시작하는 놈이 나보다 났게 시작하네. 하지만 돈 문제가지고 집안 쌈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지내면 안 되겠지? 누나가 속 좁은 생각하면 네가 누나 마음 바로 잡아줘.”

“우리 부모님 워낙에 현명하신 분들이니 잘 대처하시겠지.”


동생의 목소리가 너무도 싸늘했다. 내가 속상해하는 것을 풀어줄거라고 생각했건만 오산이었다.


“너도 많이 섭섭하지? 하지만... 사실 동생이 살림을 난다고 하면 먼저 시작한 너와 내가 도움을 줘야 하는 거잖아. 부모님께 도움도 못되는데... 어쨌든 막내가 좋게 시작하기만을 바래야지.”

“누나의 마음은 역시나 넓어.”


동생의 말이 칭찬이 아니라 비아냥거림으로 들렸다.

그렇게 주고받은 전화가 1시간은 족히 된 듯 하다.

큰 동생은 부모님께 맺힌 것이 많은 듯 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집에 내려가는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님의 말씀처럼 세상 헛산 자신은 이제라도 약게 살아야겠다는 등...

순간 뇌리로 스치는 것이 예전에 재산가지고 풍비박산 나다시피 했던 이모 댁 이였다. 형제끼리 의리도 없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식들의 마음도 없던 그 집...


큰 아들이 부모님과 벽을 쌓고 살겠다는 말이 큰 딸로써 걱정이 아니 될 수 없었다.


언제가 동생이 했었던 뜻을 알 수 없는 얘기와 연관성이 느껴졌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막내에게 돈을 대준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왔던 얘기였어? 그것 때문에 그렇게 꿍해서 있는 거야?” 하는 물음에,

“이것도 저것도 다 마음에 안 들어.” 하고 만다.


놈에게 처음에는 달랬다.

그런 일로 부모자식 간에 틈이 생기면 되겠냐고,

우리 집이 어떤 집이냐고,

남들과는 다르게 살지 않았냐고...

하지만 녀석의 마음이 굳게 닫혀져있었다.

화가 났다.

눈물이 났다.

그깟 돈 1억에 집안이 풍비박산 되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서글퍼졌다.

큰 동생 말이 부모님과는 별개로 형제들끼리는 잘 지내고 싶단다.

난 부모 없이는 형제도 없다고 매정하게 잘라버렸다.

부모에게 함부로 하는 동생은 보고 싶지도 않다고 욕을 된통 해줬다.


나는 혼수라도 받았다.

동생은 김치냉장고 하나가 전부였다.

해마다 김치를 비롯한 먹거리를 대주시는 부모님께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던 우리였는데 돈이 개입되니 이상하게 틀어져 버렸다.


1억...

크다면 크고 별거 아니라면 아닐 수 있는 그 돈이 사람의 마음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렸다.


부모님들은 부모님대로 동생에게 큰 실망을 한 듯 했고,

동생은 동생대로 마음을 다친 듯하다.

중간에 있는 나는 속상한 마음을 내색하기는커녕 어떡하면 예전에 우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속을 끓이고 있다.


한번 깨진 것은 본드로 붙여도 자국은 남는 법이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각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려 하니 오해의 골이 깊어지는 것 같다.

부모님은 주변에서 보고 들은 불쌍한 늙은이들의 종말을 맞이한 듯 했고

동생은 지금껏 자신이 했던 행동까지 왜곡되어 버렸다는 것이며 자신도 한 가정의 가장인데 그 앞에서 부모님께 큰소리로 욕을 들었던 것까지...마음이 많이 상한 듯하다.


출가외인이란 생각을 한 번도 한 적 없던 나였는데... 그 사이에서 소외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부모님... 다른 자식에게 똑같이 못해주는 것을 분명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고 계셨을 것이다. 그 앞에서, ‘저는 처음 시작할 때...’을 내뱉었으니 오히려 발끈 하셨을 것이다. 섭섭한 녀석 역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대들듯 언성을 높였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부모님은 누군가 했던 말들이 자신의 모습으로 내비췄을 것이고...


‘아무개 집은 아버지 죽자마자 시신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재산문제를 논했다더라.’


이런 마음이 드니 녀석이 그동안 했던 모든 행동들이 계산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동생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모든 것을 싸잡아서 자신을 못된 놈으로 만들었으니 속상했을 것이고...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 내 머리 속으로 모든 것이 보이고 들리는 듯하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해결은 되겠지만...

하늘이 무너졌다는 엄마의 말씀과 이제 자신도 약게 제 식구만 챙기면서 재미나게 살겠다는 동생의 사이에 있는 나는 너무도 속상하다.


돈...

이놈의 애물단지는 참으로 지독한 힘을 갖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어쩌면 이리도 속물들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