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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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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녀


BY 박실이 2006-06-16

그네가 그리운 날이 있다.

그네가 그리운 날은 밤새 뒤척이거나 바다가 보고 싶은 날이다.

 

식당을, 내일이면 오픈인데 광주에서 오기로한 여자 주방장이 사적인 사정으로

못오게 됐단다.

 

오픈을 앞두고 참 난감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참, 그 아득함 이란..

사 오일에 걸쳐 사 오백명의 손님을 직접 받구, 물론 그 음식을 내가

다 해야만 했다. 도우미 아줌마와 함께.

 

식당 음식 이라는게 절차가 있고 일반집에서 하는 음식과는 틀린법.

한달여 동안 몸살과 싸워가며..

 

다행이 주방장은 구했지만 직접 서빙이나 음식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식당을 맡기고 잘한다는, 것두 백반집을 찾아가 한달만

음식을 배우기로 했다.

 

어디에서고 그런 조건은 받아 주지 않았기에 불법 취업을 해야만 했다.

불법 취업 이라는데는 한바 식당.

종업원을 못 구해 어렵던 주인장 그날로 일하자 했구 한달간의 사투가 이어졌다.

새벽 여섯시에 나가 아침을 준비해야 했고 저녁까지 대놓고 먹는 공단의

사람들 때문에 퇴근도 늦었다.

여섯시간도 채 못자는 잠과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고역은 어찌 말로 다 할수 있을까.

 

내가 생각 했던대로 음식 만드는 법이 틀렸다.

많은양의 음식을 만드는법과 두고 재탕해서 쓰는 음식 조리법도

달랐고 하여튼 많은걸 배울수  있었다

그 와중에 유난이도 웃음이 많던 주방 아줌마 옹녀.

 

오동통한 얼굴에 웃으면 볼 우물이 패이며 너무도 순수 하던 그네.

보아하니 내가 언니 같은께 언니라고 하시요 라며 대뜸

언니라 부르라던 그네에게 언니라는 호칭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런 고생 않할거 같은데 어찌 이런 고생 하냐며 짠해 하던 그네.

유난이도 금실이 좋았는데 구년전 사별 하고 고만고만한 아이들 때문에

식당에서 일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한다

얼마나 됐느냐는 내 질문에 구년밖에 안됐제. 하며 웃던 그네.

구년 이라는 짧지 않던 세월을 그리 표현 하던 그녀.

 

근데 왜 화필이면 옹녀래요? 이름이?

그말이 끝나자 주방 아줌마들 와르르 웃는다.

옥례래요 근데 자기 이름이 촌스럽다구해 우리가 옹녀로 부른겨.

옹녀라는 이름은 맘에 드세요?

아니 그냥 그렇지 뭐 그래도 옥례보단 낫지 싶어서.ㅎㅎ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네의 순박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수롭지 않는 대답.

 

살아온 날들의 고단함은 얼굴 가득 배여 있는데도 늘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네의 모습은, 그네의 표정은 바로

살아 있는 부처님의 모습 이였다.

웃는 얼굴 빛으로 그 고단함을 달래고 초보인 나를 도와 주인 모르게

내 일감을 도와주곤 했다.

 

시골에서 일만 하고 자라다 시집 이라는걸 가는 바람에 한글도

못 깨우쳐 늘 서러움으로 남는다는 한을 넌지시 남이 알까 눈치

보아가며 내게만 이야기 했다.

 

한달여 동안 내게 살포시 맘에 있는 이야기를 열어 놓고 그 힘든

세월에 가장의 자리를 어찌 살아 냈는지도 모르겠다며 눈물을 훔치던

그옹년 나보구 신랑에게 잘 하라고 신신 당부 하는것두 잊지 않았다.

남자의 손마디를 연상케 하던 그 손마디가 어쩌다 내손에 머물면 덥석

내손을 잡고 참, 손도 곱다를 눈물나게 했다.

 

내게도 신랑이 없다는 말을 그네에겐 차마 하지 못했다.

일이 서투른 날 두고 짠해서 으짠데~ 하던게 신랑도 없어서

더 짠해 할까봐.ㅎㅎ

 

한달이 차마 못가고 하루종일 서서 지내야 하는 (앉아서 하는 일은 고참들이 함)

일이 내게는 한계가 온 것이다.

피곤함에 식사를 거른게 일조를 한 것이다.

 

주방의 식기들이 춤을추며 내게로 다가 오는가 싶어 피한 다는게,

주방에 대자로 뻗었다고 리얼하게 쓰고 싶다.

 

이틀을 남겨두고 그렇게 퇴장.

퇴근하고 병원에 병문안들을 왔다.

우리집 주방 아줌마들과 내 직장의

주방 아줌마들이. 식당 일이라는게 비슷한 시간대에 끝나다보니

마주치게 된 것이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 했든가?

우리 주방장 아줌마 그 옹녀랑 다른 식당에서 이년동안 한밥을 먹었댄다.

둘이는 반가워 어쩔줄 모르는데 그 난처함이란.

나보다도 대 여섯살이나 많아 보이던 그옹녀가 나랑

동갑이라는 것두 알게 되었다.

 

우리집에 스카웃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 옹녀도 은근히 바란다는걸

알았는데도 그럴수가 없었다.

그 주인에게 예의가 아니기에.

가끔씩 그 옹녀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웃음을 자아내곤 했는데.

이젠 어디에서 또 어떻게 살아 내고 있는지..

 

힘들어 죽을만큼 힘들면, 그 힘듬을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이

받아 들이던 그 옹녀가 그립다.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 들일수 있는 내 삶의 무게는 언제쯤 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