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단지 만한 항아리에
열무 두 포기 심었더니
쑥쑥 잘도 자라 동화책에 나오는 콩 나무처럼
키가 뻗치더니 아침에 나와보니
노란 꽃 두 개 피워 올렸네
예쁘다!
열무라면 물처럼 연할 때 뽑아서 매운 고추 다져 넣고
물김치 자박하게 담을 줄만 알았지
저리 꽃이 피도록 키워 봤어야지
꽃나무 아닌 것이 꽃을 달고 있으니 신통방통 대견 타
요즘 축구 땜에 행복하다
아들녀석 얼굴에 생기가 돌고
드나드는 이웃 집 담 너머로
가족끼리 마음 합쳐 내는
와! 와! 함성에 박수와 웃음소리
일년 열두 달 일용할 양식을 구하러
아침이면 부석하니
권태로움으로 굳어진 표정으로 대문을 밀고 나던
내 이웃의 불쌍한 가장들
축구 핑계로 웃어도 보고
내색 않던 가족들에게 은근히 마음도 열어 보이고
내 아들과 이웃 남편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축구 계속 이겼음 좋겠다
전화 번호를 바꾸지 않고 오래 가지고 있으니
끊어졌던 과거 인연들과 싫든 좋든 연이 닿는다
어린 것 둘을
염소 몰 듯 몰고 객지 이곳저곳 먹고살기 위해
헤맬 때
부딪히듯, 스치듯, 고이듯, 알았던 점 같은 인연 인연들
때론 잊고 싶기도 한 많은 인연들
시어빠진 김치 쪼가리 입에 넣을 때처럼
진저리 쳐 대면서도 근황이 알고프던
얄궂은 인연까지도
한번은 애들 큰 엄마가 수년만에 전화를 했는데
그 전화는 기분 되게 좋더라
애들 아비 되는 그 인간이 쫄딱 망했는데
거기다 다방 마담과
살림까지 차리고
살던 여자 (나를 못난이라고 때리며 험한 소리 해대던 )
그 제천 여자는
지가 낳은 딸 둘 데리고 갔는데
가는 길에
애들 큰 엄마 찾아 와선 철이 엄마
( 울 아들 이름) 만나거든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그 당시에 미쳤나보다고,
내가 죄 값을 톡톡히 받고 가니
이제 용서 해달라고 그리 시키고 가더라나
그러면서 애초 인간이 될 수 없는 놈 만나서
저도 모질게 고생만 직사하니 했다고
한숨을 내 쉬고 들이쉬는데
구들장이 주저앉을까 겁나더래나
큰 동서
마지막 하는 말 \"헤헤 ~ 철이 엄마 이제 속 시원하지?
\"화병 가라앉겠지 ?
\"내가 철이 엄마 속 시원하니 풀리라고 알려주는 거야
속이야 엄청 시원했지
묵은 체증이 다 쑤욱 내려가던 걸 뭐
세월이 십 년이 훨 지난 후라 까마득한 기억 저 편 과거인데도
어찌 그리 고소하고 신나던지
당시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으로 인해
물질적 심적 모두 행복한 상태였는데도 말야
또
살이 붙어 통통해진 내 모습을 보고
모두들 인상이 좋다고 해주었고
튀어나온 이빨까지 치료를 해서 입도 쏙 들어갔고
(큰 입이야 어쩔 수 있남 )
아이를 둘 낳았어도 날씬한 몸매와
오목하게 쏙 들어간 눈으로 인해
서구적인 인상이라고
추켜 주는 주위의 찬사도 난무해??
그야말로 내 인생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는데도
그 전화 받고 왜 그리 신나 했던지 ...
전화 번호를 오래 두고 쓰니 과거와 연을 끊을 수 없다
인간 축에도 못 드는 애들 아비란 놈이 다 말아먹고
다 털어서 계집한테 몽땅 퍼주고 하더니
이제 늙어 내 집 문전을 힐끗거린다
요즘,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까지 한다 처량한 목소리로 ...
간호대학을 나와서 병원에서 근무하는 혜진이를 찾아가
뚫어지게 쳐다보다 가기도 한단다
빌어 처 묵을 놈 !
내 이제 사 하는 말이지만
지 놈 떠나 세상에 나와보니
저 보다 못한 놈 하나도 못 만나 봤네
제 말이 틀렸나요?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 사랑한번 못 받아보고 갈 줄 알았다
부모에게나 이성에게서나
이 만큼 살고 보니 난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아이들도 제 어미가 어떻게 살아왔던 다 이해?
하는 눈치고
또 대화도 척척 잘 풀리고 친구처럼 격의 없고, 편히 대해주고
저들로 인해 큰 걱정 없이 내 일 열심히 했고 ..
또 한편으론
사랑하는 이가 변함 없이 오랫 동안 돌봐 준 세월도
만만치 않았으니 이만 하면 복있다 할 수 있잖은가
단 재혼을 않는 네게 사랑이란 늘 허전하고
홀로 삭혀야 할 부분도 많지만
결혼이란 제도에 불신과 혐오까지 가지고 있는 나로선
이렇게 멀리 있는 사랑 ..
서영은님의 먼~ 그대 같은 사랑이 딱 좋타!
남녀간의 사랑이란 얼마나 쉽게 사 그라 들던가
난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 53세인 이 나이에도
아주 애틋한 사랑을 꿈꾸곤 한다
예전 소설같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만나고 싶다. 목소리로라도 ....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떻게 살고
어디를 잘 가고 얼마나 변했는지
바람처럼 듣는다
전화번호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 사람이 혹시 나를 찾을까봐 혹시라도... 만약 어느 순간에 ...
전화 속에서
과거 시답잖은 연들이 자꾸 흘러 나와 나를 편치 않게 한들
난 번호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오십 평생 걸어 온 인생 길 어느 한 지점에서
잠시 잠깐 꿈 같은 삶을 살게 해줬던
그 사람 생각하고 기다려보고 그러다 폭폭 늙어 가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