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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나이도 안 드는지 ...


BY 혜진엄마 2006-06-16

꿀단지 만한 항아리에

열무 두 포기 심었더니


쑥쑥 잘도 자라   동화책에 나오는 콩 나무처럼
키가 뻗치더니 아침에 나와보니 

노란 꽃 두 개 피워 올렸네

 

예쁘다!

열무라면 물처럼 연할 때 뽑아서  매운 고추 다져 넣고
물김치 자박하게  담을 줄만  알았지

저리 꽃이 피도록 키워 봤어야지


꽃나무 아닌 것이 꽃을 달고 있으니   신통방통 대견 타

 

요즘 축구 땜에 행복하다


아들녀석 얼굴에  생기가 돌고


드나드는 이웃 집 담 너머로 

가족끼리  마음 합쳐 내는
와! 와! 함성에 박수와  웃음소리


일년 열두 달 일용할 양식을 구하러

 아침이면 부석하니


권태로움으로 굳어진 표정으로  대문을 밀고 나던 

내 이웃의 불쌍한 가장들

 

축구 핑계로 웃어도 보고
내색 않던 가족들에게 은근히 마음도  열어 보이고 


내 아들과 이웃   남편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축구 계속 이겼음 좋겠다

 

전화 번호를 바꾸지 않고 오래 가지고 있으니
끊어졌던 과거 인연들과  싫든 좋든 연이 닿는다


어린 것 둘을

염소 몰 듯 몰고 객지 이곳저곳  먹고살기 위해
헤맬 때  

 

부딪히듯, 스치듯,  고이듯,  알았던 점 같은 인연 인연들
때론 잊고 싶기도 한 많은 인연들


시어빠진 김치 쪼가리 입에 넣을 때처럼 

진저리  쳐 대면서도 근황이 알고프던
얄궂은 인연까지도

 

한번은 애들 큰 엄마가  수년만에 전화를 했는데
그 전화는  기분   되게  좋더라


애들 아비 되는 그 인간이   쫄딱 망했는데

거기다  다방 마담과
살림까지 차리고


살던 여자 (나를 못난이라고 때리며 험한 소리 해대던 )

그 제천 여자는
지가 낳은 딸 둘 데리고 갔는데


가는 길에

애들 큰 엄마 찾아 와선   철이 엄마

 ( 울 아들 이름) 만나거든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그 당시에 미쳤나보다고, 

내가 죄 값을 톡톡히  받고 가니
이제 용서 해달라고  그리 시키고 가더라나


그러면서  애초 인간이 될 수 없는 놈 만나서

저도 모질게 고생만 직사하니 했다고


한숨을 내 쉬고 들이쉬는데 

구들장이 주저앉을까 겁나더래나 

 

큰 동서
마지막 하는 말 \"헤헤 ~ 철이 엄마 이제 속 시원하지?


\"화병 가라앉겠지 ? 

\"내가  철이 엄마 속 시원하니 풀리라고 알려주는 거야 

 

속이야 엄청 시원했지

묵은 체증이 다  쑤욱 내려가던 걸 뭐


세월이 십 년이 훨 지난 후라  까마득한 기억 저 편 과거인데도  

어찌 그리 고소하고  신나던지


당시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으로 인해
물질적 심적 모두 행복한 상태였는데도 말야

 

살이 붙어 통통해진 내 모습을 보고

 모두들 인상이 좋다고 해주었고 

 

튀어나온 이빨까지 치료를 해서  입도  쏙 들어갔고 

 (큰 입이야  어쩔 수 있남 )

 

아이를 둘 낳았어도 날씬한 몸매와

오목하게 쏙 들어간 눈으로 인해

서구적인 인상이라고
추켜 주는 주위의 찬사도 난무해??

 

그야말로 내 인생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는데도   

그 전화 받고  왜 그리 신나 했던지 ...

 

전화 번호를 오래 두고 쓰니  과거와 연을 끊을 수 없다


인간 축에도 못 드는 애들 아비란 놈이  다 말아먹고     

다 털어서 계집한테  몽땅    퍼주고 하더니

 이제  늙어 내 집 문전을 힐끗거린다 

 

요즘,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까지 한다  처량한 목소리로 ...


간호대학을 나와서  병원에서 근무하는 혜진이를 찾아가  

뚫어지게 쳐다보다 가기도 한단다 

빌어 처 묵을 놈 !

 

내 이제 사 하는 말이지만 

지 놈 떠나 세상에 나와보니
저 보다 못한 놈 하나도 못 만나 봤네 


제 말이 틀렸나요?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 사랑한번 못 받아보고  갈 줄 알았다

부모에게나  이성에게서나


이 만큼 살고 보니 난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아이들도 제 어미가 어떻게  살아왔던  다 이해?

하는 눈치고


또 대화도 척척 잘 풀리고  친구처럼  격의 없고,  편히 대해주고

저들로 인해 큰 걱정 없이 내 일 열심히 했고 ..

 

 또 한편으론 
사랑하는 이가  변함 없이 오랫 동안 돌봐 준 세월도

만만치 않았으니    이만 하면 복있다 할 수 있잖은가


단   재혼을 않는 네게 사랑이란  늘  허전하고 

홀로 삭혀야 할 부분도 많지만


결혼이란 제도에  불신과  혐오까지 가지고 있는 나로선
이렇게 멀리 있는  사랑 ..

서영은님의 먼~ 그대 같은  사랑이  딱 좋타!

 

남녀간의 사랑이란  얼마나  쉽게  사 그라 들던가


난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  53세인 이 나이에도 

아주 애틋한 사랑을 꿈꾸곤 한다


예전 소설같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만나고 싶다.  목소리로라도 ....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떻게 살고  

 어디를 잘 가고  얼마나 변했는지
바람처럼  듣는다  


전화번호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 사람이 혹시 나를 찾을까봐   혹시라도...  만약 어느 순간에 ...


전화 속에서 

과거 시답잖은 연들이 자꾸 흘러 나와  나를 편치 않게 한들
난  번호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오십 평생 걸어 온 인생 길  어느  한 지점에서  

 잠시 잠깐 꿈 같은  삶을 살게 해줬던  

  

그 사람  생각하고 기다려보고  그러다  폭폭 늙어 가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