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48

누가 좀 말려 줬으면...


BY 일상 속에서 2006-06-14

추적추적...떨어지는 빗줄기... 어제 누군가 부추전을 부쳐 왔더군요. 늦은 밤이라 살이 더 불을까 걱정하는 남편의 눈치를 못이기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그거나 데펴서 먹을까봐요. 같이 드시고 싶은 분~ ^^ 좋은 하루들 되시구요.

 

 

겁 없이 날 뛰던 내가 점점 세상이 결코 호락호락 쉬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늘고 있다.

연륜이 쌓이듯 그래서 비교하고 재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조심스러워 진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매스컴이나 책을 통해 보는 세상은 똑같은 시선으로 보지만 제각기 받아들이는 면은 틀리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연인들이 나오는 한 장면을 두고,

어느 사람은 남자 배우가 멋있다, 여자 배우가 예쁘다, 혹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다. 또는 저 주변의 배경이 예술이다 던지, 나처럼 아는 것도 없는 것이 생각만 복잡해서리 저 극본을 쓴 작가는 저것을 어찌 구상했을까? 존경하고 잡다. 하는 것처럼.


아주 예전에 나였다면 난 나의 생각만 옳다고 바락바락 우기며 나 잘났다고 떠들었을 텐데, 요즘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 못한 부분을 말하는 상대방의 견해를 배우기도 한다.

그런 관계로 한 수다 하는 내가 때로는 남의 이야기만 귀기울리 때도 있다.


어느 때는 수다 떨 때보다 남의 얘기 집중해서 들어주는 것이 내 적성(?)에 맞는 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도 이제 좀 조용히 살고 싶다는 얘기다.


이런 나를... 내 자식들이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딸내미인 아영이.

전생에 내가 지한테 무슨 원한(?)을 진 일이 있다고, 잠시도 제 엄마를 가만 내버려 두지를 않는다.

다음 날 입고 갈 옷을 선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간식 때 챙겨줬으면 하는 음식들에 이르기까지 쉴새없이 터져 나오는 말, 말, 말, 말... 징그럽다.

궁금한 것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그렇다고 묻는 질문들이 학업과 관계되는 것들이냐?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어제 저녁상에서의 일이다.

반찬이 배추겉절이(내가 며칠 전 큰맘을 먹고 담은 것으로 역사의 길이 남을 김치다.) 와 열무얼갈이김치, 오징어채 볶음, 고등어조림, 돼지불고기, 깻잎 찜이었다.

아영이가 아직 젓가락이 서툰 관계로 성질 급한 내가 반찬을 놔주는 일이 많다. 밥 한 숟가락을 뜬 아영이가 열무김치를 가리키며,


“엄마, 나 이거.” 한다.

“열무김치?” 

“응, 근데 엄마...”


난 아영이가 ‘근데 엄마’하면 언젠가부터 짜증 섞인 긴장감이 든다.

아, 이것이 또 뭘 물어 볼까, 하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불편한 심정이니 상냥할 수가 없다.


“근데 또, 뭐?!”


아영이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따지듯 물었건만... 그 정도 반응이면 생각을 좀 굽히고 묻지 말아야 할 텐데, 가시나 물러남이 없다. 아니, 아주 당당하다.


“응, 이 김치는 왜 이름이 열무야?”

“-_-;;;”


[-공고 합니다-

열무김치의 이름이 왜 열무김치인지 아는 분은 속히 그 답에 갈증을 일으키며 목말라하는 불쌍한 주부에게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례로... 줄 것은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아이들의 궁금증은 어떡해서든 풀어줘야 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엄마라고 한다지만, 이렇게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식의 엉뚱한 질문에 대답해줄 해박한 지식은 갖추고 있지 못하단 말씀.

그러니 아주 괴로울 수밖에.

반찬 놔주다 말고 인터넷을 켜고 검색창을 두드려볼 수도 없고 찌쁘등한 날씨에 불쾌지수 어느 정도 올라가서 있건만 아주 염장을 제대로 지르는 질문이 아닐 수가 없었다.


“엄마, 몰라?”

별로 크지도 않은 눈으로 밥 한술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며 말똥말똥 바라보며 묻는 뽐이 영, 껄쩍지근하다. ‘엄만 그것도 몰라? 엄마면서?’ 하는 것 같다.

아영이는 어른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줄만 안다. 여러면으로 부담스러운 딸.


“-_-;;;; 열무는 그냥 열무야.”

“그러는게 어디 있어? 엄마 모르지.”

“그래, 몰라몰라몰라! 됐냐? 그냥 밥 먹어.”


답을 찾으려 애썼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그만 말하고 밥 먹으라고 엄포를 놨지만 내 머리 속은 설거지를 할 때까지도 ‘엄마, 왜 열무야? 열무야? 열무야?...’ 가 메아리 치고 있었다.


어린 무라고 설명했어야 하나?

아니지, 무와 열무는 비슷하지만 다른 종일 거야.

그럼...열무는 도대체 왜 열무라고 불렀단 말인가...


제 엄마는 제 질문에 후유증을 알고 있는데 질문을 던진 당사자는 천하태평하게 만화영화 삼매경에 빠져버렸다.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으로 컴퓨터를 켜자마자 열무에 대해서 검색창을 두들겨 봤건만 정확한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난 언젠가 잠시잠깐 빠져들었던 궁상명상(?)을 떨었다.

[냄비를 왜 냄비라 칭했으며, 컵은 왜, 장롱은 왜 장롱이어야 하나...]


내 머리는 날로 새치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장난 아니게 가렵다.

내 남편은 나에게 왜 머리를 그렇게 노랗게 물들이냐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부탁을 넘어선 사정을 하지만...

노란 머리에 흰머리가락은 별로 티가 안 나지만 검은 머리에 흰 머리는 심하게 눈에 띤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고 잡진 않다.


예전에 누가 그랬다.

조상님 묘에 차돌이 들어가면 후손의 머리에 새치가 생긴다고.

드문드문 있던 새치가 이제 머리카락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이 시점에서 난 또 하나의 고민이 늘어났다.


부모님께 연락해서 조상님들의 묘를 파헤쳐서 그 망할 놈의 차돌을 빼내 달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코 내 머리의 새치는 내가 살아가는 것이 벅차서 생긴 것이 아닐 거라고,

절대로 세상과 대립하며 생긴 것이 아니라고,

우리 가족이 해쳐나갈 미래 때문이 아니라고,

결단코 아영이가 물어오는 난해한 질문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 자신이 확실하게 생긴다면 꼭 상의할 터이다.(그럴 날이 올라나?)


그런데... 왜 열무를 열무라고 이름 지었을까?

그리고... 왜 머리가 더 가렵지?


생각의 끝을 잡고 누가 날 좀 말려 줬으면 좋겠다.

이제 좀 나도 고상을 떨며 우수에 젖은 눈망울로 세상을 맞고 싶다.


따뜻한 커피 한잔 생각나는 날이기도 하죠? 선선하니 기분은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