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자욱한 아침이다
바닷가 근처에 사는지라 안개는 늘 끼고 살지만
샛바람이라는 매운 바닷바람이
여름이 푹 ~ 익기 전까진 심심찮게 불어와
옷가지 경망스럽게 입고 나대다간
한여름에도 콧물을 달고 살아야 한다
.....................
며칠을
남 보다 못한 인연들을 끄집어내어
요절 박살을 내고 보니 우째 이 심사도 과히 썩
편치 못함이라
그래서 맨 밑 칸에 조르르~~달려 있는 사랑 칸을 쑥 빼보자
안방 창으로 내다보니 안개로 온 동네가 부옇게 묻혀있어
이 시간 이곳엔 사람이라곤
나말고는 없는 것 같은,
적막과 같은 달콤한 외로움이 콕콕 쑤셔대니
요럴 땐 사랑 얘기가 딱 맞춤일 것 같아서 말야
....
일에 미치고 자식에 미치고 먹고사는데 온 정열을 바치다보니
내 나이 서른 중반을 넘기네
어느 날 한 남자가 보이더라 첫눈에
세상에 저런 남자도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벼락치듯 가슴을 치고 가는데
정신을 팽 ! 놓을 뻔하게 잘 생겼더라
당시 내가 일하던 곳은
낮엔 밥과 국을 팔고
밤 되면 술과 여자를 파는
대폿집이라고 해야 하나 뭐 큰 술집도 못되고 그저 좀 그런 곳.
그곳서 내 하는 일은
낮에는 식당 밥 설거지 청소 써빙
반찬거리 다듬기 등이고
밤에는 작부들 뒤치다꺼리에 안주 장만해 주는
주방 이모 역할
보수도 괜찮았고 당시 아이들은 시집 안간 막내 동생이
봐주었으니
난 삼일에 한번 들려 먹을 걸 사다 나르기만 하면 되었다
처음엔 작부들이 나보다 나이도 많고
입도 몸짓도 거칠기 짝이 없고
열어 젖혀놓고 사는 그 삶의 방식이
역겨워
돈이고 뭐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멸치같이 바싹 마른 주인 할매가 참 인정스럽고 자상하게도
우리 애들까지 챙겨주는데 그만 눌러 앉게 된 것이
일년을 훌쩍 넘도록 있게 된 곳이다
각설하고 ..
최 사장 ..그 집 단골 손님
낮에는 밥 단골.. (주로 보신 탕 단골)
밤에는 인근 면서기들과 우르르 몰려와 늙은 작부들
동냥자루같이 후줄근한 젖통이나 주물러대며 매상 올려주는
술 단골 손님.
그 집에선 무시 못할 손님이다
그 사내를 내 혼자 멋대로 내 맘에 들어 앉힌 것이다
뭐가 그리 멋져 뵈던지
그 사내만 보면 가슴은 디딜방아도 아닌
기계방아처럼 빠르게 콩,콩,콩 ,,,,,숨 넘어 갈 듯 뜀박질 해대는데..
에휴~~~!
또 속담이다
옛말에 이십 과부는 살아도
사십 과부는 못산다 했다
내 몸이 남자 생각이 나던 시기였나보다
종일 식당 일에 종종대다
주인 영감 밥 대령하고
방방이 널브러져 자는 작부들 두들겨 깨워
아침 겸, 점심 겸 저녁 겸 몽땅~ 한꺼번에 우겨 넣도록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주고 나면
어느덧 밤 장사 시작을 알리는
어둠이 음탕?하게 웃으며 가게 문지방위로 남~실 올라선다
처음엔 너무 지쳐 술손님이 오던 말던 앞치마 바람으로
머리카락 흩트리며 마루 끝에 모로 누워 잠에 빠지기도 했다
그때 술 마시러 온 최 사장 일행들 중 몇이
마루에 올라서다 웅크리고 자는 날 허리까지 굽혀서 살피더니
\"야이 가스나들아!
\"이 불쌍한 아를 와 이리 부려 먹었노 하며 방을 향해 소리치는 바람에
벌떡 일어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 땐 그저 일주일 치 돈만 받으면 어서 아이들 먹을 거 사들고
집으로 가서 하룻밤 자고 오는 날만
고대하며 살던 때 였다
언제부터 그 사람 오는 시간만 기다렸을까?
종일 식당 일에 치여
튀어나온 입술이 더 튀어나와
다물어지지도 않을 만큼 입에서 단내가 났건만
그 사람이 문지방을 넘어서는 모습만 봤다 하면
눈에서 번쩍 광채가 나고
늘어졌던 뼈마디 마디가 째깍째깍 아귀 맞추어 지는 소리 조차
다 들릴 정도로 가슴이 요동을 치니 그 해괴망측한 현상을 뭐라고 하는지 ..
짝사랑 ..
연지 곤지 찍어 앵두 같은 입술을 한 (난 입술에 병적인 열등감이 있다 )
색시들이 하나씩 팔을 채어 잡고 술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술청마루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는 건 나뿐이지만
방문 밖으로 새나오는 그 사람의 목소리만 골라 들어도
무엇이 그리 행복했던지 ..
최 사장... 사십대 건장한 체구
구렛나루가 멋지고 남자답고
목소리도 굵고 눈길도 따스하고 스치고 지나가는 체취도 기막히고 흠흠..
짝사랑 병에 걸려 훔쳐보는 네게 뭔들 안 멋있었을까만 우쨌든 암튼..
간혹 점심 시간에 손님과 오면
\"힘들지요, 내 밥 다 먹을 때까지 거기 앉아서 좀 쉬소 하던 ..
밤에 색시들과 노닥거리다 화장실이 급해 나오다
술청에 시름없이 앉아 있는 날 물끄러미 건네다 보곤
볼일 다보고 들어와선
\"니 혼자 심심해 우짜노? 우리 캉 놀래? 그건 안 되제 그쟈.
\"자 이거 받으래이 하며 만원짜리 두 장을 주던,
처음엔 나 같은 것에게 왜? 하던 것이
다정한 말과 몇 푼의 지폐까지 쥐어주며 정있게 대해주니
어찌 사람이 아니 멋져 보이랴
그 귀하디 귀했던 정없는 내 삶에서 말이다
그 사람 눈엔 노동으로 새까맣게 말라 오그라진 여자
광대뼈가 솟구치고 피곤으로 늘 흐리멍텅한 모습의 여자
이빨이 튀어나와 디즈니랜드 만화에 나오는 도널드 덕같이 입이 튀어나온 여자
첨엔
추하게 봤지만
그 집에 오래있어 자주 보다 보니 연민의 정으로
그리 대해줬던 것 뿐 인데
천치같은 내가 그런 그를 못 견디게 사랑하고 만 것이다
이틀에 한번, 하루에 한번,
낮에는 밥
저녁에는 접대 술
나이 들어서 어딜 못 가고 그 집에서 오래 일해온
작부 서넛이 모여 앉아
저녁 술 손님 얘길 하는 걸 들었는데
단골 손님 중
최 사장은 아주 까다롭고 거만하고
성질도 더러워서 곁에 가기 싫다고했다
자기들을 마구 험하게 다루고 말도 몸서리치게
경멸조로 내 뱉고 그리 괴롭혀 놓고도 팁이라곤 십원 한 장 주는 꼴을 못 본다는 것이다
그 언니 말인 즉
최 사장이란 작자는 이 집 주인이 편하고 좋으니
자주 오기 만만하여 오지
또 저희들이 늙어 퇴물 짝 신세이니
손님 데리고 와 지 성질 나는 데로
스트레스나 풀고 가면서 어느 색시 맘에 두고 저리 오는 건 아니라며
자조 섞인 한숨과 함께 담배를 문다
아! 그 말에 왜 내 가슴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
존경으로까지 치달았을까
..그 분은 나에게 너무 자상해
그 분은 나에게 늘 따뜻한 눈길을 주고
가끔 내 아이들 뭐라도 사다주라고 돈도 이 만원씩이나 준단다
난 그 자리에서 이렇게 자랑하고픈 걸 참느라 몹시도 힘들었다
먹고살기 바빠 뼈에 가죽만 붙은 내 몰골은 생각도 않고
난 그저
황량한 내 가슴에 자식일랑 잠시 밀쳐 놓고 자리 하나 만들어
그 사내를 들어 앉히느라 고된 세월 잠시 잠깐 잊고 있었으니 ..
참담했던 그래서 잊혀지지 않던 내 짝사랑 첫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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