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 손님 한분이 오셨습니다. 남자손님.
얼굴빛이 거무죽죽한 게, 알고 봤더니 간경화래요.
그러면서도 맥주를 8병이나 비우더라고요.
담배도 잘 피워대고…….
결국 인생의 막바지 친구는 병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젊을 때 우린 그 젊음이 뭔지도 모르고 나이만 자꾸 먹고 싶다 푸념하고
세월이 빨리 갔음하고 하늘만 쳐다보았는데
오월 한달은 시간이 빨리 갔음하고 창밖만 쳐다보았습니다.
젊을 때나 나이가 좀 먹은 때나 언제쯤에나 인생을 먼발치서 관찰하게 될지.
간이 나쁘다는 손님은 많이 배운 사람인가 봅니다.
배우자분은 그만큼 많이 배워서 번역 일을 한다는데
사소한 일로 싸워 짐을 싸가지고 친정으로 갔다는데 그 뒤 십 년째 별거중이랍니다.
배운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해 한쪽이 기울지 않아
자기 앞길만 보고 가는 평행선인가 봅니다.
아이들은 남자분이 키워 성인이 되었다는데
오십 줄에 들어서서 간경화로 고생이 많다고 합니다.
주변에 유명한 의사들이 많아서 걱정하지 않는다는데
사랑을 할 때나 결혼 생활을 할 때도 주변 경험자들이
이렇게 해야 옳고 저렇게 가야 바른 길이라고 말들이 많지만
결국은 사랑을 움켜쥐는 것도 결혼 생활의 윤활유는 경험자의 조언보다는
내 자신의 감정이 먼저고, 상대방은 뒷전이고, 결국은 팔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병든 손님의 마른 등은 헐겁다 못해 금방 분해가 돼 주저 앉을 것 같았습니다.
카페를 둘러 핀 넝쿨장미꽃은 빨간 정열인데
저물고 있는 몸뚱이 색은 거무죽죽합니다.
꽃들에게 물을 주고 있는 퇴근 무렵쯤 남자 손님 두 분이 낮술에 취해 들어오셨습니다.
지나가는 분들인 줄 알았는데 카페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물 조리개를 바닥에 내려놓고 달려가 인사를 했습니다.
손님이 먼저 어? 다른 분이네? 하셨습니다.
밤 시간에만 술 마시러 오시는 단골 손님이었나봅니다.
술을 시키고, 나는 서툰 솜씨로 술잔과 기본 안주를 내 놓았더니
이런 일 안 해보셨군요? 손님들이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두 분 중에 한분이 계속 질척거렸습니다.
옆에 앉아라, 손 한번 잡아 보자, 가슴을 찔러보자.
내가 놀래서 움찔하자 기분 나쁘다고 간다고 하네요.
간다고 해도 저는 상관없었습니다.
술 취한 남자들 하는 짓거리가,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들에게 하는 짓이,
다 그렇고 그런 거지요.
나야 낮에 일하는니까 이런 경험이 처음이지만
밤에 일하는 친구한테 들은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실로 경악할 일이 많더라고요.
보자마자 깊은 곳을 만져 보자는 남자들도 있고,
덜렁거리는 자기 것을 만져 달라는 남자도 있고,
바로 자러 가자는 남자들도 있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비슷하면서도 다 다르고,
절제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감각적인 것이 먼저가 될 수 있는 사람 사는 모습.
이십대 때는 이해 못했던 일이 삼십을 넘어서니 이해가 되더군요.
삼십대에는 이해 못했던 일이 사십을 채우니까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십초반땐 이해 못했던 세상살이가 사십 중반을 넘어서니 무덤덤하더군요.
퇴근시간이 조금 지나서 인사를 하고 나오는 뜰,
하얗게 핀 마가렛이 조명아래 창백해 보였습니다.
오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휴일이라서 그런지 차 마시러 온 손님도 있었고
일찍부터 술 마시러 오시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내겐 잔인한 오월이었는데 마지막 날까지 별 일이 있군요.
유월이 괜히 반갑습니다. 얼른 일어나 두 손 모아 인사를 했습니다. 유월에게.
별 특별날 것도 없을 유월이지만
반갑습니다. 유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