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790

사랑이 뭐야뭐야뭐야~


BY 일상 속에서 2006-05-26

 

 입하가 지났으니 이제 여름이죠? 그래서 더워요. 여기 봄비를 가져왔으니 시원함을 느껴보시길...

 

새벽 6시 30분까지는 출근하는 남편의 귀가 시간은 빠르면 9시다. 출석도장 찍듯이 빠지지 않고 마시고 들어오는 술, 술, 술...


‘몸 생각해서 그만 좀 마셔.’

‘알았어, 안 마셔.’


일상적으로 주고받던 얘기가 언제부터 사라져 버렸다. 말해봐야 소용없는 의미 없는 말이었기에 내 쪽에서 그만뒀다.


어제 아침에도 남편은 늦게 들어와서 일찍 나갔다. 그렇게 버텨내는 것이 희한할 정도다.


그동안 십여 년을 내 알아서 모든 가정사 일을 꾸려왔었다. 남편 몰래 갖고 있던 몇천만원의 비자금도 바닥 난지 오래. 얼마나 남편이 원수 같던지 그래서 그땐 서로에게 화내며 싸워대고 무시하고 경멸하고...고...고...고... 함께 사는 것이 희한하다 싶었다. 말 그대로 적과의 동침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정사의 모든 일에서 손을 떼버렸다. 공과금이 미납이 되고 독촉하는 연락을 받고 끊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아도 내버려 뒀다.


그리고 남편만을 바라보았다.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워서 일을 회피하는 남편만을 바라보는 무능력한 마누라가 되기로 했다. 한때는 부업도 했었고 글을 써서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수입이 있었고 틈틈이 방송국에서 오는 상품이나 출연료로 살림에 보탬도 하고 부모님께 여행도 보내드리고... 크게는 못 벌더라도 그런대로 능력(친정엄마에게 지원받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을 발휘하던 것들까지, 그 모든 것에서 손을 탁 놔버렸다.


어쩌면 자포자기의 심정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산 것이 2년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서서히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희망이 느껴진다. 어둡고 답답하던 터널 속에서 바늘구멍처럼 작은 통로가 보이는 것 같다.


남편은 이제서 일에 욕심을 보이고 계획도 세워나간다. 그 동안 갖고 있던 빛도 조금씩 청산해 나가고 있다. 14년째 함께 하는 남편이 이제서야 남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마음의 여유도 생겨나고 있다.


“따르르릉.........따르르릉.......”


오전 11시쯤 컴퓨터를 붙잡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무선전화기는 요즘 정신이 들어다 나갔다 지가 꼴리는 대로 되다 안되다 한다. 그래서 나는 얼른 안방으로 달려가서 전화를 받았다.


“집에 있었어?” 남편의 목소리.

“응. 왜?”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

“응.”

“그럼, 내 견적서로 들어 가봐.”

“내 핸드폰으로 다시 전화해. 무선이 안되네.”

“알았어.”


가끔 남편은 수금을 앞두고 저장해둔 견적서를 거래처로 이메일로 보내 주라는 일을 곧잘 시켰기 때문에 또 그일 인가보다고 생각한 나였다. 컴퓨터에 앉기가 무섭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의 말대로 남편의 견적서 파일로 들어가 있었다.


“응, 어떤 것 어디로 보내 주라고?”

“보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까 당신이 견적서를 작성해. 지금부터 내가 불러 주는 걸로.”

“뭐? 나보고 하란 말이야?”

“에이씨, 관둬, 관둬!!!”

뚝!!!


신경질을 냅다 부리며 남편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 인간이...점점 겁이 상실하는구만.’


나도 화가 나서 핸드폰을 닫았다.


내가 다른 것은 다해도 절대로 문서 작성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통보를 했던 터였다. 한번 ‘노’면 영원한 ‘노’를 외치는 마누라의 성격을 잘 아는 남편은 분명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전화를 했을 것이다. 예성했던 방응을 보이자 화가 더 났겠지 싶다.


남편은 얼마전만해도 컴맹이었다. 컴퓨터라면 내가 가르쳐준 인터넷 들어가서 원하는 것 찾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던 남편이 얼마 전, 느닷없이,


“요즘은 견적서를 다들 컴퓨터로 작성해서 보내더라. 당신이 좀 해봐.”

하는 거다.

나는 워드는 조금하지만 문서작성은 완전 젠병인데... 어쨌든 배우고자 했다면 할 수 있었겠지만 무슨 일이건 내게 떠맡기고 마는 남편의 성격을 잘 알기에 그것까지 맡았다가는 정말 골치 아플 것 같아서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말을 잘라 버렸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랬다고, 남편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혼자서 문서 작성하는 것을 터득했다. 아니, 견적서의 양식 만들기를 독학으로 터득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때, 난 아이들을 칭찬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남편에게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와~ 자기 대단하다. 그걸 어떻게 혼자 했냐? 내 머리로는 불가능한 일인데. 역시 우리 남편 머리 하나는 끝내줘.”


나의 그 말에 기고만장하던 남편은 독수리 타법이긴 해도 점점 컴퓨터에 자신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부르더니 견적서 작성하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다.


그때도 역시 난, “아~ 머리 아퍼. 나한테 그런 것 시키지마.”하고 딱 잘라 말했다. 견적서 양식을 만들어 놓은 곳에 품목과 수량과 가격만 책정하고 정산하면 되는 일이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다고 난리를 쳤다.


그렇게 빼던 어느 날, 남편이 며칠 지방출장을 갔던 적이 있다. 시숙님이 찾아와서 견적서를 써달라는 거다. 시숙님은 컴퓨터라면 바둑과 고스톱 게임외에 아는 것이 없으신 분이다. 그런 분의 부탁이니 빼도 박도 못하고 견적서를 작성해서 드린 적이 있다.


그 일이 남편의 귀로 들어갔다. 그 이후로 시숙님은 몇 번 더 견적서 작성을 부탁하셨다. 짜증이 났지만 윗분이고 또 먹고사는 것이 달린 일이니 어쩔 수 없이 해드렸지만 그러다간 정말 그 일이 내일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집에 있는데 시숙님이 견적서를 또 부탁하셨다. 그래서 “저는 잘 못 하니까, 방에 있는 아빈아빠한테 시키세요.”라고 말씀 드렸다.


“제수씨 잘하면서 왜 그래요.”

그동안 잘 하다가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식으로 시숙님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시 오겠다며 돌아가셨다.


나는 잔뜩 인상을 구기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남편은 TV만 보고 있었다.


“도대체, 시숙님은 잘 못하겠다는데 왜 자꾸 나한테 이런 것을 시키시냐고~ 민수도 있고 이슬이도 있는데 그 머리 잘 돌아가는 녀석들 나두고 왜 매일 나야!!! 이거 자기 형 거니까, 자기가 해!!!”


화가 나서 애꿎은 컴퓨터만 두드리며 화를 냈다.


“뭘 못한다는 거냐? 그냥 하면 되는 거지.” 남편이 살며시 다가오며 말했다.

“그냥 하는 게 어디 있어? 글을 잘못 치면 모양이 변해버리고 줄 맞추기도 어렵고 계산 일일이 계산기 두드려야 하고...난 계산하는 것도 싫단 말이야.”

하고 짜증백배의 반응을 보였다.


“야, 관둬라 관둬. 내가 한다.”


남편이 폭발하기 직전의 나를 보고 의자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난 얼씨구나 했다.


그 일이 있고부터 남편은 다시는 내게 견적서 때문에 신경질 날 일을 만들지 않았다. 술이 취해서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작성했다.


대신 이메일로 보내는 일은 나의 소관이었다. 그것 해주는 것만도 할아버지라던 남편이 뜬금없이 전화해서 다시 견적서 얘기를 한 거다.


남편이 신경질 적인 반응에 사실 마음이 약해지려했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그쯤 못해줄까... 지금이라도 다시 전화해서,


“아깐 미안해. 작성 해줄 테니까 품목을 불러봐.”


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어쨌든 이제서 서서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받아들이고 있는 남편에게 다시 여유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저녁 10시가 되어서 역시나 술에 약간 맛이 간 상태로 들어왔다. 들어서기가 무섭게 한다는 말이,


“그래, 당신은 집구석에서 그냥 벌어다 주는 돈만 받으면 된다 이거지?” 한다.


내내 맺혀 있었나보다. 미안했지만 거기서 꺾이면 안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우린 아직 신혼인가보다. 여적 신경전으로 줄다리를 하는 것을 보면.)


“제대로 갔다가 준다면야 살림하는 기분 나겠지. 난 분명히 말했어. 견적서 작성 못한다고. 지금 당신은 기본이 안됐잖아. 이제 좀 믿음이 가려고 하는데, 봐봐. 견적서 작성해야 한다는 사람이 술 취해서 들어와서 뭘 하겠다고. 급하다고 했던 말도 빈말이었어.”

“밖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데, 그렇게 도움이 안되냐?”

“그래. 난 도움 안돼. 그러니까 그만 둬. 여기서 자꾸 그일 가지고 말하면 쌈만 나. 요즘 창문들 열고 자는 사람들 많어. 자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조용히 하자고.”


나의 뚝뚝 끊어지는 말을 뒤로하고 남편이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닦는 내내 뭐라고 혼자서 궁시렁 거렸지만 난 무시하고 귀에 mp3를 꽂고 자리에 누웠다. (내겐 남편과 살면서 생긴 습관이 있다. 술 취한 남편이 뭐라고 떠들면 그 소리에 신경 곤두세우고 싸우기 일쑤. 그래서 휴대용라디오에 이어폰으로 꽂아 듣기 시작했다. 그 후, 누군가에게 mp3를 선물로 받고 음악부터 천수경까지 다운받아 그것들을 들으며 잠이 드는 것이 생활이 되었다.)


툭툭...

“아빈 엄마, 나 한 가지만 도와주라.”


남편이 다가와 건들면서 말했다.


“뭘? 나 피곤해.”

“열관리 협회에 내일 교육 받으러 가야하는데 바빠서 형을 대신 보내야 하거든. 그런데 신청서를 내지 못했어. 그런데 그거 인터넷으로 신청 가능하다고 하더라구. 좀 해주라.”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귀찮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남편이 할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이 대신 해줄 밖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열관리 협회를 찾았다. 그리고 신청서를 클릭했다. 사업자 등록번호부터 빼곡하게 작성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회비가 4만2천원 이란다.


교육 들어가기 전에 입금을 시켰어야 한다나? 자신을 대신해서 시숙님께 일당 5만원을 주기로 하고 교육을 대신 받으라고 했다는 얘기를 누차 얘기했다. 나를 대신 보내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지.(언젠가는 열관리 자격증을 나보고 따라는 소리까지 했던 남편이다. 민방위 훈련은 어떻고...)


인터넷 뱅킹으로 회비도 냈다. 그것을 지켜보던 남편이 의자 뒤에서 나를 꼭 끌어안더니 뺨에다 뽀뽀를 한다.


“냄새나!!!”

“좋아서 그렇지. 마누라 잘 둬서, 이런 것도 척척해주고. 다들 나를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기분이 좋았나보다. 별것도 아닌 것에 감동씩이나 하고...


밤 11시가 넘도록 남편은 불 끄고 누워서도 말이 많았다.


“아영이 컴퓨터 다니기 싫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보내. 배워야 하겠더라. 내가 못 배운 한이 있으니까. 내 새끼들은 나처럼 살게 하면 안돼.”


아영이가 컴퓨터 제 등록을 안 하겠다는 고집을 부린다고 했던 내 말이 생각났나보다. 초급에서 중급1, 중급2까지 배운 아영이가 이제 고급반을 들어가야 하는데 선생님이 무서워서 안다니겠단다. 하기 싫다는 것 억지로 시키면 도움이 되겠나 싶어서 이번 등록은 쉬게 할 생각이라고 했더니 남편도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난, 한 달은 쉬게 해줄 판이다.


남편이 1시간이 넘도록 못 배운 한들을 늘어놓았다. 난 볼륨을 높여서 듣던 음악을 살며시 껐다. 음악 소리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말들이 신경 쓰였기 때문에.


“자기, 똑똑해. 그러니까 그 복잡한 설비 일도 하는 거지. 기죽지마. 요즘은 고학력 출신도 할 일이 없어서 노는 사람도 많고, 막노동판까지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다더라.”


술주정 속에 들어있는 남편의 아픈 마음이 내게도 전해졌기에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 당신 만나서 나 많이 똑똑해 졌어.” 남편은 나의 그 한마디의 말이 뿌듯했나보다.

“나야 말로, 당신 만나서 인생 제대로 배우고 살잖아. 그러니까 자자. 내일 아빈이 현장학습 간다고 해서 김밥도 준비해줘야 하고 바뻐.”

“응...”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한껏 몸을 움츠리고 자는 모습이 창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불빛에 어렴풋이 보였다.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해줄 걸... 남편이 뺨을 살포시 만져보았다. 매일 아침 면도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의 턱밑으로 까칠한 수염이 돋아나 있었다.


‘고마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차마 뱉지 못하고 속으로 삭인 나의 말이다.

참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다. 함께한 많은 날, 이제서 남편에게 연민을 느낀다. 상대적인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니 남편 또한 내게 그런 마음을 갖고 있겠지.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남편을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늦된 나는 이제서 사랑이 무언지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