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기승을 부리는 모기 덕에 간밤엔 모기향이란 놈을 피웠다. 오랜만에 맞는 향기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질 정도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기향 냄새가 좋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다.
‘매쾌한 모기향 냄새가 좋다니... 점점 향기에도 둔해지나봐.’
일요일에 이어 토요일까지 자유 학습 일이었던 아이들과 연 이틀을 싸워 됐던 나. 다음 날 학교 갈 것을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엄마, 조금만요... 조금만 더 있다가 잘게요.’ 하고 버텼을 아들이 어쩐 일인지 두말없이 지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나 자신과의 약속, <일기 쓰는 마음으로 그 날 생각나는 것들을 꼭 글로 남겨둬야지>을 지키기 위해 아들 방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엄마, 컴퓨터 조금만 더 있다 하시면 안되요? 지금 이 기분이 너무 좋아서...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조용하기에 금세 잠들었나 했던 아들놈의 말에 놀란 것은 나였다.
“ 너 아직 안 잤니? 그런데 왜 기분이 그렇게 좋냐? ”
“ 모기향 냄새가 좋아요, 외할아버지 댁에 내려와 있는 것 같아서... 할아버지댁 냄새랑 똑같아서 좋아요.”
“할아버지 집 냄새가 이랬어?”
“우리들 모기 물린다고 매일 밤에 모기향 피워주셨잖아요... 너무 좋아요.”
창밖으로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들어왔다. 눈감고 누워있는 아들의 표정이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얼마나 가고 싶었으면...
아들의 말대로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동안 행복에 겨운 아들놈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내 친정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친정은 내가 어릴 때부터 뿌리는 모기약보다 향을 많이 피웠던 것 같다. 왜 그걸 몰랐을까... 모기향 냄새가 좋은 것이 아니라 아들의 말대로 친정의 익숙한 냄새란 것을 말이다.
지금쯤 나의 친정 정원은 겨우내 누런 잎이던 잔디가 파릇한 새싹으로 뒤덮여 있을 테고 포도나무 넝쿨에도 새싹이 돋아났을 텐데...여름에 우리들이 내가가서 재미삼아 따 먹을 토마토와 옥수수, 참외, 수박, 오이, 가지, 호박, 고추... 들을 틈틈이 텃밭에 심느라고 바쁘실 내 부모님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전화세가 아까워서 전화조차 변변히 드리지 못하는 못난 딸이 어쩌다 전화 한번 할라치면 엄마는,
“전화세 나온 나고 지랄하지 말고 얼른 끊어. 엄마가 할 테니까.” 하신다.
그럼 난 당연한 듯 끊고 기다린다. 당연히 불효막심한 딸이 아닐 수 없다. 알지만... 내가 살자면 어쩔 수가 없다. (궁색한 변명이겠지...)
힘든 상황을 감추려 목소리를 한껏 들뜨게 떠들어 되도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내 속내를 꽤 뚫는지... 여전히 내게 만큼은 녹슬지 않은 천리안을 갖고 계신듯하다.
간밤에 나 역시 친정집에 내려와 있다고 자기최면을 걸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오늘 아이들이 학교가고 10시도 안된 시간에 전화가 울렸다. 아침 일찍부터 또 누가 수다를 떨자는 건지... 방걸레질을 하던 나는 전화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애비다.”
“...아빠?”
“그래, 잘 있었냐?”
결혼 생활 10년이 넘도록 아버지께서 우리 집에 전화 한 것은 몇 되지 않는다. 감자 택배로 보내 주셨을 때, 무장아찌 보내 주셨을 때, 2째 이모 돌아가셨을 때,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오늘까지 합하면 총 5번째 전화.
아주 특별한 일 없고서는 전화 하지 않는 아빠였기에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컸다.
“당근, 딸이야 잘 있었지. 아빠는 잘 계셨어요?”
“그럼, 요즘 아빠도 바빴다. 깨 모종에 고추모종에 할 일이 많어.”
“아빠 이제 농사꾼 다 됐네.”
“그려, 니 아비 이제 농사꾼이다. 껄껄껄...”
“근데...무슨 일 있어요?”
“다른 게 아니고, 곧 어린이 날인데, 할애비가 돼서 손주들 뭐 해주지도 못하고... 그래서 돈 십 만원만 붙이려고 하는데 계좌번호를 몰라서... 그러니까 불러 봐라.”
아버지의 생각지도 못한 말씀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뭔가가 있었다. 콧등까지 시큰거릴 정도로.
“돈은 무슨 돈. 애들은 우리가 알아서 해주니까 그런 걱정 하지마.”
애써 밝은 척 내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니들은 니들이고, 어서 불러. 애비가 언제 이런 것 신경 썼니? 엄마가 출근하면서 얘기하더라. 그래서 생각한 거지. 지금 아빠 나갈 일이 있으니까, 나가면서 붙이려고 그래. 어서 불러.”
“됐어. 아빠 백수면서 무슨 돈이 있다고...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아빠, 엄마 드실 거나 신경 좀 써서 드세요.”
“아빠, 백수라도 돈 있어. 얼른~!”
“아빠, 그 돈 10만원 보내주고 어버이날 더 많이 달라는 거 아냐?”
아버지의 성화에 난 다시 푼수가 되어 말을 했건만...통하지 않았다.
“어버이날은 무슨...그런 것 신경 절대로 쓰지 말고, 전화세 나오니까 얼른 불러!”
아버지 역시 목소리가 높아지셨다.
“아빠, 그거 우리만 주는 거야... 지원네(동생네)도 주는 거야?”
괜시리 열등감마저 들어 여쭤보았다.
“지원네도 너희랑 똑같이 10만원 붙인다. 그러니까 어서 불러봐.”
“정말이지?”
“그려.”
마지못해 난 통장의 계좌번호를 불러드렸다.
“그래, 얼마 안 되지만 애들 데리고 맛있는 거 사먹어라. 그리고 방학하면 애들 데리고 아범이랑 내려와.”
아버지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띠~’ 하는 신호음이 울려 되는 수화기를 들고도 난 쉽게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눈물이 흘러 내렸다. 지금까지 받은 것도 갚으려면 아득한데... 아니, 내가 갚을 수 있는 능력으로 살 수나 있을까?
‘난 참, 여러모로 못난 딸이야.’... 잠시 난 자괴감에 빠져 들었다.
부모님께선 아직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지 3년이 넘도록 한 번도 다녀가신 적이 없다. 결혼 생활 훨씬 먼저 시작한 큰 딸이 결혼 한지 6년 밖에 안 된 2째 아들보다 작은 집에 살고 있고 있는 것이 속상해서 그러신줄 다 안다.
언젠가 내가,
“아빠, 엄마는 나 어디서 주어온거 아냐? 어쩌면 딸이 이사한 집을 한 번도 다녀가지 않을 수가 있어?”
하고 투덜거리는 내게,
“바빠서 그렇지, 다음에 가보마.” 하신 것이 전부였다.
내 아버지는 딸의 남편이자 당신의 사위인 애들 아빠를 처음부터 탐탁지 않으셨고 지금까지 내켜하시지 않는다. 남편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지만... 가끔 약주한잔 걸치셨을 때,
“어쩌면 그렇게 능력이 없냐,,, 내 딸이 어떤 딸인데... 남자가 오죽 못 났으면 여적지 그 모양으로 살어...” 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뒀던 말씀을 꺼내시곤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처갓집 식구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얘기가 있다.
“우리 딸이, 우리 누나가, 우리 손녀가, 내 조카가.... 어떤 사람인데...감히...”
남편은 지겨웠을 것이다. 그 소리가. 하지만 그런 나를 내심 부러워했을 것이다. 아직까지 집에 내려가서 설거지조차 못하게 하는 나의 엄마... 버스 타고 내려가면 일부러 평택까지 차 끌고 나오시는 아버지... 당신들을 너무도 사랑합니다.
부모님과 형제간에 넘치는 사랑 때문에 겁 없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 나는 그래서 버거운 세상살이가 더 힘들었다.
엄마가 직장 다니기 전까지는 손수 올라오셔서 김치를 담가주셨다. 하지만 직장을 다닌 후로는 김치를 사서 보내주신다. 아직도 철이 덜든 나는 그래서 김치를 몇 번 만들어 보지 못했다.
언제까지 그럴 수 없기에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나조차도 내가 담근 김치에 젓가락이 쉬이 가지 않는다. 만든 사람이 그 정돈데...
김장때 친정서 갖고 온 김치가 50포기가 넘을 것이다. 김치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도 냉장고와 베란다에까지 놓고 먹을 정도였는데... 벌써 다 먹고 이제 10kg 김치 통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저녁에 친정으로 전화를 했다. 엄마가 받으셨다.
“엄마, 아빠한테 돈 잘 쓰겠다고 전해드려.”
“그려,”
“엄마, 욕 안 해?”
“미친년, 또 욕이 고프냐?”
“그럼, 난 엄마의 욕이 늘 고픈데. 그런데 집에 김치 얼 만큼 있어?”
“조금 밖에 없지. 그 김치 벌써 다 먹었냐?”
“응... 어떡하지?”
“사야지 뭐.”
“엄마 월급 탔어?”
“아니, 봉지라도 팔아야지.”
“봉지? 무슨 봉지?”
“무슨 봉지는...X지 말이여”
“???...!!! 푸하하하하............”
“미친년, 좋아 죽네. 니 에미 X지 판다니 그리 좋냐?”
“못 살어. 난 또... 요즘도 봉투 붙이는 부업이라도 있나 싶었지... 설마하니... 푸하하하하하.....배 아퍼..... 그런데, 엄마것 아직 쓸만 한가보네....판다니... 하하하하하.....”
“팔게 그것 밖에 없으니 별 수 없지.”
“그럼 나도 벼룩 신문에라도 내 봐야겠다. 하하하...엄마는 정말 못 말려. 하하하하....”
“우라질, 배창시 터지게도 웃네.”
엄마는 머지않아 김치를 만들던 사시던 어떡하든 보내실 것이다. 푼수처럼 떠들고 ‘미안해’를 반복하는 못난 딸은 이렇게 여적, 부모님의 등골을 빼내며 살고 있다.
김치... 올해는 어떡하든 마스터 해 봐야지...
나의 홀로서기는 아직도 멀었나보다.
내가 부모님께 죄송해서 흘리는 눈물은 뭘까? 갑자기 악어의 눈물에 대해 읽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나 짐승을 잡어 먹고 배를 채운 악어는 눈물을 흘린단다. 그 눈물은 꼭 잡아 먹은 먹이가 불쌍해서 흘리는 것처럼 보인단다. 눈물은 입안에 수분을 보충해서 먹이를 삼키기 좋게하는 역할을 한단다.
동정과 후회와는 아주 거리가 먼 눈물인 것이다. 그래서 악어의 눈물을 \'거짓 눈물\'이라고 부른다나...
어쩜 나의 눈물도 그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