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자 방석을 천갈이 했다.
친구는 자주색을 주장했고
난 초록색을 주장했는데
친구가 주인장이라서 친구가 원하는 대로 자주색 방석이 의자에 깔렸다.
천갈이를 해 가지고 온 공장장님께서 서비스 차원으로 초록색 방석을 두 개,
(내가 초록색을 주장했던 걸 기억하시고서는, 고마우셔라.)
더 해 오셨는데 친구가 그걸 보더니 초록색이 더 예쁘다고 한다.
그러기에 진작 초록색으로 하자고 했더니 변덕은…….
창가에 두 테이블이 있다.
그래서 한 테이블은 자주색 방석을 깔고
한 테이블은 초록색 방석을 깔았더니
봄 햇살과 잘 어울리는 것은 당연 초록색이었다.
하루 종일 손님은 거의 없다.
하루는 공치는 날이고, 하루는 한 두 테이블 손님이 들어온다.
어제는 공치는 날이었는데
오늘은 여자 손님 셋이 들어왔다.
“꽃이 너무 예뻐서 들어왔어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카페네요.”
“네…….어서오세요.호홋~~”
“어머나! 카페 안도 예뻐요.”
한바퀴를 둘러보시고 창가자리로 앉으려고 한다.
“창가로 앉으세요.”내가 얼른 창가 자리를 권한다.
“초록색 의자가 너무 예쁘다. 우리 여기 앉자.”
안쪽에 있는 자주색 의자로 가려던 친구를 한 친구가 불러 세운다.
초록색이 더 예쁘다고…….
메뉴 책을 얼른 갖다가 드렸다.
“커피 값도 삼천 원 받아요. 리필도 계속 해 드립니다.”
“싸네요. 원두커피 두 잔하고 유자차 주세요.”
원두커피는 출근해서 바로 내려놓는다.
커피는 마실 때 보다 내릴 때 향이 젊은날처럼 싱그럽다.
젊은 날 다방에 들어가면 커피 향이 그리 좋았었다.
커피를 내릴 때마다 젊은 날의 향기가 그립다.
거리적 거릴 것 없이 홀가분했던 바다처럼 등 푸르던 날들을
난 그리 푸른 줄도 모르고 살았다.
책 한권을 겨드랑이에 끼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게 내 길이 아닌데 했었다.
그렇다고 그 후에도 지금도 이렇게 살면서 말이다.
항상 머릿속에 들끓던 잡스런 생각들, 떨어지는 꽃잎만 봐도 울고 싶던 감성들,
시 한 줄에도 슬펐던 우수들, 남자를 만나면서도 이별을 예고했던 고독 같은 것.
손님이 떠난 자리를 치우고 내가 앉았다.
홀로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고등학교 때 엄만 손에 이끌려 미래를 본다는 점집에 갔었다.
나이든 할아버지가 내 눈동자를 가만히 보더니 타고난 팔자가 외롭다고 했다.
생각이 너무 많으니까 그 쪽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생각이 많은 일이 뭘까?
어디를 가나 혼자일 때가 많다.
좋아하는 취미도 하는 일도 혼자서 하는 일이다.
카페 앞길엔 아이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유모차를 끈 젊은 주부들도 지나다닌다.
창가에 앉아 꽃 구경을 하고 사람 구경을 한다.
절음발이 남자,
한쪽 다리가 가늘고 짧다. 한쪽 손에 가는 쇠 지팡이를 짚고서 운동 삼아 나온듯하다.
며칠 전에도 지나가더니 오늘도 지나간다.
얼굴이 굳어 있다.
아직도 겨울옷을 벗지 않았다.
남자의 삶이 겨울인 듯하다.
난 다시 고독을 즐긴다, 아니 받아들인다.
미래를 보던 할아버지 말이 맞는다면
이 일이 생각하는 일인게 맞는 것 같기고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하루 종일 생각에 잠긴다.
동해바다 작은 마을에 \'고독\'이라는 카페가 살고 있다.
부부가 하던 카페 였는데
테라스로 나가며 모래사장이고 자살하고 싶으면 바로 바다로 뛰어 들어가면 된다.
그런데, 남편이 죽었단다.
어렵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부부가 열심히 카페를 꾸미다가
남편이 간이 나빠져서 요절을 했다.
내 나이 정도 돼 보이는 여자 혼자서 고독이란 카페를 지키고 있다.
늙어가고 있는 머리카락을 염색도 하지 않고,생머리를 질끈 동여매고서는......
봄이면 카페 뜰에 들꽃이 마구 핀다던 카페였다.
나처럼 들꽃을 좋아하던 여자.
그 여자는 고독을 즐기며 홀로 카페를 꾸리고 있을까?
카페 이름 때문에 혼자가 된 것일까?
젊은 날 커피 향을 맡으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했듯이
커피를 팔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내 길일까?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