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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있는 집에서 엄마가 샤워하고 옷을 벗고 집안을 다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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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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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BY 똑똑하고 싶은 바보 2006-04-28

 외국에서 의류제조업체 고위직을 맡고 계시는 친척 한 분으로부터 여름에 입을 수 있을만한 원피스를 대여섯벌 받았다. 쉬폰소재의 민소매 원피스인데 한눈에도 원색적이고 노출이 심해 밖에 입고 나가기는 민망할 것 같았다.

 

 한 번 걸쳐보았다. 디자인도 예뻤고 실루엣도 제법 살아난다. 언덕처럼 솟은 배만 아니라면 거울 앞에서 모델 흉내를 내봄직도 하다. 하지만 모로보면 가슴보다 더 봉긋한 배가 사실 우스꽝스럽다. 내가 6개월째의 임산부란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앞모습은 그런대로 섹시해보였다. 목선이 크게 뚫려 가슴이 삼분의 일이나 드러났다. 아니 옷모양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배불뚝이임을 가만하여 보내주시는 분이 사이즈를 대폭 늘린 데 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거울 속의 나는 앙가슴이 드러나고 쇄골이 적나라한 것이 제법 여성미가 풍겼다.

 

 \" 집에서도 예쁘게 하고 있어야 신랑이 밖으로 안돈다. 네 신랑은 그런 사람 아니라 자부하지 말어. 남자는 다 똑같으니까. 마누라가 집에서 추레한 모습으로 맞으면 집에 들어올 맛이 나겠니?\"

 옷을 보낸다는 전갈을 보내며 친척분이 내게 한신 말씀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임신한 상태로 두 돌된 아들 녀석 챙기랴, 집안일 하랴. 나는 나를 전혀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코 밑은 터서 갈라지고 퍼머가 풀린 머리카락은 감고 빗어도 푸석했다. 여기저기 군살이 붙어서 전에 입던 옷은 모두 장 깊은 구석에 넣어두고 몸이 들어간다 싶으면 아무거나 걸치다보니 집에 손님이 갑자기 찾아오면 문을 열어주기가 곤란할 정도였다.

 나조차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하고 구질구질해서 그 심정을 신랑한테 한탄하듯 털어놓곤 했었다. 

 

 그 전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있던 잠자리도 배가 부르면서는 한 번 꼴이 되었다.

 아줌마들끼리 모이다보면 간혹 잠자리 얘기가 스치듯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여자는 전깃불 끄기가 겁나 빨래라도 찾아서 하고싶다고까지 했었다.  

 그에 비하면 우린 결혼 4년차에 월 2번. 너무 적은 회수여서 우리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고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밤일을 조금 귀찮아하는 편이고, 어쩌다 생각이 솟아도 별로 내색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임신 후 그나마도 더 뜸해졌던 것.

 신랑은 뱃 속 아기와 나를 배려해서라고 말하긴 했었다.

 

 그래도...

 문득 \'그래도...\'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조차 내가 보기 한심하다고 타령만 할 때가 아니야. 좀 달라져보자.

  까짓거 입지 뭐. 나라고 이런 것 못입으란 법 있어?\'

 

 이렇게 해서 신랑을 출근시키고난 아침 나는 그 중 한 벌을 꺼내입었다.

역시나 좀 낯부끄럽다. 어색한 듯도 하다. 

 그러나 두 돌된 아들녀석은 엄마한테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특히 가슴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엄마, 찌찌!\" 하며 품에 얼굴을 파묻는가 하면 손을 옷 속으로 슬쩍 집어넣기도 하고. 14개월까지 젖을 먹였던 까닭인지 녀석은 평소에도 엄마 가슴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입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집안 일 할 때나 하다못해 몸을 쉬일 때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자세가 여엉 나오지를 않았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다리 모양새에도 신경을 써야 보기 흉하지 않을텐데 이건 뭐 선머슴애한테 치마 입혀놓은 모양으로 꼴사납기 그지 없었다.

 \'늘상 편한 바지만 입다보니 몸가짐이 단정하지 않아서 그러나?

 어휴! 아침부터 미리 입고있길 잘했다. 낮동안 익숙하게 해서 신랑이 오면 어색해보이지 않게 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날아다니다시피 하는 아들녀석 쫓아다니랴 나온 배 추스르랴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신랑이 퇴근한 늦은 저녁.

 내가 안입던 옷을 입었는데도 그는 일언반구 말한마디 없었다.

 정말 혹시나, 아주 혹시나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닌가 해서

 \"이 옷 상당히 야하지?\" 떠봤더니 그저

 \"응\" 대답하고는 아들녀석과 놀아줄 뿐이다.

 나는 \'피이! 맘으로는 제법 섹시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걸. 오늘밤 귀찮게 하면 어쩌지? 생각없는데.\' 하고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얼마 후 거실에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데 그가 먼저 안방으로 들어가 불을 껐다.

 \'그냥 자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 모습이 별로인가봐.\'

 그가 잠들기 전에 그의 행동을 봐야겠다 싶어 서둘러 아들을 씻기고 양치질까지 마쳐 잠잘 채비를 했다. 그러나 내가 안방에 들어갔을 때 그는 이미 자고 있었다.

 나는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내 몸 구석구석을 찬찬히 훑었다.

 \'음... 턱 밑에 살이 많이 붙었어...

 팔뚝도 몰라보게 굵어졌는걸. 민소매라 도드라져보여.

 어깨가 넓고 하체는 짧아서 별로 안예쁘네...

 이 옷이 나한테는 어색하구나!\'

 

 \'그래! 내 주제에 무슨 이런 예쁜 원피스야. 그냥 입던거 입지 뭐.\'

 결국 나는 그 치마를 벗어버렸다.

 

 조금전까지의 나를 돌아생각하니 웃으꽝스러웠다. 신랑이 나의 내심을 알았다면 웃었을 것이다. 아니다. 이미 마음으로 한 번 비웃고도 모른척 잠에 들었을지 모른다.

 

 아무튼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예쁜 옷이 아니더라도 깨끗하고 편안한 옷을 단정히 입고 있을것.

 표정을 밝게 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것.

 신랑에게 아내로서 더 잘할 것.

 피부기초관리에도 손 놓지 않을 것.

 부스스한 머리 관리법을 터득할 것 등.

 

 전에는 속수무책이었던 것들에 나름대로 해결방법을 내놓게 되었다.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또 알까? 이렇게 시간이 가서 정말 더워진 여름에는 그 원피스를 입고 활보하는 내게 신랑이 한마디쯤 던져줄지.

 \"배불러도 그런대로 어울리네. 보기 좋다.\" 이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