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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터


BY 일상 속에서 2006-04-22

 

내가 사는 곳은 반 지하를 포함해서 4층 건물인 단독주택이다.

18평형의 작은 평수는 층층마다 2세대씩, 3층을 혼자 쓰는 주인세대를 빼고 총 6세대가 살고 있다.


그중 내가 사는 곳은 2층 202호. 이곳에 이사 온지도 어언~ 3년.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사연 없는 사람들이 없다. 처음 이사 올 때 옆 호수였던 201호에는 경상도 부부가 아들 2형제를 슬하에 두고 살았다. 50을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머리카락을 제대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모자나 두건 같은 것으로 한껏 멋을 부릴 만큼 평범함을 웃도는 차림새였다.


화장품 한 셋트 가격이 무려 30만원대를 훌쩍 넘는 것만 써야 피부가 받는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어 댔다. 남편의 성질이 불같아서 여차하면 살림 때려 부수고 다시 사야 직성이 풀린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분... 안타깝게도 몇 달되지 않아서 제일 아래층 반 지하 B102호로 내려가고 말았다. 어쩌다 얼굴한번 마주치면 부끄러운 듯 눈을 피하는 아주머니의 평범해진 모습이 오히려 내게 편하게 다가왔다.


그 옆 호수인 B101호는 지금껏 누가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처음에 부부와 딸 셋이 이사 들어왔다는 그 집은 언제부턴가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여자가 밤에 일을 나가느니... 집 안을 치우지 않는지, 이 건물에 있는 바퀴벌레의 근원지는 그곳이라는 둥... 그곳에는 개가 3마리나 된단다.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다.


택배나 우체부 아저씨가 와도 문을 잘 열어주지 않는단다. 하여튼 그 집은 온갖 추측만이 난무한다. 그런 것 보면 사람들 남의  말하기 무진장 좋아한다.(나 역시 여기서 떠드는 것으로 보아... 남에 흉볼 처지는 아닌 듯...)


그리고 일층 101호는 내가 사는 동안 벌써 주인이 2번이나 바뀌었다. 2번째 이사 온 사람은 젊은 신혼부부였다. 아니 그렇게 알고들 있었다. 이사 들어 올 때부터 시끌벅쩍 하더니 새벽 2~3시는 초저녁으로, 키우는 개까지 한 몫 거들었다. 올빼미 족처럼 밤마다 젊음의 향연을 벌이고 노래와 음악소리와 고함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온갖 소리를 뛰어 넘은 소음공해들...막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 젊을 때도 저랬을까...? 되짚어보며 아무도 태클 걸지를 못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이삿짐이 나가 길래 웬일인가 했더니 새댁만 나간단다. 새댁인줄 알았던 아가씨는 동거녀로 호적상 깨끗하다니 나가는 순간 새댁 탈피, 순수한 아가씨로 돌아간다나... 왠지 씁씁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은 일층 102호,

80을 바라보는 할머님이 아들 내외와 고등학교 다니는 손자들과 함께 사신다. 이 건물이 지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다니 12년도 넘게 산 것 같다. 이 건물에서는 터주 대감이시다. 80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는 내게 옛날 얘기를 곧잘 하셨다.


남편은 여자 꽤나 울리셨던 멋쟁이로, 박식하기 이를 때 없는 신문기자셨단다. 이 건물로 들어오기 전까지 동대문에서 엄청 큰 장사를 하셨단다. 자존심 하나로 똘똘 뭉친 듯, 할머니는 묻지 않아도 며느리가 일류 요리사라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 아들이 현장 소장이라서 월급을 어마어마하게 받는다, 딸은 미국에서 대궐같이 큰 집에서 사는 부자라는 등의 얘기를 자랑스럽게 얘기하시곤 했다. 그럴 때면 난 좋으시겠다고 맞장구 쳐드렸다. 한때 외할머니랑 함께 살던 추억이 있어서인지 할머니의 그런 모습들이 밉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아픔을 대강 알고 있다. 아들이 실직한지 오래고 며느리 혼자서 이 식당, 저 식당으로 돌아다니며 잡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혼자서 아이들 학비 버느라 할머니의 며느리는 얼마나 고될까...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여태껏 그 집에서 큰 소리 한번 나온 적이 없었다. 어떡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지금껏 그것이 내게는 불가사의다.


할머니는 그 연세에도 때론 꽃무늬 원피스나 그 옛날 700만원 주고 샀다는 밍크코트를 입고 입술에 붉은 립스틱까지 바르고 외출을 하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난 할머니께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고 한다. 그런 나의 말에 할머니는 얼굴까지 붉히며 틀니이긴 하지만 누렇게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웃으시며 “ 별 말을 다해... 늙은 것이 예쁘다니...” 하신다. 할머니의 미소가 귀엽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옆집... 201호,

우리보다 1년 조금 늦게 이사를 왔다. 나보다 10년 정도 연륜 높은 아주머니는 결혼을 늦게 해선지 큰 딸이 우리 작은 애보다 한 학년 위인 초등학교 3학년생이다. 그리고 3살 된 딸과 이제 돌이 안 된 3째 딸까지 딸딸이 엄마다. 건물 자체가 방음처리가 안된 건지 아니면 사람들의 목청이 큰 것인지 싸움한번 했다하면 그 리얼한 소리가 장난 아니다. 히스테릭한 여자의 목소리가 내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내 목소리 역시 크다보니... 내가 화를 내면 저만큼 들리겠지?... 조심해야겠다는 다짐마저 들지만... 잘 안 될 때가 많다. ^^;;;


그 집 역시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커다란 사업을 했단다. 커다란 한식 뷔페를 비롯해서 옷 장사까지. 하는 족족 망해서 커다란 평수의 아파트까지 처분했어도 빈손으로 쫓겨나다시피 이곳까지 들어왔단다. 부부싸움 한번 하고 나면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어느 날, 그런 아주머니께 내가 먼저 차를 마시자고 권했다.


그리고,

“ 사는 것이 힘들죠? 힘들 때 참고만 있으면 병 된대요. 그럴 때 화도 못 내면 어떻게 살겠어요? 주변 신경 쓰지 마세요. 나도 그러고 살아요. 싸움한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에게 관심 있고 사랑이 있어서라고 하던데...” 라는 나의 말에 아주머니는 미안하단다. 그리고 고맙단다. 


같은 평수인대도 불구하고 집세가 제각기 틀리다고 주인아주머니께서 언젠가 말씀하셨다. 내가 편한 걸까? 집집마다 갖고 있는 속사정을 다들 내게 와서 흘려주곤 간다. 이곳에서 형편이 제일 나은 사람이 우리라니... 다들 얼마나 버겁게 사는지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를 포장하려 한다. 그 알량한 자존심으로 말이다. 그래서 다들 지금이 힘들면 옛날을 거들먹거리는 것 같다. 나 또한 잘 났다고 떠드는 사람 앞에서 기죽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한때는 나 역시 ‘아 옛날이여!’를 노래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그런 것들이...


옛날에 궁궐에서 살았으면 무엇하고 대통령이었으면 무엇 할까? 지금 이렇게 비좁아서 숨이 턱에 차오를 지경이라 환장하겠는데... 물론, 추억만은 고이 간직하고 사는 것이야 나쁠 수 없지.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를 넘어서 충분히 공감도 한다. 그런 추억도 없이 현재까지 힘들다면 그건 고문일 테니...


나보다 못난 사람을 무시하고 싶지 않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부러워하고 싶지도 않다. 인간사 어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러고 보면 난 참 글만 번지지르하다. 아니 입도 번지르르르르........


누가 보면 이렇게 말하는 나를 성인군자라고 하겠지.

얼마 전만 하더라도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이 전세에서 커다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전세가 아닌 자기 명의로 인수했단다. 그날 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밤늦도록 터지기 직전인 시한폭탄처럼 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