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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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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농을 버리며


BY 비단모래 2006-04-20

 

어린딸의 결혼이 다가오자 어머니는 딸의 혼수때문에 마음을 많이 앓으셨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줄줄이 학생인 오빠..동생
학업중에 오빠들을 제치고 느닷없이 결혼을 하겠다는 딸의 철없는 행동에..더구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랑하나 가지고 8남매 맏며느리로 간다는 딸때문에 어머닌 몇날을 마음아파 하셨다
몸도 여리고 나이도 어린데 그 짐을 어떻게 지려느냐고 걱정하셨지만 그래도 어린딸의 선택을 마다하지는 않으셨다
네가 현명하니까 사람은 잘 선택 했을거다 라고 하시며...
그랬다.나의 이상형은 아버지 였다
아버지는 내가 만난 첫남자이기도 했지만 아버지 같은 사람이면 내일생을 맡겨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음속에 아버지같은 남자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어느날 내 앞에 다가온 사람은 생김부터 아버지와 비슷했다
시원하게 생긴 눈..그리고 피아노 건반같은 이를 내놓고 웃던 웃음..거칠지 않은 부드럽고 조용한 말씨. 그리고 조용하게 나를 챙기는 일이 아버지와 같았다..자신있게 그를 부모님께 소개했고 명예없고 재물없고 농촌의 8남매 장남이지만 사람하나 건실하다고 딸의 선택을 흔쾌히 허락하셨다
하지만 우리집도 넉넉지 않았다
청빈한 선생님 선비인 아버지..많은 학생들...
딸의 혼수를 장만할 여유가 없었다
어린딸은 그저 그사람과 있다는 것만도 행복해하지만 부모님은 제대로 갖춰주지 못하는 마음에 많이 아파하셨다

결혼을 하고 부모님곁을 떠나오는날
어머닌 어머니께서 쓰시던 장농과 화장대를 내어주셨다
\'새것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엄마가 꼭 하나 해주마\'하시며 눈물이 고이셨다.
어머니가 장농을 장만하시고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자개 화장대에서 어머니는 긴 머리를 빗으며 얼마나 행복해 하셨는지...
그런 장농과 화장대를 가지고 오며 나도 참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 장농과 화장대를 25년간 간직했다
아파트 입주를 하면서 장농을 바꾸고 싶었지만 남편이 반대를 했다
그러면 어머니 서운해 하신다고...
어머니께서 아끼던 것을 주셨으니 귀하게 쓰라고..
그러며 왁스로 잘 닦아주었다

자개농은 수납공간도 마땅치 않고 정말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어머니 마음처럼 아끼고 살아왔는데 이번에 집을 리모델링을 결정하니 정말 자개농과 화장대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엄마 이번에 집을 고치려고 하는데 장농과 화장대를 바꿔야 할것 같아요..서운해하실까봐...\'
하니 \'아니다..정말 잘했다..그동안 마음에 많이 걸렸는데\'
남편도 전화를 했다
.어머니 정말 서운 하시지 않겠어요?\'

퇴근하고 차를 주차장에 대고 보니 내가 쓰던 장농과 화장대가 쓰레기통옆에 서있었다
전쟁에서 쓰러진 패잔병같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버려지다니..섭섭해 하는것 같았다
그 모습이 왜그리 애잔한지 다가가서 손을 한번 쓸어내렸다
\'너와 나와의 인연은 여기까지 인가보다..
25년간 나의 역사와 함께한 너를 버려서 미안하다
화장대 거울앞에서 화장을 하며..옷맵시를 보며
행복한 웃음을 많이도 지었었는데
이렇게 헤어진다..잘가라.

이제 처분하는 딱지를 부치면 이장농과 화장대는 폐기처분 될것이다
나의 25년 역사를 간직한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갈 것이다.

미안하다..그리고 그동안 사랑했다...
이 고백이 새겨질지 모르지만..........
                                                           2004년의 어느날 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