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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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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일기(비와 꽃나무)


BY 개망초꽃 2006-04-19

하굣길에 사내아이 셋이 목련꽃을 따고 있다.

길 건너 초등학교는 카페랑 비슷하게 나이를 먹었을 것 같다.

카페 뒤편으로 이삼층 주택이 골목길을 사이로 오밀조밀 모여 있다.

학교를 오가며 아이들은 호기심과 관심어린 몸짓으로 내가 심은 꽃을 보고 꽃을 딴다.

못보고 지나가는 아이들보다 꽃을 따는 아이들이 귀엽고 감성이 풍부한 아이 같다.

저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집안에 화분을 들여 놓고, 뜰에 꽃을 심고,

길거리 꽃에 눈길을 주게 될 것이다.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서 있으니 비가 뿌려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는 그쳐 있었다.

어제는 월요일이라 청소할 것도 주방에 치울 것도 많았는데

오늘은 치울 것이 별로 없다.

어제 카페 문을 여니 술 냄새 때문에 내가 술에 취했나 할 정도였다.

타일로 된 홀 바닥에 술 자국이 끈적였다.

그래서 홀 바닥을 엎드려 걸레질을 했다.

화장실도 주방도 너저분해서 구석구석 치웠더니

오늘은 할일이 별로 없어서 대충 빗질만했다.

비가 오락가락 변덕을 부려서 처마 밑에 살고 있는 화초에게만 물을 대충 주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친구도 오후 늦게나 나오기 때문에 홀로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비가 오려나?

비가 오네…….

홀 안에 있던 화분을 비 맞으라고 밖에 내 놨더니 비가 그친다.

비야?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지 아줌마 갖고 노냐?


창안에서 밖을 보면 목련나무가 제일 눈에 들어온다.

일단 하얗게 날개를 펴고 있어서 그렇고

높이가 카페 창이랑 맞춤이다.

오늘은 목련꽃이 비바람에 흐느낀다.

창안에서 바라보는 목련은 희디희다 못 해 창백하다.


탁자마다 이름모를 풀과 꽃다지 꽃을 길쭉한 양주잔에 꽂았더니

카페 분위기가 한층 생기가 돈다.

죽어 있는 조화보다 생화가 훨씬 살고 싶다는 욕구를 준다.


사내아이들이 목련 나뭇가지를 끌어 잡아 당겨 꽃을 따더니

셋이서 목련꽃 안을 들여다 보았다.

자기들 주먹만한 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서 생생한 꿈을 본다.

나는 이게 사는 맛이고 이래서 살고 싶구나 하는 욕구가 우울하다가 문득문득 생긴다.


오후 3시쯤엔 밖은 어둠이 찾아들었다.

곧 억수장대비가 쏟아 붓겠구나…….

어두워지면 켜는 등불을 밝혔다.

분위기 끝내준다, 내 좋아하는 사람과 향긋한 커피나 술에 약간 취하고 싶다.

그러나 다시 밖은 밝아지고 퇴근 무렵엔 우산이 필요 없었다.

“우산이 없어, 우산 가지고 나와?”

친구에게 전화까지 했었는데…….

퇴근길에 목련꽃은 땅바닥에 피어있었다.

벚꽃도 그렇고 살구꽃도 나뭇가지 보다는 나무 밑동에 꽃잎 그림자를 그렸다.

피어 있으면 피어 있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아름다운 꽃나무들.......

이래서 살고 싶다.

이래서 나는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