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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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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에서


BY 억새풀 2006-04-15

 

                             화진포 일출을 바라보며


작년 가을부터 펜션이 완공되었으니, 꼭 한번 들려달라는 당부를 받기도 벌써 3번째이다.

명퇴를 하고 고향인 강원도 거진 항에 내려가, 말년을 글이나 쓰며 초야에 묻혀 살겠다고 간 것이 벌써 1년이 넘었으니 지인(知人)들의 면면이 궁금하기도 할뿐더러 보고 싶기는 오죽하련만, 당일로 다녀오기는 쉽지 않은 거리라 친구들과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남선생에게 못할 짓을 한 것처럼 늘 마음에 부담을 느껴오던 터였다.

마침 강원도에 때늦은 대설경보가 내려 온 천지가 설국(雪國)으로 변모했으니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주말에 내려오라는 당부 전화와 함께, 이번마저 공수표가 되면 좋은 친구 하나를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로 토요일 새벽에 출발을 하기로 하였다.

 

전날까지 칼바람과 함께 맹위를 떨치던 꽃샘추위도 홀연히 사라지고,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니 하루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포근한 봄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집결지인 서울 반포에 도착하여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 마시는 동안 일행들이 속속 도착을 하고, 행여 주말이라 나들이 차량이 많으면 길이 밀릴 수도 있어, 지체 없이 미사리를 경유하여 양수리, 양평을 지나 홍천쯤 다다르니 차창에 쏟아지는 봄볕이 따사롭기 그지없다.

따사로운 봄볕에 혹시 강가의 버들개지들이 눈을 뜨지는 않았을까 하는, 때 이른 기대감으로 바라보지만 아직은 겨우내 악착스레 버틴 흔적만 보일 뿐 신록의 빛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음 한편으로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신록이 있었으면 이 나들이 길이 얼마나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성능 좋은 차는 신남을 지나 벌써 미시령과 진부령의 갈림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서로가 가장 걱정하던 것은 대설경보 직후라 차량통제를 하면 어떡하나 하였는데 도로는 말끔히 정리되어 있고, 주변 산에만 하얀 백설로 덮여있어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고, 말들은 안하지만 안심들을 하는 표정이었다.

푸른 소나무 가지에 핀 눈꽃(雪花)을 보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양지바른 곳으로부터 서서히 녹기 시작한 잔설(殘雪)이 물방울이 되어 졸졸 소리를 내며 아직은 다 풀리지 않은 얼음 사이사이를 흐르고, 그 얼음 가장자리마다 영롱한 이슬과도 같은 방울을 맺힌다.

우리는 심심산골 자리 잡은 계곡의 휘돌아 나가는 길목마다 얼어붙은, 하얀 얼음덩이들이 가장자리부터 녹아나가는 모습에서도, 봄이 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한 겨울 차갑고 날카롭게만 보이던 얼음조각들이 녹기 시작하는 이맘때쯤이면 그 얼마나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눈여겨 본 사람들이라면 짐작들 하리라.

 

용대리 백담사 입구를 지나 우측으로 미시령 길목을 지나치니 순식간에 차는 진부령 고개 마루에 이르고 숨 가쁘게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며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향로봉과 칠절봉 사이에 위치한 진부령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나 지금의 도로가 개통되기 전만 해도 용대리 쪽에서 차가 한대 갈라치면 반대편 고개 입구에서 오는 차를 막아놓고 보내야 할 정도로 험로의 비포장도로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도로 사정은 너무나 좋아져 잠간의 휴식과 그동안 참았던 한모금의 담배연기를 뒤로하고 다시 출발했다 싶었는데, 어느새 차는 대대리 검문소를 지나고 있었다.

 

여기서 간성 쪽으로 직진하여 2~3분 달리자 이구동성으로 “아! 바다다~~”하는 탄성이 들리고 우측으로 동해바다를 끼고, 멀리는 간성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쯤에서 남선생에게 전화를 하여 자세한 위치를 물어보고 차는 내친걸음에 화포리 펜션으로 향한다.

첩첩산중을 빠져나와 이내 다다른, 언제보아도 막힌 숨통을 틔어 주는듯한 동해바다를 끼고 달리자니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고 함께하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화포리 입구에 이르니 전화를 받고 반가움에, 검정고무신을 신은 채 우리를 맞이하는 남선생의 푸근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화포리는 3면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녁한 분위기의 작은 마을이다.

그 마을 가장 위쪽에 남선생의 펜션이 아담하고 깨끗한 분위기로 자리 잡고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층집의 구조로 아래층은 큰 거실에 남선생의 오래 묵은 장서들로 큰 서고를 가득 메우고 그리고 한쪽에선 이미 켜놓은 것이라 짐작이 가는 “모챠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의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남선생의 궁상맞은 모습은 찾아볼 길 없는, 깨끗하고 정돈된 살림살이에 서로가 감탄을 하며 늦은 인사나마 서로의 해후를 나누고 있었다.

 

집안 이곳저곳을 안내하던 남선생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다락방 구조로 되어있는 그만의 작은 공간이었다.

남쪽을 향한 작은 창으로는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일어서면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 낮은 방임에도 불구하고 그 방은 나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아래층에 못다 진열한 책들과 구석에는 컴퓨터 한 대, 그리고 돗자리 하나가 전부인 방이지만, 그 공간에 내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층은 객들이 묵을 방이 크기에 따라 네 개가 있고 샤워장과 화장실 그리고 주방설비가 갖춰져 있어 콘도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이다.

 

간단하게 차려서 먹고 술이나 한잔 하자는 남선생의 제의에 제동을 건 것은 나다.

이곳에 오랜만에 왔으니 간성 항에 나가 생태찌개로 요기를 달래고 포구에 들려 저녁거리도 사오자는 내 제안에 갯내음이 그리운 친구들이 반대를 할 리가 없었다.

예전에는 이곳 간성 항에서 배를 타고 가자미 낚시를 가기도 하고 방파제에 앉아 새끼 돔 낚시도 하곤 하였는데 그 세월이 어언 7~8년은 지난 것 같다.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해 건물도 많이 들어서고 포구도 더욱 커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많은 변모가 있었다.

일본과의 어업협정 때문에 원양으로 나가는 길이 막혀 연근해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에 배도 많아진 것 같고 그 크기도 더욱 커진 듯한 느낌이다.

내실은 없고 외적으로만 커진 현실에 결국 소비자들의 지출만 커졌다는 것이 현지민들의 말이다.

 

얼큰한 생태찌개에 도루묵찜을 곁들인 점심은 우리에게 적당한 포만감을 주었다.

이제부터 포구구경도 하고 저녁 찬거리도 산후에, 화진포콘도에 가서 커피도 한 잔하며 호수와 바다를 보자는 남선생의 말에 식당에서 포구까지 걸어가며, 그간 남선생이 이곳에 와 펜션을 짓게 된 동기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이야기를 들으며 일행은 마치 회귀본능에 따라 물길을 찾는 연어 떼처럼 발길은 자연스레 바다 쪽을  향하고 있었다.

여기는 아침에 와야 그 활기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 점심시간을 훌쩍 지난 오후 시간에는 정박해 있는 배에서 끄집어 낸 그물을 수선하는 어부들과 잔챙이 고기를 벌려놓고 파는 몇몇 아주머니들만 우리를 반길 따름이다.

팔고 있는 고기도 주로 가자미 일색이고 간혹 문어와 털게 몇 마리가 고작인데, 횟감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를 않는다.

가자미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가 아직 싱싱하니 회를 쳐 줄 테니 집에 가서 드셔도 된다고 하지만 살아있는 생선이 아니면 배앓이를 할 것 같다는 일행들의 말에 따라 큰 가자미 몇 마리와 문어, 그리고 털게를 조금 사서 차에 싣고는 화진포로 향하였다.

 

포구에서 화진포까지는 약 10분 거리로 시내를 빠져 조금 가자니 이내 눈에 들어왔다.

동해안에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석호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는 화진포는 맑은 물을 가득 채운 채 바다와는 겨우 몇 센티 안 되는 높이의 모래둔덕으로 경계를 삼고 있어 파도가 좀 큰 날에는 바닷물이 호수 안으로 밀려들어와 그곳에서 서식하는 어종도 바다와 민물고기가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보던 화진포와는 전혀 그 경관이 바뀌어, 그 옛날의 추억은 되씹어보기조차 힘들게 변해버린 모습에 이곳도 세월의 흐름에 처연하지는 못했구나 하는 씁쓸함을 안고 해변 가에 면해 있는 커피숍을  향하였다.

가까이에 있는 김일성 별장도 이미 새 단장을 했는지 예전의 그 을씨년한 모습은 찾아볼 길 없었다.

시원하게 열린 바다를 보며 누군가의 입에서 내일 아침은 6시경에 나와 일출을 보자고 하니 누군들 반대를 하겠는가.

모두들 내일 아침이 오늘과 같이 맑기만 하라고 바라는 마음을 안고 남선생 댁으로 발길을 돌렸다.

 

문어를 살짝 데쳐 대충 썰어놓고는 가지고 온 초고추장을 찍어 안주삼아 술자리를 하는 친구들을 남겨둔 채 남선생의 양해 하에 아까의 그 다락방을 올라갔다.

작은 쿳션을 베개 삼아 창 쪽으로 머리를 두고 서고에서 책을 하나 꺼내들고는 오후 한때 한가로움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길게 드러누워 책을 보려하니 심란한 마음에 책이 눈에 들지를 않는다.

가만히 눈을 감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잠이 들었었나보다.

눈을 떠보니 내 몸 위에는 낯선 담요 하나가 덮여있었다.

아마도 나를 찾아왔던 남선생이 약간의 한기를 느끼고 꾸부리고 자는 나를 위해 덮어 주었던 것 같다.

고마움을 느끼면서 누운 자세에서 창밖을 보니 아! 거기에는 반달이 환한 모습으로 둥실 떠 있었다.

오늘이 음력으로 21일이니 보름달만큼 둥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님의 얼굴과도 같이 편한 모습의 달이 올라있었다.

환한 달빛에 뚜렷이 나타난 산 능선의 모습과 어우러진 푸른 달빛은 처량하기 조차하다.

이곳에 와서까지 혼자라는 생각에 젖어드는 내 모습에 흠칫 놀라보기도 한다.



  홀로 우는 밤


밤마다 혼자인 것이

오늘만은 아니었는데...


말라붙은 목에선

쇳소리가 쨍쨍 울리고

퀭한 두 눈엔

소리 없는 눈물이

기다림에 지쳐버린

가슴속을 꿰뚫고

무심히도 지나는구나


그냥 보고싶단

욕구만이 용솟음치듯

머리끝을 향해

뜨거운 바람을 일으킨다


사랑하는 이여!

한 팔만 뻗쳐도

그대 손을

마주 잡을 수 있으련만...


사무치는

그리움에 비해

외로움이 무에 그리 힘드련만


가슴에 간직한

그리움 사이로

무섭도록 외로운 현실은

이 밤도

처절한 몸부림되어

악마의 유혹처럼

비탄의 늪으로

나를 이끈다


저녁을 먹자는 부름에 부질없는 망상에서 벗어나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푸짐한 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거나해진 친구들은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얼른 식사를 마치고 즐길 화투에만 정신을 잃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자리에 저녁에 화진포 호숫가를 산책하자고 말하는 나만 정신없는 놈이라 몰아붙일 것이 뻔한지라 저녁 산책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기위해 모두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4시50분부터 잠이 깨어 샤워를 하고,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 애꿎은 담배만 피워 물고는 동녘 하늘만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슴푸레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일행들을 채근하여 화진포로 향하자, 멀리서 보이는 바다에는 아주 희미하나마 붉은 기운이 살짝 감돌기만 할뿐 아직 해는 떠오르지를 않았다.

새벽바람이건만 전혀 춥다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봄기운이 완연하다.

5시 45분 경이 되니 수평선 저 끝에서부터 붉은 점 하나가 자리 잡기 시작을 하더니만 그 작은 점이 조금씩 커져 감을 알 수 있었고 뿌연 안개 속에서 그 점의 흔적은 사라지고 주변을 진홍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붉은 불 항아리를 중심으로 주변의 색상이 각각 다르게 표현이 되니 그 어느 화가인들 저런 채색을 표현하리...

이윽고 낮은 안개 무리 사이를 뚫고 둥근 모습을 드러낸 태양의 모습이 바다에 비쳐지니 내가 서 있는 모래사장 발 앞에 까지 깊고 푸른 심해를 건너 붉은 다리가 놓여지고, 푸른 바다에 비쳐지는 파도와 달리 붉은 다리사이로 밀쳐오는 파도의 수많은 잔해들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새해 첫날 많은 이들이 저 모습을 보고 소원을 빌었으리라...

무교주의자인 나로서도 저 붉은 다리의 모습을 보니 적어도 작은 소원이라도 빌면 한없이 아름다운 바다멀리 저곳으로부터 행운을 전해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드니 말이다.

내 가족과 내 사랑과 나의 안녕과 건강함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