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뼈가 부러졌습니까?”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접수원, 당직의사, 간호사, 엑스레이 촬영기사, 모두가 말이다. 그러면 남편도 공손하게 똑같은 대답을 했다. ‘벽을 차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벽을? 어떻게? 왜? 남편의 대답은 더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한데 신기하게도, 그들은 또 하나같이 더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벽이 아니라 마누라 정강이를 걷어차다 그리 된 것을 이미 다 꿰뚫은 것처럼.
나는 발가락에도 뼈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엑스레이를 짚어 가며 새파란 당직의사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제가 볼 때 이건 수술해야 합니다.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친절한 의사의 입에서 입원이니 금식이니 하는 말들이 쏟아지자 나는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응급실을 들어설 때만 해도 나는 찢어진 데를 꿰매듯이 간단하게 응급처치만 하면 될 줄 알았던 것이다.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무릎까지 깁스만 한 채 우리는 일단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남편과 나는 말없이 택시를 탔다.
나는 멍하니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홉 시가 다 돼 가고 있었다. 보통 때라면 지금쯤 저녁은 벌써 먹었을 것이고, 나는 설거지를 하며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는 애들한테 이 닦으라고 소리치고 있을 것이다. 남편은 느긋하게 드러누워 리모컨을 돌려대고 있을 테고. 너무 단조로워 지겹기까지 했던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날 아침, 애들 추가예방접종도 하고 큰애 입학식 때 필요한 증명서도 뗄 겸 나는 외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보건소 위치가 바뀌어 남편과 함께 가려고 몇 주 전부터 별러 오던 터였다. 나가는 걸 싫어하는 남편은 보건소 얘길 꺼낸 순간부터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남편의 그런 얼굴이 보기 싫어 입이 튀어 나왔다. 바늘 끝만 스쳐도 뻥 터질 것처럼 집 안 공기가 팽창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무사히 준비가 끝났다. 이제 신발 신고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결국 일은 터졌다. 나는 버스를 타자고 했고 남편은 초행길이니 택시를 부르자고 하면서 언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 갖고 일이 더 커질 이유는 없었다. 진짜 문제는, 그 사소한 의견차이 하나로 촉발될 만큼 우리 사이가 그동안 경직돼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며칠간 쌓였던 울분을 터뜨려 버렸다. 남편은 자기가 또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잘못 건드렸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렸다. 남편의 그런 태도는 나를 더 걷잡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일단 볼일은 봐야겠기에 화를 꾹꾹 누르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억지로 일을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나는 그대로 누워 버렸다. 애들은 튀김 사 먹인 걸로 때우고 남편과 나는 점심도 안 먹고 각자 방에서 서로 버텼다.
결국 저녁때가 되자 남편이 먼저 찌개를 끓여 놓고 나를 불렀다. 난 안 먹는다고 튕겼다. 그러자 다시 화가 난 남편은 불을 다 끄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애들이 무섭고 배고프다고 울어서 나는 할 수 없이 일어나 밥상을 차렸다. 남편도 그제야 슬그머니 나와 앉았다.
둘 다 속을 부글부글 끓이며 밥을 먹으려니 분위기는 살벌하면서도 유치했다. 내가 남편 밥그릇 옆의 휴지에 생선가시를 버리자, 남편은 따로 모으라며 눈을 부라렸다. 또 작은애가 흘린 국물을 닦으려고 뒤에 있는 휴지 좀 달라고 했는데 남편은 거절했다. 그건 반은 장난이고 반은 아직 짜증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상황은 달라진다.
하지만 그때 내 마음은 장난으로 받아칠 만큼 여유롭지가 못했다. 나는 남편이 생선가시도 한데 모으기 싫을 정도로 나를 지겨워한다고 해석해 버렸다. 그건 사랑이 식었다는 말이고, 나아가 남편과 내가 같이 살 이유가 사라졌다는 말이 된다. 나는 쇳소리를 내며 남편한테 따지기 시작했다.
남편도 이 여자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으로 노려봤다. 놀고 있던 애들이 수군댔다. ‘엄마아빠 또 싸운다.’ ‘대결이 벌어졌다.’ 큰놈은 팽팽한 우리 사이에 끼어 들어 오른팔을 높이 쳐들고 대결 시작! 하며 심판 흉내까지 냈다. 그 모양을 보고 내가 픽 웃었다. 이럴 때 항상 느끼는 건데, 비극과 희극은 정말 한 끗 차이다. 내가 웃자 애들도 안심이라는 듯 따라 웃었다. 그래,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한데 나는 그렇게 맥없이 끝내는 게 어쩐지 억울했다. 남편이 정말로 냉정해진 것 같아 슬프고 서운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웃다가 우는 망아지처럼 다시 남편을 공격했다. 마구 독설을 퍼붓고 그것도 성에 안 차 팔이며 가슴팍을 닥치는 대로 꼬집고 때렸다.
방어만 하던 남편이 참다못해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주저앉았다. 스치듯 맞은 건데도 정말 아팠다. 까딱하면 한 방에 갈 수도 있겠구나 싶어 겁이 났지만 덩달아 오기도 생겼다. 나는 안경까지 벗어놓고 어디 한 번 죽여 보라고 더 맹렬한 기세로 덤볐다. 그렇게 한창 몸싸움을 하던 중에 남편이 다급하게 말했다.
“야, 그만해. 나, 병원 가야겠다.”
나는 그게 싸움을 그만하자는 몸짓인 줄 알았다. 남편은 양말을 벗어 엄지발가락을 보여 주었다. 조금 꺾여 있긴 했지만 나는 그것도 남편이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였다. ‘아니, 왜 이런 거야?’ ‘왜긴, 너 때문이지.’ ‘내가 뭘 어쨌다고? 생사람 잡지 마.’ 남편은 아까 내 정강이를 걷어찰 때 잘못된 모양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 수도 있나?
그날 밤, 깁스한 오른발을 베개에 올려놓고 누운 남편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결혼하고 7년 동안 몇 번 몸싸움을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누군가 다친다는 건 상상도 못 해 봤기에 충격이 좀 컸다. 그때 문득 영화 [미저리]가 생각났다. 그 영화의 여주인공 애니는 다리 다친 작가를 가둬 놓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소설을 쓰게 하는 무서운 여자다.
남편은 가끔 날더러 미저리라고 했었다. 멀쩡하다가도 어느 순간 신경질적으로 변해 버리는 성격이며 무식한 말투, 과격한 행동들이 그 여자랑 너무 닮았다는 거였다. 물론 남편이 그런 말을 할 때는 우리 사이가 좋을 때였으므로 난 발끈하지도 않았고 같이 킬킬대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미저리 흉내나 내 볼까?
깊은 밤, 깁스한 남편의 오른발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노라면 남편이 섬뜩한 기분으로 눈을 뜨겠지? 그때 나는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이다.
“조심해, 다음엔 발가락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남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한데 그때 심정으로는 그런 장난도 싫었다. 우리 부부가 이 지경까지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도 기가 막히고 벅찼다. 더구나 다친 남편이 불쌍하기는커녕 밉기만 했다.
그렇게 밤늦도록 서성이다가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같은 의사라도 전문분야에 따라 그렇게 진단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부러진 뼈를 맞춘 다음 약 먹고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깁스는 3주나 4주 정도 해야 한단다. 수술비 굳었다고 좋아했더니 꼼짝없이 굶어 죽게 생겼다!
오늘로 사건 발생 4일째다. 남편도 나도 계속 침묵이다. 서로 창피해서 눈 마주치는 것도 피하고 있다. 나는 더럭 겁이 난다. 이러다가 어느 날 진짜 미저리가 돼 있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정신 차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