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할머니 한분이 계셨슴다.
어린나이에 찢어지게 없는 곳에 시집와
시집살이 또한 동지섣달 찬바람에 무명베 입고
떨듯이 모질게도 했다.
늙어막에 두노인네가 딸,아들 시집 장가 보내 놓고
편히 살려나 했더니, 나이가 들어갈 수록 할배의 잔소리가
늘어만 가는지라 할매 살 맛이 안나더라.
\"저놈의 넝감, 우라지게도 씨부렸쌋네, 귓구멍에 터널 뚫리겠고로-\"
\"저승사자는 뭐하나 몰러-, 저런 넝감 안 잡아가고로-\"
말이 씨가 된다 하던가?
한겨울 남의집 구루마 얻어타고 장에 갔던 할배가 아는사람
만나 탁배기를 걸치다 보니 한잔이 두잔되고, 두잔이 또
여러잔이 되었는데, 그날따라 하늘이 구멍이 뚫렸는지
너울너울 눈발이 수북수북 내렸는데,
끼니때가 지나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할배가 오지를 않는거라-
아무리 호랑말코 넝감이라도 밖에 잠은 잔적이 없는지라
어둔눈으로 호롱불을 벗삼아 동구밖에 어찌어찌 나가봤는데
간간이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 인기척이 없어
무거운 맘으로 발길을 돌렸더니-
고단한 몸을 벽을 지탱삼아 끄덕끄덕 졸았다가
깜짝 놀라 깨어보니 동이 텄는데도 간 밤에 넝감이 든
기척이 없어 놀라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는 것이
모기가 윙윙 거리는 것 같더마는 어둔 기색과 맘으로
소리나는 곳에 다다랐더니 동네사람들이 다 놀라
한 발걸음을 뒤로 들 물리는데, 그 중심에 시커먼 물체가
땅바닥에 누웠는데, 다가가니 그리도 웬수같던 넝감의
옷자락이 아니던가-
한쪽손엔 종이봉다리가 터져 굵직한 알사탕 몇개가 나뒹글고
한손엔 검정색 투박한 실장갑이 쥐어져 있는데
쭈글탱 할매준다고 끼고나 올 것이지 살터진 손으로 꽉 움켜쥔 채,
멍청스래 술기운 속에서도 기다릴 할매 생각해 길을 재촉했다가
그것도 동내앞까지 다와가 쓰러질께 뭔고-
기가 막힌 할매 눈물도 안 나오더라 하더라.
누가 그깟 사탕은 먹는다 했으며, 날도 추운데 오지를 말든지,
추우면 손에 쥔 실장갑이라도 끼고 올 일이지,
뭐라서 닳는다고 그걸 미련하게 들고 오더란 말인가?
살아서 하던 잔소리에 하루해는 짧게도 저물더니
죽은 후에 하루해는 일년같더라 하더이다.
지금도 가끔 나이 드시고 연로 하신 분들 다투시는 걸 보면
내 부모고, 남의 부모고 그래도 두분 다 계시는 것이 복이더이다.
우리 시어마님 홀로 계셔서 가끔 먼 산이라도 볼라치면 보는 내가
가슴이 시리더군여.
부모님 머리칼이 반백이 되갈수록 저리 두분이 다투다가
한사람만 남으면 어찌할꼬-
걱정아닌 걱정이 생깁니다.
산 사람이야 남은 날을 어떻게든 살겠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질까 싶은 것이-
40 문턱을 넘어서 생명줄이 길어졌다 하지만 남의 일 같지 않더이다.
부모에게도 잘 하고, 부부끼리도 서로 잘 하고 살아야 할 거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