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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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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


BY 은비 2005-12-28

이번 겨울은 유난히 날씨가 많이 추운것 같다.

추운것을 무지 싫어하는 나로써는 밖에나가자는 아이들의 말에도 꿈쩍 않고 집에서 지내기를 좋아한다.

초등1년인 큰딸은 11월말부터 크리스마스를 위해 트리를 만들자고 성화였지만,

막내가 혹시 전구같은것을 건드려서 다칠수 있다는 약간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서 트리장식을 내년으로 미루자고 큰 딸을 달래왔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를 몇일 앞두고 시댁에 가서 저녁을 먹다가, 큰 딸이 시부모님께 마치

일러바치듯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 우리집에는 트리를 하면 안된대요~\"

아버님 어머님은 그 말에 조금 당황하듯 하시면서 얼버무리시고는 나에게 왜 트리장식을 하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심 집안에 이런거 저런거 주렁주렁 하는거 싫어하시는 두분이신지라,

잘했다고 하실줄만 알고 있다가 아버님의 질책섞인 말씀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치, 변명을 하듯, 작년에 트리를 만들었다가 막내딸내미가 전구줄을 잡아채는 바람에 큰 소동이 났었다는걸 말씀드리며 트리장식은 내년으로 미루겠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그게 아닌거야.. 가뜩이나 여자애들만 있는데, 무언가 정서적인것을 해주어야지..

지금이라도 구할수 있으면 구해다가 장식하지 그러냐..?\"

나는 조금 면구스런 얼굴로 대답했지만 여전히 트리를 장식할 맘은 들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어머니 집으로, 시댁과는 일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같은 동에 살고있는 어머니댁과 우리집이기 때문에 나는 못하나 박는데도 무척이나 소심한 편이었다.

 

나라고 왜 내맘대로 인테리어를 하고 싶지 않겠는가..

나도 내맘같아서는 온 집안에 반짝이 줄을 걸고, 아이들과 함께 큰 트리를 장식하고,

방문마다 이쁜 크리스마스 리스를 붙여주고, 커다란 양말주머니도 만들어서 네임을 붙여주고 싶었지만, 우리집이 아니라는 생각에 차마 하지를 못했었다.

물론.. 조금은 게으른 내 성격도 한몫 했지만..

 

그러다, 둘째딸아이 유치원 행사로 동네에 한집을 정해서 산타할아버지가 방문하는 이른바,

\"산타잔치\"에 세 딸아이를 데리고 갔었다.

그집에 들어서자, 거실 한켠에 정말 어른보다 더큰 멋스러운 트리가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말았다.

아이들은 너나없이 트리 주위에서 크리스마스 잔치 분위기를 냈고,

나는 혹시나 다른 어머니들앞에서 나에게 우리집엔 트리가 없다고 불평섞인 소리를 하지는 않을까 속으로 땀좀 흘리고 말았다.

\'에휴.. 이틀 앞둔 크리스마스때문에 트리를 하나 사야할까..\'

고민하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다른 엄마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산타할아버지가 들어오시고, 한명씩 덕담과 함께 선물을 받았는데,

뜻밖에도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바로 크리스마스트리 작은거였다.

선물을 받은건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딸아이였지만,

정작 너무나 좋아서 환호를 지른건 큰 딸이였다.

 

그날 저녁, 집에 들어오자마자 트리장식을 제일 반대했던 남편이 뭐라 하거나 말거나

남편 퇴근전에 서둘러서 트리를 장식해버렸다.

작은 트리 나무에 이런저런 장식들을 아이들과 함께 걸고, 전구를 두르고..

짧은 트리만큼이나 짧게 걸리는 장식하는 시간이 아이들은 무척 행복한듯 보였다.

장식하는 중간에 들어온 남편은 유치원산타 선물이란 말에 아무말없이 점등식을 해주었고,

반짝 반짝 거리는 작고 이쁜 트리 옆에서 온식구가 둘러 앉아 잠시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나 어릴때 생각이 문득 난다.

우리가 어렸을땐, 다른 집도 그렇지만 우리집도 무척 가난했다.

성당에 다니던 우리들은 집에 트리가 있던날이 손에 꼽을정도로 별로 없었다.

간혹, 성당의 성탄절이 끝나 장식이 필요없어지면 어머니께서 성당 청소하시다 몇개 얻어다

가져오신적이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마당에 있던 작은 화초위에 장식해서는 일월이 다 지나가도록 거실에 나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 트리는 나의 어릴적에도 그랬지만,

이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저 장식에 지나지 않는 의미가 아니라,

시아버님 말씀처럼 감성을 채워줄수 있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초에, 큰 아이를 임신하고나서 이 아이가 태어나면 성탄절에 해주고 싶고 같이 해보고 싶었던것이 참 많았었다는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12월이 되면 아이와 함께 장식을 골라서 사다가 트리를 장식하고,

그 트리에 걸어둘 작고 앙증맞은 양말들과 머리맡에 둘 양말주머니를 같이 만들고,

아이몰래 들어와 잠자는 아이를 깜짝 놀래줄 산타할아버지 복장도 직접 만들어서

남편에게 입힐 계획도 세운적이 있었는데...

어느새 나는 사는데 바빠서, 혹은 나의 게으름을 감추려고 아이들에게 그 많은 것들을

함께 할 의사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던 것이 아닐까..

 

크리스마스는 지나가 버렸지만,

나는 벌써부터 내년의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내년의 크리스마스때에는 직접 만든 산타양말주머니와, 산타복장을 준비해서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나 자신도 깜짝 놀랄만한 성탄절을 보내야겠다..

 

\"경진아.. 미안해. 하지만 우리 정말 내년 성탄절에는 더 행복하게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