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지난 그 다음날...
늦은 오후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명동에 친구랑 있는데 같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한다.
늘 그는 기다릴땐 연락도 없다가 기다림에 지칠때면 연락을 해온다.
당장에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갔다.
약속장소인 카페로 들어가니 그는 신문만 들여다보고 있고, 친구가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넨다.
그제서야 그가 내게 눈길을 돌리며
\'왔니...\'
하며 아는체를 한다.
그리곤 다시 신문을 보며 말한다.
\'올해들어 처음 만나는 여자랑 결혼할 생각이었는데... 바로 너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에 비해 난 무척이나 가슴이 떨린다.
친구도 뭐라 할말을 잃은듯한 표정이다.
그와 나...
우린 아무런 사이도 아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단 그는 내 마음 깊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영화관 앞에 도착하니 보려던 영화가 매진이다.
암표장사가 눈치를 채고 어디선가 나타난다.
티켓을 세장 사긴했지만 두지리는 붙어있고 한자리는 떨어져 있다.
그가 친구에게 한자리 티켓을 건넨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영화를 본다.
영화가 끝나고 그가 친구를 먼저 돌려보낸다.
\'가자!\'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씩씩하게 걸어간다.
\'우리 집까지 걸어가자.\'
\'으응...\'
그와 집 방향이 같다는 사실은 정말 행운이다.
하지만 충무로에서 집까지 걸어가긴 좀 멀지않을까 걱정이된다.
그래도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별로 말이 없었지만 내가 춥지는 않은지 힘들지는 않은지 가끔씩 물어준다.
그리고...
이젠 무슨 노래인지 기억조차 아물거리지만 작은 목소리로 노래도 불러주었다.
그렇게 추운 밤길을 그와 둘이 몇시간을 걸어 드디어 집앞에 도착했다..
\'들어가...\'
그한마디만 남기고 그는 늘 그렇듯 뒤도 안돌아보고 그대로 멀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