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옆집 우가네가 42인치 HD TV를 장만했다. 얄쌍한것이 살을 쪽빼고 벽에 걸려있는게 폼나보였다. 피부속 혈관까지 투시되는듯한 얼굴...역시 돼지털의 힘은 지대하도다. 그걸 보고온 우리집 늦둥이 "아빠 우리두 커~~어 다란 테레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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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를 한지 얼마안된 삼촘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고등학교때부터 서울물을 먹으며 공부한 삼촌은 어느날 누런 보자기에 시커먼 상자를 하나 들고 오셨다. 이것이 뭐에 쓰는 물건이지....삼촌이 없을때 잠시 꾹꾹 눌러도보고 두둘겨도 보았지만 도대체 무슨 물건인지 알수가 없었다.
시골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고부터 등잔심지에 불을 밝히던 낭만도 멀어져갔다. 뒤란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등잔을 보면 그넘들의 신세가 처량해 보이기만 했다 삼촌이 가지고온 물건의 정체가 들어났다.
저녁을 먹고 삼촌은 마당 여기저기 모기불을 놓고 커다란 멍석을 깔아놓는다. 퇴상마루위에 나무의자를 놓고 그위에 시커먼 상자를 올려놓는다. 시커먼 녀석 꽁무니에 쥐꼬리만한 줄이 늘어져 있는데 그걸 벽에있는 구멍에 꼽으니 치지직...하면서 시커먼 녀석은 그제서야 정체를 밝혀낸 것이다.
테레비라는 녀석이란다. 어떻게 조렇게 쪼그만 상자에서 사람들이 오물조물 걸어다니고 떠들고 먹고 웃고 할까...손을 갖다대봐도 사람들은 내손에 잡히질 않는다. 이게 뭐야....도대체 삼촌은 이런 사람들을 어디서 가지고 온거야... 대여섯살 먹은 나에게 꺼먼 상자의 실체는 삼촌이 의심스럽고 삼촌이 존경스럽고 삼촌이 어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자에 넣고다니는지 알수가 없었다.
몇차례 삼촌은 그런식으로 시골에 올적마다 까만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삼촌의 등장는 시골사람들을 삽시간에 끓어모으는 마력의 상자였다. 삼촌이 동구밖에 모습을 들어낼라치면 동네 꼬마녀석들이 시커먼 상자옆에서 먼저 기웃거린다. 오늘저녁 또한차례 동네 극장이 설치되는 즐거움이 있으니까.. 오늘은 또 어떤 사람들을 상자에 가득 담아서 왔을까. 삼촌의 어깨는 건장했고 동네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뿌듯한맘으로 발걸음조차 가벼워보인다.
그 날 삼촌은 <여로>라는 연속극을 상자가득 담아서 우리집 멍석깐 극장마당에 풀어놓았다. 삼촌은 그걸 우리집에 놓고가면 안되는건가.... 주말마다 와서는 달랑 또 들고간다. 삼촌은 정말 부자인가부다...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자에 넣고 다니려면 돈도 많아야 할텐데 아마도 우리시골집에 저 많은 사람들을 풀어놓고 가면 할머니한테 혼날까봐서 그렇게 무거운걸 또 들고 가나보다.
"저것이 전기잡아먹는 귀신이여...저것이 틀어져있음 계속 전기가 전기줄을 타고 상자에 들어가 돈을 뜯어먹고 가는겨...전기가 얼매나 비싼줄 알어?" "할머니는 인정두 없어...조금만 더보면 안되?" "이녀석아 전기는 공중나니? 다 돈이여..돈..." "치이......"
그렇게 삼촌은 며칠 우리집에 묶으면서 동네의 간이 극장을 마당에 만들어 놓으시고 떠날날이 되면 당연 그넘의 까만 통부터 챙기셨다. 애지중지 때라도 뭍을까봐..보자기에 싸고 또 싼다. 그냥 놓고가면 안되나...
동네의 극장도 삼촌이 결혼을 함과 동시에 중지가 되었고 여름밤 졸린눈을 비비며 보는 <여로>의 달콤함은 공중으로 날아가버린다.
전기가 들어와도 전기용품을 사서 쓰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전기용품의 대중화도 되어있지 않은 형편이고 시골 사람들은 모든 가전제품이 돈을 먹는 식객인양 가슴 졸이며 고작 불을 밝히는 용도로만 사용을 했지 딱히 다른용도로 사용할줄을 몰랐다.
밤마다 마당에 모기불을 놓아가며 보던 테레비속의 이방인이 떠나고 몇주일이 지났다. 우리동네에서 젤루 부자라던 정가네서 테레비를 샀다는거다. 해질무렵 우린 그 집앞을 서성이며 호시탐탐 그 집에 들어갈수있는 허점을 발견해야 했다. 동네어른들이 들어가면 따라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며칠간 그 집에도 인심은 넉넉했다. 처음 동네에 테레비가 들여왔으니 자랑도 자랑이거니와 시골인심에 딱히 못들오게 할수도 없는 처지였을께다.
막내고모 친구집이니 난 고모손을 잡고 당당하게 입장을 할 수가 있었다. 역시 이 시골동네에도 빽의 힘은 존재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자 저녁이 되면 그 집 대문이 철커덩하고 닫히는 거다.
그러면서 그 옆집 정가네가 두번째로 테레비를 샀다. 그 집은 그래도 옆집 보단 인심이 후한턱에 몇날 며칠을 눈치안보고 재미있는 만화도 볼수있고 연속극 <여로>도 볼수있었다. 그런데 그 집의 막내녀석이 어찌나 개구지던지...앉아있던 사람들에게 침을 퇴퇴하고 뱉는 것이었다 "모두 가...나 ....잘꺼란말야..." 난 어린맘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고, 집에 와서 엄마한테 일러받쳤다.
그 일이후 꼭 그 일이 있어서가 아니였겠지...우리집이 세번째로 테레비를 샀다. 그 날은 아침을 안 먹어도 점심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언제나 테레비를 싣은 차가 오려나 동구밖을 몇번이고 뛰어나가 보곤했다.
트럭이 우리집 마당에 도착을 했고 인부두명이 안방으로 테레비를 옮겨 놓았다. 삼촌이 가지고 왔던 테레비보단 덩치가 두배나 컸으며 다리가 네곳에 달려있어 넉넉한 높이도 유지시켜주었다. 화면을 보호하는 문을 드르륵 여니 문이 테레비속으로 들어갔다. 나에게 침을 뱉었던 녀석네것 보다 우리집 테레비가 더 크고 멋져보였다.
우리집이 세번째이고보니 이제 세집으로 분산된 동네사람들은 주로 우리집엔 송가네식구들로 가득했다 우선순위가 친척이고보니 그 곳에도 빽이란게 또 존재했나보다. 그런데 그것이 영 불편한게 아니였다. 뜨신 아랫목은 어른들로 꽉차고 우린 차가운 아랫목으로 밀려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영락없이 아이들은 개구녕이라도 밀고 들어올 기세로 틈만나면 우리집에 들이닥쳤다.
먼저 일을 겪은 두 집의 심정이 이랬을까... 사람이 떠난 방안은 온통 건불 더미로 그득하고 발냄새 땀냄새.... "이넘들아 이제 집에가서 자야지...." 잘 타일러 보낸다. 그래도 싫은 내식 않고 엄마는 난자리의 건불을 쓸고 닦고 이부자리를 편다.
그 후 하나둘 동네에 테레비가 트럭에 실려 들어왔고 우린 이제 트럭에 뭐가 실려오든 시쿤둥해 졌다. 오늘 또 누구네 테레비 들이는구나.... 그렇게 문명의 이기는 우리 동네에도 침입을 했고...있어서 편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문명의 이기 중독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냉장고가 들어오고... 전축이 들어오고... 세탁기가 들어오고....
다리가 네개 달리고 문을 드르륵 열면 화면이 나타났던 테레비 그 테레빈 칼라테레비가 나오면서 또 뒤란으로 추방이 되었고 오늘..... 우리딸은 피부속 혈관까지 속속들여다 보일 정도의 커다란 돼지털 테레비를 사달라고 조른다. 그럼 저 테레비는 어디메로 추방하여야 하나....
글/송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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