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강열하게 불타고 사정없이 떨어지는 계절에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읽었다. 독일인의 사랑은 신분 차이와 육체적 고통을 넘어선 두 남녀의 숭고한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막스 뮐러는 평생 동안 오직 이 한 작품만 남겼다는 것에 난 이 책의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작가는 세상을 순수하게 살아가는 독일의 한 젊은이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랑을 꿈꾸지도 못하는 마리아공녀와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이상적인 사랑관을 작품 속에 담아 내고 있다. 주인공 남자와 여자의 수많은 대화와, 삶에 대한 교감을 중심으로 사랑에 대한 성찰이 곳곳에 스며 있는 이 책은 총 여덟 개의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인인 나와 마리아의 어린 시절의 추억, 마리아의 높은 신분과 교양, 그리고 그녀의 대한 나의 신앙에 가까운 사랑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좀 지루한 감이 있다고 책의 뒷부분 ‘작품 알아보기’에 적혀 있었지만 난 사랑에 대해 높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고 사랑에 관한 짜릿함에 빠져 끝까지 읽어 내려갈 수가 있었다. 성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사랑과 낭만적이고 관념적인 플라토닉 러브의 즉 정신적인 사랑의 진짜 모습을 보며 주는 작품이었다. 또한 육체적 접촉을 하지 않더라고 마음과 마음이 교류를 통해 올바른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작품이었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막스 뮐러의 진실이었는데, 외람되고 어설프고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이 책은 막스 뮐러 자신의 사랑이야기구나 실화구나 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아니면 또 어떠랴 내가 현실화 시켜 읽고 느끼면 그만인 것 아닌가? 책 첫 장은 어릴적 마리아를 만나게 된 동기가 쓰여 있다. 언제 심장마비로 죽을지 모른 마리아. 마리아 인물에 대한 묘사는 별로 없지만 창백하고 가냘프고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읊조리듯 말을 한다. 그리고 책을 많이 봐서 이론적인 사랑에 잘 알고 있는 마리아는 주인공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병 때문에 가슴속에 꽁꽁 묶을 수 밖에 없는 차디찬 아픔, 한 시간 이상 말을 하면 힘들어서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야 하는 촛불 같은 생명줄, 그러면서도 그 사랑을 목숨과 함께 지켜가는 끈질김, 성인이 되기전에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 줄 알았던 마리아는 기적처럼 성인이 되어 주인공 남자와 다시 재회를 한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가지 등장하는 인물이 거의 없다. 일인칭 나와 마리아의 대화가 많고, 나의 독백이 대부분이다. 홀로 깨어 생각하고 자연을 나열하고 혼자 짝사랑하는 생각들을 지루하게 나열되어 있는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지루하지 않았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 마음을 난 알아야 하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단 한번의 지독한 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적인 사랑을 지독하고 절절하고 미치도록 했었다. 이십년 동안 한사람만 사랑했다. 어리석고 융통성 없는 사랑이라 말해도 옳다. 내 사랑은 나를 옭아매어 내 삶을 송두리채 뒤집어 놨다. 돌이켜 보면 어리석고 이득이 없는 손해만 왕창 본 사랑이었다. 다시는 그런 사랑은 안하리라 다시는 그런 사랑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으리라 수없이 다짐에 다짐을 돌담으로 쌓아 올렸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이 어디 내 맘대로 적당한 시기에 하게 되고, 적당하게 하면서 이별이 와도 상처 받지 않고 보낼 수 있냐는 것은 이론적인 책에서만 나오는 이론일 뿐이다. 사랑하면서도 헤어진 다는 것도 유행가 가사일 뿐이고, 사랑하면서 행복을 빌어 준다는 것도 내 자신을 착한 여자로 보여 주기 위한 ‘보여줌’일 뿐이다. 사랑하는데 왜 헤어지냐고?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강을 헤엄쳐서라도 그 사랑을 당기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배신을 하고 떠날 때 무슨 행복을 빌어 주냐고? 뒤돌아가는 그 놈의 뒷머리를 쇠파이프로 때려 죽이고 싶은 것이 솔직한 감정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본능적인 감정이나 악한 마음은 전혀 들어나 있지 않다. 주인공은 며칠동안 잠을 못 이루다가 마리아에게 사랑 고백을 하기로 결심한다. 마리아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만 주변사람들의 반대로 그리고 자신의 병 때문에 사랑 고백을 듣고 차디찬 거절의 말을 한다. “가냘픈 바람이 꽃잎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어요. 우리 옛날처럼 잘 아는 사이로 돌아가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친한 친구로 남아 이별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지요?" "왜냐고요?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너는 왜 이상에 태어났느냐고 한번 물어 보세요.꽃더러 무엇 때문에 봄만되면 피어나느냐고 물어 보세요.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에게 어째서 빛을 발하냐고 물어 보세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인공 젊은이는 자신이 마리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을 독백으로 이어간다. "우리에게 사랑에 있어서는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 명예로운 것과 불명예로운 것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고귀함과 선함도 없다. 사랑은 최악의 것이면서도 가장 선한 것이다. 가능하면 그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다음날 마리아는 심장마비로 죽었다. 마리아가 남긴 마지막 편지엔 이렇게 써 있었다. ‘당신은 나의 것, 당신의 마리아.’ 막스뮐러 작가는 끝을 이렇게 맺었다. '그리하여 내 추억은 그 유한하고도 무한한, 알 수 없는 사랑의 수수께끼 앞에서 입을 다물고 마는 것이다.'
정식 직원 운운하더니 더 이상 말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 나를 위로한다. 정식 직원이 되면 근무시간이 길어져서 마흔다섯의 고운 가을을 만끽하지 못했을거니까 '아주 아주 신난다' 라고 말하고 싶다. 올 가을은 새롭게 태어난 가을이라고 크게 외치고 싶다. 하루하루 오고 있는 가을길목에서의 기다림은 소중했다. 물들고 있는 나뭇잎 한닢 한닢이 예쁜 편지였다. 낙엽이 겹겹이 떨어진 나무밑을 샤삭 샤삭 걸어보았다. 산과 산에서 겪은 가을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고 싶은 가을이 저물어간다. 단풍이 절정일때 세상이 노을빛, 노을빛이었다. 사랑받고 싶은 가을이 떨어진다.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보다 밑으로 떨어진 나뭇잎이 더 풍성하다. 올 가을처럼 사랑하고 싶다. 사랑은 아무도 모르게 찾아와 송두리채 흔들어 놓고, 갈길을 몰라 헤매이더라도...
독일인의 사랑처럼 정신적인 사랑으로만 머물 수 있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육체적인 사랑이 사랑일까? 아닐까? 제일 이상적인 사랑은 정신과 육체가 합쳐진 것이 아닐까? 아동 서점에 다니면서 어른들 사랑 이론과 현실에 빠져 널널거리며 떠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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