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친구가 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다소 민망한 영상을 올리는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40

너무 아픈 10월


BY hayoon1021 2005-10-29

 

내 나이 열 살 때 있었던 일이다.

이모부와 싸운 이모가 우리 집으로 도망 왔다. 며칠이 흘렀다. 사건이 터졌던 그날, 우리 식구들은 사이좋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며 이모부의 얼굴이 나타났다. 문 쪽을 향해 앉아 있던 내가 제일 먼저 이모부와 눈이 마주쳤다. 화가 나서 일그러진 이모부의 얼굴은 한 마리의 짐승 같았다. 난 그 눈빛에 질려 입도 벙긋 못 했다. 이모부는 품에서 칼을 꺼냈고, 아버지는 그 칼에 찔려 병원으로 실려 갔다.

어젯밤, 나는 오래 전의 그 날과 비슷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

올케가 목욕 가는 척 집을 나와 무작정 우리 집으로 와 버린 게 이십여 일 전의 일이다. 친정동생한테 돈을 꿔 줬다가 오빠한테 들켰다는 것이다. 삼천만 원은 큰돈이다. 더구나 불같은 오빠 성질에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올케는 그대로 있다가는 오빠 손에 죽을 것 같아서 일단 도망쳤다고 했다. 생각나는 데라곤 나밖에 없었단다.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차차 해결할 테니까 좀 봐 달라고 올케는 몇 번이고 사정했다.

남편과 내 생각에도 그때 오빠한테 연락을 한들 일만 더 커지지 나아질 건 없다 싶어 올케 말대로 해 주기로 했다. 또 우리가 조금만 어떤 행동을 취해도 언니는 당장 쥐도 새도 모르게 숨어 버릴 태세여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것보다는 우리랑 있는 게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올케는 먹고 잘 수 있는 식당을 구해 들어갔다. 

며칠이 조용히 흐르나 싶더니 결국 일이 터졌다. 올케는 고등학생인 조카들과 가끔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게 그만 오빠한테 딱 걸려 버린 것이다. 조카를 닦달해서 그동안의 일들을 다 알게 된 오빠는 나한테 불같이 화를 냈다.  어떻게 동생인 내가 그럴 수 있냐며 너 죽고 나 죽자고 했다. 나한테 배신감 느끼고 실망했을 오빠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너무 막말을 하는 바람에 나도 한 마디 했다. 오빠는 내가 아직도 열 살짜리 동생으로만 보이냐고,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맞받았다. 상대방 말 같은 건 듣지도 않고 다짜고짜 자기 식으로 몰아 부치는 건 아버지한테 질릴 만큼 당해 왔다. 난 결국 울면서 전화를 던져 버렸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오빠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올케 있는 데를 대라고 했다. 난 잡아뗄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조카 휴대폰에 찍힌 전화번호만 들고 그 밤에 기차를 탔다. 자정이 다 돼서 서울역에 도착한 오빠는 일단 우리 집에 오라는 내 말을 차갑게 거절했다. 조카 혼자 엄마를 찾아온 것처럼 위장해서 올케를 덮칠 모양이었다. 올케는 그때 일하는 중이었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오빠가 올케를 찾아내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오빠는 이런 사실을 비밀로 하라고 했다. 나는 올케한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선택이든 그건 어느 한 쪽을 배신하는 일이 된다. 그 결정은 남편조차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나만의 문제였다. 일 분 일 초가 자꾸만 흘렀다. 창밖의 밤바람소리를 들으며 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 같은 내 처지가 너무 서글프고 짜증났다.

그러다 문득 해답을 얻었다. 누구 편에 서느냐를 떠나서 어떤 경우에도 신문에 날 일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잔뜩 흥분한 오빠가 홧김에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일이었다. 일이 터진 다음에는 어떤 후회도 소용없는 것이다. 그런 계산이 나오자 그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보였다.

올케한테 전화해서 오빠가 지금 서울역에 와 있다고 알렸다. 그리고 피한다고 일이 해결되진 않으니까, 어쨌든 만나서 얘기라도 해 보라고 내 생각을 덧붙였다. 이제 맞닥뜨리건 피하건 그건 올케의 몫이었다. 이로써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고, 오빠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다시 전화하겠다는 올케한테서는 아침이 다 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올케는 결국, 같이 일하는 사람이 딸만 온 줄 알고 있는 곳을 알려주는 바람에 오빠한테 잡혀서 그 길로 내려갔다고 한다. 그 소식을 아침 10시가 넘어서 식당을 통해 들었다. 두 사람이 함께 내려가기를 내심 바랐던 나는 비로소 간밤의 공포와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앞으로 오빠를 볼 일이 걱정되었다.

 난 오빠한테 내 마음을 얘기하고 싶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오빠 동생이라고. 그래서 올케도 남이 아닌 거라고. 올케가 지난 20년 간 오빠한테 말 한 마디 크게 못 하고 참고 살아온 얘기를 하며, 설령 오빠가 이번 일을 용서해줘도 더 이상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할 때는, 너무 마음이 아파 밤새 울기도 했다고. 나는 두 사람이 다시 잘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시간을 벌고 있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오빠한테 내 심정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빠 마음은 싸늘하게 돌아섰을 것 같다.

남편은 내가 할 만큼 했으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이 살려달라고 찾아왔는데 매정하게 뿌리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나마 우리가 끌어안았기에 올케가 엉뚱한 곳에 가서 헤매는 일도 피할 수 있었던 거라고. 올케를 숨겨준 걸 나중에는 고마워할 거라고.

둘째오빠는 세 오빠들 중 가장 나한테 정을 많이 준 사람이다. 혼자 서울에 떨어져 있는 여동생이 안타까워 해마다 한 번씩은 어떻게 사는지 찾아봐 준 오빠다. 그런 오빠한테 배신감을 안겨 줬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다. 내겐 오빠도 올케도 다 소중한데. 이번 10월은 너무 길고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