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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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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말말(완결)


BY 은하수 2005-10-26

언행일치가 돼야 한다

남아일언중천금이다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 되자

과연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많은 죄를 지었나이다

이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도 들어오던 말이다.

언행일치를 지키기 위해서 

입조심하느라 아예 입을 닫을 때가 있었다.

 

여아일언중천금을 위해

말의 근수만 달며 차마 입을 떼지도 못할 때가 있었다.

 

말을 앞세우지 않기 위해서

행동만을 앞세우거나 아님 둘다 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생각이나 말로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걸 매번 되새겼다.

 

주님은 행동보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구나 

우리는 행함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왜 말씀에만 파고 드는 걸까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진실되고 가치있는 행동만을 하기 위해

말을 경시하고 말을 아끼며

입을 꾹 다물고 조심하였으나

동시에 언어를 매개로 하는 뇌활동(사고)은 떨어졌다.

 

때문에 어쩌다가 한번 나오는 말은

채 정제가 덜된, 덜익은 말일 때가 많아서

자연스런 대화나 올바른 의사전달은 커녕

대화의 맥이 끊어질 뿐 아니라

뜻이 오해를 받을 때도 있었다.

 

말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고

난 과묵하고 느린 사람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또다른 집안의 분위기에 젖게 되면서

내가 말에 인색하고 말이 가난한 집에서 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말씀으로도 99칸 고래등 기왓집을 지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셨다.

난 시어머니의 푸근하고 푸짐한 말씀이 좋았다.

시어머니의 말잔치에 덩달아 배가 부를 때가 있었다. 

 

"네 시아버님만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 아마 큰 부자로 살았을 게다."

시어머님의 잦은 레파토리이다.

사실의 진위여부나 말씀하시는 의도의 참뜻을 떠나서

시어머님의 그러한 믿음이 좋아 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말은 그렇게 아껴서 안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고 뱉어내야 한다는 걸 알아 갔다.

말은 해야 맛이고 껌은 씹어야 맛임을...

말을 하면서 기가 점점 살아갔다.

 

그동안 참았던 말을 하느라 그랬는지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고 쏟아낼 때도 있었다.

특히 만만한 상대를 만났을 때...

보복당할 염려가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

앞뒤 안가리고 성질 나는대로 퍼부을 때...

 

내가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장가를 가서 아이 둘을 낳은 뒤에 커다란 병을 얻었었다.

한창 일할 수 있는 펄펄 나는 젊은 나이에... 이제 시작이라고들 하던 나이에...

그 사실은 그를 아는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친구가 내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온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친구는 병원과 직장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엔 처자식과 떨어져서 지방의 어머니댁에 가 있게 되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외부현실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병이었다.

 

한동네 살면서 모른척 안 가볼 수 없어서

어느날 친구부인과 아이들만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둘째는 갓 돌을 넘긴 고물거리는 아기...

집안은 헝클어진 반짇고리 속 같았다. 황폐하게 느껴졌다.

안주인의 심사가 더욱 복잡했을 것이다.

 

조그만 골방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친구의 책들, 가방을 보니...

친구가 너무 불쌍했다. 슬퍼졌다.

어지럽혀진 산만한 집안은 있는 동안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친구의 병세가 심해진 것도 거둘 손 없는 친구부인의 탓처럼 느껴졌다.

 

가엾은 친구가 병을 빌미로 처자식에게 버림받으면 어떡하지... 

아이들은 자랄 때 아버지가 꼭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얘기했다.

아버지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거라고 얘기했다.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를 꼭 보라고도 그랬다. 모질게도.

발랄함을 가장하던 명랑한 그녀의 눈은

어느새 이슬이 맺혀 있었다.

난 곧 후회하였다.

 

이후로 그 친구 집을 다시 찾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몹시 아프고 힘든 일을 겪고 난 뒤

나락에 떨어져 본 뒤

그 일을 떠올렸을 때 많이 부끄러웠다.

난 친구 입장에서 얘길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내 동생이라면 그리 쉽게 얘기 못했을 것이다.

 

<입찬 소리>는 다시 하지 않기로 했다.